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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천을 덮은 천만 송이 장미밭

서울, 이곳 l 중랑구 중랑장미공원

등록 : 2026-06-05 11:26 수정 : 2026-06-05 11:30
중랑천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장미꽃길에 벨베데레 품종 장미가 피어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대표주자는 누가 뭐래도 장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미만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꽃은 찾아보기 드물다. 누군가에게는 욕망의 상징으로,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비극의 상징으로 그림에, 노래에, 시에 수도 없이 등장했다.

‘사월과 오월’이 노래하는 ‘장미’는 낭만적이고, 심수봉이 노래하는 ‘백만 송이 장미’는 어딘가 비장하며, ‘다섯손가락’이 부르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쓸쓸하다. 대체 어떤 꽃이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이토록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중랑 서울장미축제는 올해로 18회를 맞이했다.

중랑 서울장미축제가 올해로 18회째를 맞았다. 벌써 18년째 축제를 열어오고 있어 지금은 ‘중랑천’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장미’가 떠오르지만, 실은 내 기억 속에 중랑천은 장마철이나 태풍이 올 때마다 무섭게 물이 불어나던 곳이다. 물이 빨리 모이는 지형적 특성으로 근처 우이천과 묵동천, 청계천 등의 지류에서 동시에 물을 쏟아내면 중랑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해 정말 무섭게 흘러내렸다. 그래서 1980~1990년대 중랑천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천만 송이 장미밭이 된 지금의 중랑천이 신기하기도 하고, 더없이 고맙기도 하다.

중랑천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장미터널.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 불곡산 부근에서 발원해 의정부, 도봉, 노원, 중랑, 성동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가는 서울 동북부 물길의 큰 축이다. 조선시대 중랑천은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양반들의 별서가 많았고, 왕이 왕릉으로 행차하다 중간에 쉬어가며 풍경을 감상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잠시 중랑천의 아름다움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주변 무허가 건물과 공장에서 흘려버린 생활폐수로 강이 오염되었던 것. 오염된 강을 되살리고 상습적 범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다시금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중랑천의 역사는 어찌 보면 한강의 역사, 서울의 역사와 닮아 있다.

중랑천에 처음 장미를 심은 건 1999년이다. 서울시 공공사업의 일환으로 꽃을 심은 건데, 삭막한 제방에 장미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햇빛을 잘 받고, 길게 뻗고, 경사진 제방에서도 잘 자라는 꽃. 그리하여 2005년에는 본격적으로 장미 터널을 조성하게 된다. 해를 거듭하며 장미밭은 규모가 점점 커졌고 지금은 총길이가 무려 5.45㎞에 이르는 거대한 장미꽃밭이 되었다. 북부간선도로를 따라 운전해 가다보면 대체 이 장미밭이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로 꽤 긴 구간 이어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랑천 장미공원에는 매년 200여 종의 장미가 식재된다. 우리는 그저 ‘장미’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 꽃을 통칭하지만 실은 각각의 장미는 색깔이나 크기, 모양, 향이 다르고 각각 이름도 다르다.

장미 꽃송이가 어른 두 주먹을 합친 크기만큼 크다.

중랑천 장미공원에 식재된 대표적인 품종으로 화사한 핑크 계열의 서머레이디, 흡사 붉은 벨벳 같은 느낌을 주는 슈바르츠 마돈나, 중랑천 장미 터널을 뒤덮은 분홍빛 작은 꽃송이 안젤라 등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장미가 다 향기로운 건 아니라는 점. 원래 야생의 장미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처럼 꽃잎 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겹겹의 장미꽃 이미지는 계속된 품종개량의 결과인데, 어떤 장미는 꽃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품종이 개량되었고, 어떤 장미는 향을 감상하기 위한 용도로 개량되고 있다. 신기한 건 꽃송이가 크고 색이 화려한 장미는 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향을 감상하기 위한 장미는 꽃이 작다. 명품 브랜드의 향수 원료로 사용되는 불가리아의 다마스크 로즈는 꽃송이가 크지 않은 대신 향이 깊고 복합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중랑천 산책로에 피어 있는 유채꽃이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중랑 장미공원은 큰 장미와 작은 장미가 다양하게 섞여 있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코로 느끼는 즐거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올해 89살이 되신 우리 어머님은 장 기능이 온전치 못해 먼 데로 여행 다니는 걸 불안해하신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달라져도 늘 집에만 계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가까운 장미밭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고 싶다. 긴 장미꽃밭이 데크길로 이어져 있고,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경사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어 걸음이 편치 않은 노약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비록 5월의 축제는 끝났지만, 중랑천을 화려하게 수놓은 장미는 여전하고, 오히려 축제 때보다 한적하게 꽃길을 즐길 수 있어 좋다. 평생을 애쓰고 사신 어머님께 장미 한 송이 건네는 마음으로 천만 송이 장미밭에서의 한나절을 선물하고 싶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