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누구를 위한 집을 지을 것인가
이광수의 진보를 위한 투자 서울 주택 보급률 90%에도 ‘살 수 있는 집’은 기근
등록 : 2026-08-13 11:1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모습. 방이동 등 인근 빌라, 연립주택 단지와 함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공급 부족하단 논리는 틀린 진단
비싼 새집 재건축은 해결책 아니야 서울에 부족한 것은 집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집'이다. 서울에 집이 부족하다는 말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정치권도, 전문가도, 언론도 입을 모아 “공급이 부족하니 더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재건축 규제를 풀어 아파트를 대량으로 쏟아내는 것이 해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진단은 처음부터 틀렸다. 틀린 진단은 반드시 틀린 처방을 낳는다. 먼저 사실부터 보자.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90%대 중반에 이르렀고, 전국으로 넓히면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집이 사람 수만큼 없어서 문제인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집이 없다고 느낄까? 답은 간단하다. 집은 있지만, 그 집을 ‘가진 사람'과 ‘살아야 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국 자가보유율은 60%를 겨우 넘고, 서울은 그보다 한참 낮다. 상당수 집이 실거주가 아니라 자산으로, 투자 대상으로 보유되고 있다. 주택은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가격의 집'이다. 숫자는 더 정직하다.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서울의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13.9배였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모아야 서울에 집 한 채를 산다는 뜻이다. 청년 가구의 자가 점유율은 12.2%에 불과하고, 열에 여덟은 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조차 자가 점유율이 43.9%로 내려앉았다. 집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있는 집이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몇 채가 부족한가”가 아니라 “살 수 있는 집이 몇 채인가”를 물어야 한다. 질문이 틀리면 답도 틀린다. 그렇다면 재건축은 어떤가? 재건축이 새집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새집의 가격이다. 서울의 평당 분양가는 2023년 3553만원에서 2026년 5905만원으로 단 3년 만에 2천만원 넘게 뛰었다. 평당 5900만원이면 국민평형 한 채 분양가가 20억원에 이른다. 묻고 싶다. 20억원짜리 아파트를 중서민이, 청년이 살 수 있는가? 못 산다. 재건축이 공급하는 집은 애초에 이들을 위한 집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재건축은 ‘없던 집'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라, ‘있던 낡은 집'을 헐고 ‘비싼 새집'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 낡은 아파트는 그래도 서민이 전세로, 매매로 접근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재고였다. 재건축은 바로 그 저렴한 재고를 시장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20억원짜리 신축이 들어선다. 저렴한 집은 줄고, 비싼 집은 늘어난다. ‘살 수 있는 집'의 총량으로 따지면, 재건축은 공급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다. 재건축이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이유는 그 사업의 생리에도 있다. 조합과 시행사, 시공사는 분양가가 높을수록 이익을 본다. 공사비와 인건비, 땅값이 오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얹힌다. 여기에 “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신축 선호까지 더해져, 준공되자마자 분양가에 50%가 넘는 웃돈이 붙는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9% 가까이 올라 19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 재건축은 이 상승의 진화제가 아니라 부채질이었다. 아무리 많이 지어도, 그 집이 놓이는 가격대가 처음부터 중서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면, 공급은 통계 속 숫자로만 늘어날 뿐 실제 주거 문제는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물론 반론이 있다. 지금은 비싸도 신축을 많이 지어두면 결국 그 아래로 물량이 밀려 내려와 중저가 시장이 안정된다는, 이른바 ‘주택 여과'의 논리다. 이론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여과가 일어나려면 넉넉한 물량과 긴 시간이 필요한데, 서울은 재건축 지연과 공사비 갈등으로 입주 물량 자체가 오히려 줄고 있다. 게다가 새로 지은 집은 아래로 흘러내리기는커녕 ‘얼죽신' 선호와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시장 전체의 눈높이를 위로 끌어올린다. 투자 수요가 그 신축을 먼저 흡수해버리는 한 물량은 서민에게 여과되어 내려오지 않는다. 위로만 여과될 뿐이다. 그러니 ‘일단 많이 지으면 언젠가는 싸진다'는 기대는, 적어도 서울에서는 아직 한 번도 검증된 적 없는 신앙에 가깝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다. 그런데 자꾸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만 늘린다면, 식당은 늘어도 굶는 사람은 그대로다. 지금 서울의 주택 공급이 딱 그 모양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중서민과 청년이 실제로 매수할 수 있는 가격대의 집이다. 공공분양, 장기 공공임대, 토지임대부나 지분적립형처럼 분양가를 원가로 통제하고 시세차익을 공적으로 환수하는 공급 방식이 그것이다. 재건축하더라도 개발이익을 제대로 환수하고 그 재원으로 저렴한 물량을 확보해야 비로소 ‘살 수 있는 집'이 늘어난다. 시장에 그냥 맡겨둔 재건축은 서민의 집이 아니라 자산가의 시세차익을 찍어내는 기계일 뿐이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자. 서울에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살 수 있는 집이 부족하다. 이 한 문장을 인정하는 데서 모든 해법이 시작된다. 규제를 풀어 재건축만 늘리면 된다는 손쉬운 처방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키운다. 정확한 진단만이 정확한 처방을 만든다. 우리는 이제 “몇 채를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집을 지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