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음식이 불고기였다. 아마 자주 먹는 반찬이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재탕 삼탕 우려 오래 먹을 수 있는 사골국물이 밥상에 올라올 때면, “한 번을 먹더라도 뼈 살 돈으로 고기를 사서 맛있게 먹는 게 낫겠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귀하게 먹어서 그런지 좋은 날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내 기억 속 가장 맛있는 음식은 가운데가 불룩 솟아오른, 구멍 숭숭 뚫린 철판 위에 익혀 먹던 옛날식 불고기다.
커서는 고기를 덜 좋아하게 됐다. 그러다 최근 고기 소비가 늘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비중을 높이려다보니 식단에서 고기 비중이 자연히 높아졌다. 단백질 공급원으로 육류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채식이 좋다는 사람도 있어서 뭐가 좋은 건진 모르겠다. 건강 정보도 워낙 유행을 많이 타서 이리저리 휩쓸리기 쉬운데, 자기 체질을 고려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겠다.
서울에서는 마장동 축산물 시장과 독산동 우시장이 가장 규모가 큰 축산물 도매 시장이다. 두 곳 모두 도축장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인데, 지금은 도축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도매 시장과 식당들만 남았다. 독산동 우시장은 1974년 형성됐다. 과거에는 밀도살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주도로 도축장이 생겼다고 한다. 도축장 주변으로 도매상점들이 늘어나면서 독산동 우시장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초창기 도매 시장 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현업에서 뛰고 있는 상인들은 그때가 가장 호황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유창상가 건물 지하와 지상층에 도매점포들이 입점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오히려 규모는 작아진 느낌이다. 20년도 훨씬 전에 엄마와 함께 독산동 도매 시장을 와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흥대로에서 독산역 방면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따라 길 양쪽에 정육점이 즐비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길거리에 있던 상점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유창상가 등 인근 상가건물로 점포들이 입점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해졌다. 고갯길 초입에 우시장임을 알리는 소 조형물이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동네마다 시장마다 정육점이 많은데도 굳이 전문시장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고기 때문만이 아니다. 간, 천엽, 등골 같은 신선한 부산물을 찾아 이곳에 오는 사람이 많다. 시장 상인 이병두씨에 따르면 “도축한 고기는 경매장을 거쳐 바로 여기로 온다. 그래서 고기는 어제 도축한 고기고, 내장 같은 부산물은 계약을 맺은 상가로 바로 가져와 판매하기 때문에 신선하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식당들도 푸짐한 양과 맛으로 이미 마니아층이 두텁다. 특히 건더기 푸짐한 내장탕은 독산동 우시장의 스테디셀러다.
뭘 사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시장 상인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다. 구경하다 좋은 게 있으면 사겠다고 했더니, ‘잡육’을 보여줬다. ‘잡육’은 고기를 발골하고 손질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고기 조각을 말한다. 국을 끓이거나 장조림으로 활용하면 맛있다며, 1만원어치 살지 2만원어치 살지 물으셨다. 소고기 덩어리를 1만~2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2만원어치 달라고 했더니, 세상에 2㎏이나 줬다. 이걸 언제 다 먹나 아득했지만, 가격 좋고 품질이 좋으니 내공 있는 주부라면 독산동 우시장에서 분명 만족할 만한 쇼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여기서 작업하고 판매하는 상인들의 작업환경은 지금보다 좀 더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무자의 작업환경이 곧 소비자의 발길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물론 과거보다는 훨씬 좋아졌고, 도시 재생 사업을 시행하는 등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더 혁신적으로 환기할 수 있는 방법, 더 위생적인 작업환경, 동물 윤리까지 고려한 도축 시스템에 대한 요구는 비단 독산동 우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축산물 유통산업에 남겨진 과제다. 지금보다 더 현대화될 수 있다면 과거 전성기 시절 독산동 우시장의 인기를 되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곧 추석이다. 도매 시장을 이용하면 추석 밥상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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