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1엔의 쓰임새, 1엔의 행복

[유재순의 도쿄라이프]

등록 : 2016-05-12 16:57 수정 : 2016-05-18 17:36
일본 돈의 가장 작은 단위인 1엔짜리 동전들. 일본에서는 1엔짜리도 소중하게 쓴다.
일본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니 일본인에게 ‘동화’됐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제대로 일본 생활에 ‘적응’됐다고 해야 하나, 나 자신조차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최근 한국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낼 때 10원짜리 동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선 새로 나온 10원짜리 동전의 크기가 신기했거니와 일본의 1엔짜리 동전과 몹시 비슷해 놀랐다. 그리고 그 동전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다고 번번이 투덜대는 한국인들에게 다시 한번 놀랐다.  

일본에서 1엔짜리 동전은 1엔이라는 값어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첫째는 1엔짜리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검약 정신이 일본인들의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1엔 단위로 계산해야 하는 소비세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물건을 사면 소비세를 내야 한다. 3%로 시작된 소비세는 5%로 올랐다가 지금은 8%가 되었다. 그래서 물건을 사거나 외식을 하면, 계산할 때 8%의 소비세까지 붙어 1엔 단위로 돈을 내야 한다. 그러므로 1엔짜리 동전이 귀하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지만, 일본 가게 중에는 현금만 받는 데가 적지 않다.  

일본 정착 초기 무렵인 80년대 중반에, 평소 친분이 있는 도쿄대 교수의 초대로 그분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집 거실 테이블에 커다란 유리 항아리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 항아리에는 500엔짜리, 또 다른 항아리에는 1엔짜리 동전이 절반씩 차 있었다.  

안주인의 설명을 들어 보니, 남편이나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 샤워하기 전 동전지갑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부인은 동전지갑에서 500엔짜리와 1엔짜리 동전을 꺼내 두 유리병 속에 분리해 넣는다고. 100엔짜리나 50엔짜리 동전은 평소 자주 쓰니까 굳이 빼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체면 때문인지 대개 지폐를 내고 받은 거스름 동전을 다음에는 안 쓰고 또다시 지폐를 내는 버릇이 있어 저녁 무렵이면 지갑에 동전이 가득 찬다고 한다.  

바로 이런 폐해에 부인은 지혜롭게 대처한 것이다. 몇 년 뒤 그 교수 부부가 드라이브를 시켜 준다고 해서 도쿄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나간 적이 있는데, 그 차가 바로 500엔짜리 동전을 모아 산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날 멋진 분위기를 자랑하는 가마쿠라 레스토랑에서 먹은 프랑스 요리 식사비는 1엔짜리를 모은 돈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다른 일본인 지인들에게 말하니 모두 당연하다는 얼굴빛이어서 내심 놀랐다. 그들도 똑같이 그런 방법으로 동전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나도 그들처럼 동전을 모았다. 1년 단위로 결산(?)해 보니 500엔짜리 항아리에는 30만엔 남짓, 1엔짜리에는 2만엔이 조금 넘게 모였다. 그 30만엔으로 시할머니의 보청기를 해 드리고, 2만엔으로는 우리 식구가 평소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500엔짜리, 1엔짜리 동전의 쓰임에 보이지 않는 룰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대개 일본인들은 몇 년 동안 모으기 때문에 500엔짜리 항아리는 큰돈이 된다. 이 돈은 자동차나 가구를 살 때 주로 쓰고, 1엔짜리로는 가족끼리 외식할 때 쓴다.  

지금도 내 둘레의 일본인들은 대부분 동전 항아리를 키우고(?) 있다. 몇 년 모아 그 돈으로 자식의 등록금을 내는 이도 있고, 가고 싶었던 해외여행을 하는 이도 있다.  

나도 지금은, 500엔짜리는 형편상 모으지 못하지만 1엔짜리는 동전 항아리에 넣는다. 일본인 주부들처럼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과 맛있는 외식을 할 것을 꿈꾸면서 말이다.

글·사진 유재순 일본 전문 온라인매체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