이탈리아 요리의 자존심 치즈, 그 8가지 맛에 빠지다

권은중의 나이 쉰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기 ⑯ 치즈와 올리브유를 알아야 이탈리아 요리가 보인다

등록 : 2019-10-31 14:42
치즈, 채소·동물·꽃·우유 등 맛 다양

숯가루 바르거나 ‘구더기 발효’ 치즈도

숙성정도 따라 맛 변해…꼼꼼 분석 필요

살균 않은 우유 사용으로 전통 지켜와

올리브유, 남쪽 오일은 상큼한 과일맛

북쪽으로 갈수록 부드럽고 은은한 향

요리에 따라 오일과 궁합 각각 달라져

“음식 전통 고수해야 민족 전통 지켜져”


탑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그라나파다노치즈.

[이탈리아인들은 흔히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는 없고 20개의 지역만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역색이 강하다. 나는 지난 기사에서 포도주가 이탈리아의 지역적인 개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음식이 또 있는데 올리브유와 치즈다. 이 두 식품 역시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 재료다.

올리브가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그리스명 아테나)의 선물이었다는 내용의 그리스·로마 신화는 이 식품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올리브의 경쟁 상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말이었다). 치즈 역시 이탈리아 식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치즈는 소를 키우는 서양 음식문화의 정수다. 우리가 김치와 된장·간장을 우리 발효문화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지역마다 각각의 올리브유를 생산한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가면 이렇게 많은 올리브유가 전시돼 있다.

먼저 올리브유를 이야기해보자. 나는 이 식품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추출 방식에 따라 열을 전혀 가하지 않는 엑스트라 버진과 나머지로 나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올리브유 구실을 하는 참기름은 어디 깨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볶음 정도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올리브유가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맷돌을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해서 올리브유를 추출하기도 한다. 사진은 시칠리아의 올리브 방앗간 모습.

올리브유는 품종 차이도 있지만 재배지에 따라 남부·중부·북부로 더 많이 분류한다. 남쪽 오일일수록 상큼한 과일 맛이 나며 북쪽으로 갈수록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 향기와 맛의 차이에 따라 쓰임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감자수프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마지막으로 손님에게 내놓기 전에 감자수프에 올리브유를 둘러야 하는데 어느 지역 것을 써야 할까? 다소 밍밍하면서 부드러운 북쪽 오일이 정답이다. 지난 3월 말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서는 4가지 오일로 이 실험을 했다. 이탈리아 가장 동쪽에 있는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의 올리브유가 감자수프의 부드러운 맛에 걸맞은 풍미를 줬다. 4가지 오일을 각각 넣고 조금씩 섞어서 먹어보니 감자수프와 올리브유의 궁합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 올리브유는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미묘하게 맛이 다르다. 따라서 요리에 따라 오일이 달라져야 한다. 왼쪽 사진은 ICIF에서 감자수프에 적합한 올리브유를 고르는 테스트 모습. 오른쪽 사진의 4가지 오일 가운데 왼쪽 둘째 OTA가 가장 적합했다. 맨 왼쪽 병이 상큼한 맛이 나는 남부 풀리아의 코라티나다.

샐러드에는 당연히 남부 오일이었다. 나는 이날 먹었던 남부 풀리아주의 올리브 열매로 만든 코라티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올리브유는 레몬 혹은 감귤 맛이 났다. 지금까지 먹어봤던 올리브유 맛이 아니었다. 이날 강사로 온 마르코는 “그래서 이탈리아 요리를 한다면 이런 올리브유의 미묘한 맛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인턴으로 있던 레스토랑에서는 제노바가 주도인 리구리아주의 최고급 올리브유를 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올리브유는 요리 마지막에 악센트를 주는 구실을 한다. 일부 고급 레스토랑은 셰프가 식사 전에 감자크림이나 해물수프를 근사한 접시에 조금씩 내놓고 이런 고급 오일을 들고 가서 손님 접시에 따라준다고 한다. “우리 집은 이런 올리브유를 쓰니 기대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고객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이런 전통 있는 올리브유를 원산지인증제도(DOP)로 보호한다.

올리브유가 하늘과 땅과 물이 만드는 거라면 치즈는 여기에 물 대신 사람이 강조된다(올리브는 해안가나 큰 호수 옆에서만 자란다). 이탈리아에는 기기묘묘하고 형형색색의 치즈가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치즈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계 최초로 치즈에 대한 책 <유제품 총론>을 쓴 사람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에 걸쳐 있던 이탈리아 사보이아 공국의 의사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치즈의 하나인 파르미자노레자노치즈의 역사는 1천 년에 가깝다. 파르미자노레자노만큼 많이 쓰이는 그라나파다노치즈의 역사도 비슷하다.

역사만 오래된 것이 아니다. 치즈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원료가 다르다. 소젖은 물론 물소젖, 양젖, 염소젖 등을 쓴다. 제조 숙성 방법이나 모양도 지역마다 상당히 다르다. 중부의 아마트리체페코리노는 겉에 숯가루를 발라 치즈 겉이 검다. 또 남부의 섬인 사르데냐의 카수 마르추는 치즈에 구더기를 넣어 발효시킨다. 지역마다 고유의 치즈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해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인근의 그라나파다노치즈 공장. 살균되지않은 우유를 사용해 일일이 사람 손으로 만든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놀라웠다. 작업자 두 명이 50여 도의 뜨거 워진 우유에서 천을 이용해 응고된 치즈 덩어리를 건져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놀란 건 치즈의 역사나 종류가 아니었다. 우리도 된장과 간장의 역사나 종류에서 서양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대목은 치즈를 만드는 데 살균하지 않은 포유류의 젖을 쓴다는 점이었다. 지난 4월 그라나파다노치즈 공장을 견학했는데 살균하지 않은 우유를 별도의 정제작업을 통해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이를 ‘전통’으로 설명했다. 고대부터 살균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즈를 만들었고 자신들은 그 방식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유는 살균해서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생소한 이야기였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살균한 유제품과 살균하지 않은 자연상태의 유제품으로 만든 치즈 맛을 구별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살균하지 않은 과정으로 만든 유제품이 향기와 맛이 좀더 친근하다는 것인데 나는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살균된 우유로 만든 게 내게는 좀더 세련된 향기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성인에 견줘 다소 감성적인 중고생을 상대로 실험하면 거의 대다수 학생이 살균하지 않은 원료로 만든 치즈를 더 맛있다고 선택한다고 한다. 학교에 특강을 온 이탈리아 치즈 전문가들은 “이 친근한 맛이 DNA가 기억하는 맛이며 오랜 시절 자신들에게 이어져온 전통의 맛”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치즈협회 관계자가 ICIF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라치오 지역 치즈인 아마트리체페코리노를 설명하고 있다. 이 치즈는 특이하게 겉면에 숯가루를 발라 숙성시킨다.

그런데 이들은 한 발 더 들어가서 전통의 맛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분해놓았다. 아주 세세해서 약간은 과장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이탈리아인은 치즈 맛을 크게 과일·채소·동물·꽃·우유·토스팅·향신료·기타 8가지로 구분한다. 또 이런 향들이 어떤 종류의 아미노산과 지방에서 오는지까지 매우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면 그라나파다노 같은 경질치즈는 우유 맛이 나다가 오래 숙성되면 견과류나 토스팅 향이 난다. 24개월 정도 되면 고기 육수(동물)의 맛과 향이 난다. 그라나파다노에는 과일 냄새나 꽃 냄새는 없고 다만 36개월 정도 숙성하면 올리브 향과 꿀 향이 난다고 한다. 이런 향기와 맛의 차이를 알아야 요리를 만들 때 어떤 치즈와 얼마나 숙성된 치즈를 쓸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라나파다노는 숙성이 특징이다. 보통 1년(12시 방향 작은 깃발 꽂힌 것), 2년, 3년(시계방향으로) 숙성된 것으로 나뉜다. 2년 된 것부터 고기육수와 아몬드 구운 빵의 맛이 난다. 아미노산의 결정화 때문이다. 파스타에는 보통 2년짜리를 많이 쓴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밥 뜸 들이는 향기와 된장국이 끓는 향기를 사랑한다. 우리나라 많은 작가도 이를 예찬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쌀과 된장의 향기를 이탈리아 치즈 전문가나 올리브유 전문가처럼 세세히 구분하는 걸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또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국내에서 그런 시도를 하는 전문가를 거의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집 된장을 찾기 어려워지고 공장 된장에 인공조미료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를 식당에서 사먹고 있는 우리 일상에서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갖는 전통 식품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보인다. 이렇게 전통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오일이나 치즈는 대량생산보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이런 전통을 수호하는 제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어디를 가나 작은 빵집과 함께 햄과 치즈를 파는 작은 정육점이 있다.

주민들은 이런 가게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덕분에 가게는 계속 대를 이어가고 지역의 명물이 된다. 이런 집의 제품은 공장 제품보다 가격이 높지만 계속 사먹게 된다. 이탈리아 지역들이 남들과 다른 전통과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는 원동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음식의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글·사진 권은중 <음식 경제사> <독학 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