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이었던 ‘고종의 길’ 산책로로 열리다

다음달 정식 개방하는 ‘고종의 길’ 사전 답사

등록 : 2018-09-20 14:56 수정 : 2018-09-20 17:45
8월 임시 개방된 ‘고종의 길’ 따라

골목길 답사단 이끌고 현장 돌아

아관파천 길 어디인지는 불분명

영대사관과 협상 끝 일부 반환받아

‘고종의 길’. 덕수궁과 옛 러시아공사관을 연결하는 좁은 길. 문화재청이 복원해 8월 한달동안 시민에게 임시개방했다. 10월부터는 공식 개방할 예정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의 끝자락에 궁궐을 걷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궁궐이라기보다는 옛 궁궐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문화재청이 8월 한 달 동안 임시 개방한다고 발표한 ‘고종의 길’(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길)은 덕수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 길이기 때문이다. 답사 예고를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제안이었지만 진작 생각하고 있던 계획이기도 했다.

작년 8월 개방된 덕수궁 북쪽 돌담길.

그런데 답사길에는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았다. 넉넉히 준비해둔 자료집이 부족할 정도였다. 맹렬한 더위가 이제 막 지나가는 시기이니 그동안 참고 참았던 외출의 유혹이 있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있어서일까!


‘고종의 길’은 조선 마지막 왕의 길을 뜻하니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사람들의 호기심은 당연히 클 것이고, ‘임시 개방’이란 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골목 답사의 하나로 걸을 이유는 충분하다.

언젠가 서울시청 건물이 당시 서울시장에 의해 중장비로 뜯겨 나가는 날 뒤편 프레스센터 옥상에 올라 사진을 찍으며 그 길을 상상하며 유심히 보아두었다. 과연 저기에 길이 있었고 고종은 그 길로 갔을까?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이 왕세자 등을 데리고 경복궁 건청궁을 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갔을 그 길을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길을 찾고자 자료를 찾고 걸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국 대사관들이 점거하고 있는 그 길은 걷지 못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바라본 ‘고종의 길’은 아직 미완성이다. 일부는 영국대사관 땅이어서 통행이 불가하다. 길은 정비했는데 왜 갈 수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부디 이 길도 개방되기를 기대한다.

‘고종의 길’ 옛 모습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사진. 미국 주간지 1897년 7월24일자에 수록된 사진(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헨리 잭슨(1843~1942)이 한국을 찾은 1896년에 찍은 것으로 알려짐. 출처 김수정).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마당에 모인 답사단은 영국대사관 정문 앞에서 막힌 돌담길을 보고 빙 돌아 대한문 안을 통과하여 돌담길이 될 지점으로 이동한다. ‘고종의 길’을 포함해서 서울 역사박물관까지 약 2㎞가량을 걸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덕수궁 돌담길 연결하기를 한 성과를 보기 위해서다.

박 시장의 4년에 걸친 이 사업은 돌담길을 막고 있는 영국대사관과의 길고 긴 협상의 길이기도 했다. 박 시장의 노력 덕택에 덕수궁 북측 돌담길 200m 정도의 길 중 120m는 돌담길로 시민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마지막 80m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미 영국대사관의 건물이 깔고 있기도 했다. 결국 서울시는 국가사적 제124호 덕수궁의 경내에 길을 내어 덕수궁 돌담길을 잇기로 하고 문화재청과 협의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그 방안을 통과시켜 덕수궁 돌담길이 궁궐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서울시는 이 구간의 공사를 9월 한 달 동안 완료해 덕수궁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완성하고 문화재청은 시범적으로 개통한 ‘고종의 길’과도 연결해 10월 일반에 정식 개방할 예정이다.

우리 답사단은 3년 전 정동 답사를 하면서 영국대사관 앞에서 돌담길 반환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큰 종이에 글자 한 자씩을 써서 들고 영국 대사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카드섹션을 했던 것이다.

3년전 김란기(살맛나는 골목세상 대표)씨 등이 정동과 덕수궁을 답사하면서 영국대사관에 덕수궁 돌담길을 돌려달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환수된 돌담길 120m를 가기 위해 임시로 만든 협문을 통해 나간다. 1950년대 말부터 영국대사관이 점유했던 길이 훤하게 뚫렸다. 그간의 역사적 과정도 사진과 지도로 전시해두었다. 답사단은 드디어 이 짧은 길에도 많은 역사적 사연이 있음을 본다.

이 돌담길 끝에서 ‘고종의 길’과 만난다. 사실 ‘고종의 길’이란 의미가 뭔지에 대해 뚜렷하게 설명하기에는 아직도 의문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옛 경기여고 터, 말하자면 옛 선원전 터로 들어서자 바로 그 ‘고종의 길’이 나타난다. 옛 사진에 보이는 그 길과는 다르게 보이지만 어쨌거나 미국대사관저와 경기여고 터 사이의 그 경계선은 맞다.

이 길이 아관파천 때 고종이 간 길일까? 혹은 덕수궁으로 이어(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한 후 비상시에 이용하려 했던 길일까? ‘고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기록만 있다.

이 기록에는 아관파천 시 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이 길이 항간에 떠돌았던 ‘러시아공사관 비밀통로’였을까? 아니면 러시아 공사관 땅속에 덕수궁과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을까? 아직 다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 길이 아관파천의 길이었는지, 또 비상통로였는지, 둘 다이었는지 알 수 없다.

글·사진 김란기 살맛나는 골목세상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