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서울&] 자유와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서울, 이곳 l 서대문독립공원과 안산자락길
등록 : 2026-08-13 10:56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이전할 때까지 80년 동안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한 곳이다.
독립문 앞에 두 개의 돌기둥인 영은문 주초가 보인다.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국민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학창 시절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자료사진으로도 보았고, 이 앞을 오가며 차 안에서 수도 없이 보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독립문 남측에 세워진 두 개의 돌기둥에 눈이 먼저 간다. 영은문 주초, 즉 영은문 기둥의 받침돌이라는 뜻이다. 독립문이 세워진 의주로는 서대문(돈의문)에서 시작해 평안도 의주까지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과의 교류와 사신 왕래에 사용되던 중요한 길이었다. 이곳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이 있었는데 바로 이 모화관 앞에 세워진 문이 영은문이다. 독립협회가 이곳에 독립문을 설치한 까닭은 사대 외교의 상징이며 청에 대한 굴복을 의미하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이제는 열강으로부터 우리 주권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전세계에 천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그렇게 온 국민의 열망대로 자주독립을 이루고 어떠한 강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와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땅은 가혹하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가장 아프고 혹독한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독립문을 세우고 11년 뒤,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하려 했던 이 자리에 일제는 교활하게도 대규모 근대 감옥을 설치해 항일 독립운동을 탄압했으니 이곳이 바로 서대문형무소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1987년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됐다. 지금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이전한 뒤 그 역사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1998년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고,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투옥됐으니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서대문형무소는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수감생활을 재현한 중앙사, 사형장, 순국한 이들의 시신을 몰래 내보내던 시구문, 한 줌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감방과 끔찍한 고문 도구들을 둘러보며 견학 온 어린아이도, 벽안의 외국인도, 그 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곳에서 차마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끌려온 유관순은 출소를 이틀 남겨둔 1920년 9월28일 숨을 거두었다. 유관순은 사형으로 죽지 않았다. 그 어린 소녀가 매를 맞고 발로 걷어차여 방광과 자궁이 파열되어 숨이 끊어졌다. 나였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손톱이 찔리고 발로 걷어차이면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
자연과 생태, 역사가 조화를 이룬 안산은 보행 접근성이 좋고 숲의 질이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