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바쁠수록 짧은 쉼이 필요한 이유

서울, 이곳 l 양천구 서서울호수공원

등록 : 2025-08-28 12:49
서서울호수공원 정문

고등학교 2학년인 조카가 힘겨운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이했다. 말이 방학이지 평소보다 더 바쁜 학원 일정을 소화한 모양이다. 얼마나 잠이 쏟아지고, 얼마나 놀고 싶을까.

나는 고등학교 때 아침에 학교 갈 시간이 되면 그렇게 창자가 꼬이듯 아팠던 기억이 난다. 해야 할 과제는 많지, 잠은 쏟아지지, 오죽 스트레스가 많았을까. 방학을 빡빡하게 보내고 난 조카가 이제 정말 힘을 내야 하는 2학기가 됐는데 되레 번아웃이 오는 건 아닐지 염려된다.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 사이 10분씩 반드시 쉬는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짧은 휴식의 필요성을 깨달은 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글이 술술 써지는 경우는 드물다. 생각이 막힐 땐 쉼을 통해 뇌를 환기해줘야 한다. 쉬는 방법 중에 드러눕는 것만큼 편한 건 세상에 없다.

문제는 드러누우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남아 있던 에너지마저 고갈된다는 거다. 내가 선택한 쉼의 방법은 걷는 것이다. 적당히 땀날 만큼 걷고 돌아와 씻고 나면 다시 책상머리 앞을 지킬 힘이 생긴다.

서서울호수공원은 산책하며 머리를 환기하기에 제격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제법 큰 규모의 중앙호수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신기한 건 호수에 분수대가 설치돼 있는데, 공원 상공을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를 감지해 작동하는 ‘소리 분수’라는 점이다.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잔잔한 호수에 분수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재미있다. 커다란 호수를 빙 둘러 데크 길이 설치돼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서서울호수공원은 원래 1959년 김포정수장으로 문을 열어 서울시가 정수장 정비 종합계획에 따라 가동을 중단한 2003년까지 신월정수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기존 정수장 부지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물’과 ‘재생’을 테마로 친환경 공원을 조성했고, 인근 능골산까지 아울러 거대한 녹지공간이 탄생했다.


몬드리안 정원

서서울호수공원 여러 공간 중 몬드리안 정원은 과거 이곳이 정수장 부지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몬드리안이 직선과 직각의 구조를 활용해 작품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추상미술 작가인 것처럼, 정원 이름을 ‘몬드리안’이라 붙인 건 과거 정수장 침전조를 그대로 활용해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수직과 수평 구조를 형상화한 공간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재생의 의미도 살리고 미학적으로도 무척 아름답다. 특히 옛 정수장 건물 골조를 그대로 활용해, 오래된 기둥이 초록의 수풀과 조화를 이룬 모습은 흡사 비밀의 숲처럼 신비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과거 정수장 골조를 살려 신비로운 매력이 느껴진다.

100인의 식탁

100명이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을 만큼 긴 식탁이 설치된 ‘100인의 식탁’,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하는 ‘열린 풀밭’, 잔디마당에서 능골산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등 군데군데 다양한 장면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 재미있다. 인접한 신월야구장에선 고교 야구선수들이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시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덩달아 힘이 난다.

나는 원래 몸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학교 다닐 때도 체육 시간을 제일 싫어했고, 특히 땀 흘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데 최근 땀을 흘리고 난 뒤 긴장과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경험한 뒤로는 땀 흘리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한두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는 비를 맞지 않으려 몸을 사리다가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비를 맞고 난 뒤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우산 없이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 같은 마음이 된달까? 처음엔 화장이 지워질까, 옷이 젖을까 조심하지만, 막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나면 송골송골 맺힌 땀이 오늘 하루를 건강히 잘 살아냈다는 훈장처럼 느껴져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호수를 둘러싼 데크광장에선 다양한 문화공연도 펼쳐진다.

조카를 비롯해 수능을 코앞에 둔 입시생들에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게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산책할 여유가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수험생들이 교실 안에만 갇혀 있지 말기를 바란다. 짧은 쉼을 통해 건강한 에너지를 채워가며 끝까지 완주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