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역사의 선물, 왕릉 답사
서울, 이곳 l 강남구 선정릉
등록 : 2025-09-11 20:16
500년 시간을 건너 빌딩 숲과 왕릉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홍살문 너머로 빌딩 숲이 보이는 풍경.
왕릉의 가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외에 숲의 가치로도 매우 소중하다. 그동안 선정릉 앞을 수도 없이 다녔으면서 안까지 들어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밖에서 보며 넓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놀랐고, 도심과 숲이 이렇게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능 주변을 걷다보면 소나무, 뽕나무, 느티나무, 때죽나무, 오리나무 등이 울창하게 식재돼 있어 이곳이 강남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왕릉을 지을 때 경복궁을 중심으로 10리 밖 100리 안에 조영했다고 하는데, 만약 이곳이 왕릉이 아니었더라면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 과연 이렇게 완벽한 숲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숲이 울창하게 잘 보존돼 있다 하여 이곳을 단순히 공원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왕의 시신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왕릉의 예법이 있다. 여흥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경건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주의해야 할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조선왕릉에는 반드시 제향 공간인 정자각이 하나씩 있는데,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까지 나있는 길인 ‘참도’는 혼령이 지나는 길인 ‘신도’와 사람이 밟을 수 있는 ‘어도’로 구분돼 있다. 정자각에서 내려오는 계단에도 신계와 어계가 있는데, 신계는 사람이 밟아서는 안 된다. 월대에도 함부로 앉으면 안 되고, 공원 내에서 맨발 걷기도 금지돼 있다. 안내문에 써 있는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얼마든지 쾌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으니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조선왕릉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만약 외국인 손님을 맞이할 일이 있다면 이곳에 와서 능의 건축물이나 왕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유물, 유적을 보면서 조상이 만들어둔 문화유산 덕에 후손이 덕을 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찾아보면 서울 안에도 우리 조상이 안겨준 선물 같은 공간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이번 주말엔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