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 한강공원 물놀이장은 인피니티풀로 만들어 개방감이 좋다.
글을 쓸 때 가끔 특정 음악이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 이번 호 ‘서울, 이곳’을 소개하기 위해 ‘난지 한강공원 물놀이장’을 다녀온 뒤부터 나는 며칠 동안 줄곧 가수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을 흥얼거리고 있다.
“짧았던 우리들의 여름은 가고, 나의 사랑도 가고, 너의 모습도 파도 속에 사라지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어 이젠 추억이 되어, 나의 여름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 오랜만에 풀장을 보니 어릴 적 여름방학의 추억이 자동반사로 떠올라 노랫가락이 머릿속을 맴돌았나보다.
초등학교 때 나는 방학이면 “심심해 죽겠다, 아무 데도 가질 않으니 일기에 쓸 게 없다, 우리도 어디 좀 가자”며 그렇게도 부모님을 졸라댔다. 그 결과는 대개 “방학 숙제다 했냐”는 잔소리로 끝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만만하게 다닐 곳이 풀장인지라 방학동안 족히 서너 차례는 풀장에 다녀오곤 했다.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촌스러운 수영모를 쓰고, 수영복 자국이 그대로 나타나도록 등짝을 시커멓게 태웠던 여름날의 기억들. 물놀이가 없었다면 여름을 대체 무슨 재미로 보냈을까.
물이 잘박잘박한 풀장 주변을 뛰어다녔던 맨발의 감촉,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물속에서 놀다 나오면 엄마가 살포시 덮어주셨던 타월의 온기, 그때 먹었던 김밥이랑 사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여름날의 추억’이다.
최근 한강이 더 좋아졌다. 어린 시절 다니던 네모반듯한 풀장만 생각하다 ‘난지 한강공원 물놀이장’을 보니 서울에 한강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감탄이 나온다. 한강을 따라 난지, 양화, 여의도, 잠원, 뚝섬, 잠실까지 6개의 한강공원 물놀이장이 지난 6월 일제히 개장했다. 각각의 수영장은 풀(pool)의 크기와 모양도 다르고 유수풀, 아쿠아링 등 저마다 특징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시즌권을 끊어 6개 한강 수영장을 골고루 다녀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그중에서도 난지 한강공원 물놀이장은 요즘 유행하는 인피니티풀로 만들어 개방감이 좋다. 인피니티풀은 풀장 한쪽 경계면이 주변 물이나 하늘과 연결되도록 만들어 시각적 효과를 준 수영장을 말한다. 난지 한강공원 물놀이장은 풀의 가장 긴 쪽 경계면이 한강과 맞닿아 있어 시야가 툭 트였고, 이 장점은 특히 저녁놀이 질 때 극대화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 수상레포츠센터 선셋 카약
최근에는 한강에서 전동포일, 웨이크보드, 윈드서핑 같은 다양한 수상레저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업체지만 지난 5월 난지 한강공원에 문을 연 ‘서울 수상레포츠센터’는 서울시가 운영해 카약과 킬보트, 딩기요트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체험할 수 있어 좋다.
요트를 타고 난지에서 밤섬을 지나 노들섬까지 한강을 탐사하는 ‘청소년 요트 챌린지’도 추천하고 싶다. 땅에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과 달리, 반대로 강에서 수변을 바라볼 땐 한강의 어떤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네이버 플레이스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데, 선셋 카약은 워낙 인기가 많아 평일에도 예약이 꽉 찼다고 하니 한강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겨울방학보다 유독 여름방학의 추억이 많은 건 여름 햇볕 아래 과일이 영글듯 유년의 동심도 여름 햇볕 아래 맛나게 익어갔기 때문일 거다. 숙제부터 끝내라고 잔소리하던 부모님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분들이 만들어주신 여름날의 추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풍성한 정서적 토양이 돼주었다.
요즘은 초중고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3주 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 어릴 적에는 적어도 제헌절 전에는 방학을 시작해 광복절이 지나서야 개학했던 것 같은데, 한 달도 안 되는 방학 동안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탐구생활’이랑 일기, 독후감 같은 숙제들이 있었지만 벼락치기로 끝낼 수 있는 분량이어서 한 달 넘는 방학을 여유있게 놀며 지낼 수 있었던 나의 유년기와 달라졌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 다녀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도 한다. 훗날 이 아이들이 기억할 ‘여름날의 추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사진 서울수상레포츠센터 김형기 센터장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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