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서울&] 우리가 모두 추억하는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서울, 이곳 l 노원구 서울생활사박물관

등록 : 2026-07-30 12:02
옛 북부법조단지가 청사를 이전한 뒤 도시재생 차원에서 건물을 리모델링해 서울생활사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날도 덥고 간식도 필요할 것 같아 아이들에게 “너희 하드 먹을래?”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는 말. “하드요? 하드가 뭐예요?”

아이들이 ‘하드’를 모른다. 처음엔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눈치 빠른 아이 하나가 “선생님 혹시 아이스크림 말씀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었고, 내가 “아니, 아이스크림 말고 하드. 부라보콘 말고 누가바, 돼지바 이런 걸 모른다고?”라며 되묻자 아이들이 알려준다. 요즘은 그걸 다 아이스크림이라 부른다고.

아이들과 나의 나이 차이가 대략 40살 정도 난다. 그사이 많은 물건이 사라지고 단어도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많은 일이 연기처럼 사라졌고, 가끔 시대극이나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서만 그때 그 시절 추억의 장면들이 소환된다. 그마저도 하나둘 잊히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자체 제작한 최초의 자동차 모델 포니 택시.

2019년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재미를 선사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박물관이다. 전시된 물건들은 그 이야기를 끌어내는 도구. 이곳에 전시된 물건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더 잘 아는 것들이다. 아는 게 많은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진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 방 한 귀퉁이에 놓여 있던 요강, 부엌에 있던 석유곤로,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놓은 교실의 난로.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물건들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노원구 공릉동, 과거 북부법조단지가 있던 곳에 만들어졌다. 도시재생 차원에서 기존의 법원과 검찰청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건물들의 역사적 가치를 살렸다. 건물 자체로도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지만, 내부에는 더 세밀한 서울시민들의 일상이 기록돼 있다.


1910년 약 24만 명이던 서울 인구가 1988년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니 80년 만에 인구가 40배나 늘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배고픔과 눈물과 희열, 감격이 교차했을까.

박물관은 1층부터 3층까지 각각 서울풍경, 서울살이, 서울의 꿈이라는 주제로, 해방 이후 서울의 풍경과 결혼, 주택, 교육 등 생활 곳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 세대가 혹은 그 윗세대가 모두 직접 경험한 일들,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물건, 아주 작은 사진 하나에도 수백 수천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같은 세대 같은 추억을 가진 친구들과 이곳을 방문하면 함께 나눌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이곳을 방문한다면 모처럼 할 말이 많아진 어르신들이 얼마나 신나게, 혹은 눈물지으며 그 시절을 추억하실까.

우량아 선발대회 우승 어린이들이 분유의 모델이 되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2주나 더 있다가 태어나는 바람에 남들에게 대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몸무게를 갖고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우리 현정이는 어릴 때 우량아 선발대회 내보내려고 했지”라며 놀리셨는데, 당시 우량아로 선발돼 분유통에 얼굴이 턱 박힌 아기 사진을 보니 ‘저기에 내 얼굴이 들어갈 수도 있었겠다’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석유곤로 하나로 그 시절 어머니들은 어떻게 그 많은 반찬을 해낼 수 있었을까.

우리 아빠 총각 때 처음으로 라면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아버지 말씀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나’ 할 정도로 맛있었다며 생전에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더랬다.

전시장에서 아버지에게 들었던 그 시절 라면 포장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사무친다. 방학이면 동생들을 데리고 시민회관에 가서 ‘로보트 태권V’나 ‘마루치 아라치’ 같은 만화영화를 보았던 추억, 기성복이 흔치 않던 시절 동네마다 있었던 ‘○○라사’ 간판의 양복집 풍경, 도련님 한복에 두건을 쓰고 찍은 돌사진 등. 고생으로 얼룩진 누추한 과거일지라도 추억의 필터링을 거쳐 예쁘게 포장된 그 시절 추억들에 울고 웃는다.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올려 데워 먹곤 했던 교실의 연탄난로.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작은 물건, 그 시절 사진 한 장에 사라졌던 가족의 이야기가 다시금 살아난다. ‘하드’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는 어쩌면 조선 시대 역사만큼이나 막연할지도 모른다.

가족들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듣는 그 시절 서울살이의 흔적이 아이들에겐 얼마나 신기한 유물일까. 지금 내 집을 둘러본다. 언젠가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나의 공간이 부쩍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