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벼룩시장에 내리쬔 봄의 마술
쌍둥이 엄마의 베를린 살이
등록 : 2016-04-07 10:02 수정 : 2016-04-27 15:28
독일 베를린 벼룩시장. 맨몸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에게는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고마운 장소다.
지난주 일요일 남편과 나는 꽤 오래간만에 그 시장을 찾았다가 적잖이 놀랐다. 상인들도 그대로고 물건들도 그대로였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손님들로 꽉 차 시장 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쳐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절대로 팔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물건들이 팔려 나가는 모습이었다. 흩어진 색연필이며 낡은 슬리퍼, 짝짝이 살림살이들이 내 눈앞에서 속속 사라져갔다. 여느 때 같으면 그저 핸드폰이나 뒤적이며 무료히 앉아 있었을 상인들이 그날은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서서 장사에 여념이 없었다. 시장은 이미 우리가 알던 그 쓰레기 시장이 아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청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낯선 옷차림의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 새로운 난민보호시설이 마련되었다는 뉴스가 머릿속을 휙 훑고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얼굴을 아는 몇몇 상인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서 이 비싼 물가에 어떻게 필요한 걸 다 새로 살 수 있겠어. 저 사람들이 살 길은 여기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 남자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희망 찬 얼굴이었다. 그 뒤로 얇은 티셔츠 차림의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로 보이는 한 소녀가 케밥 한 개를 한입씩 번갈아 가며 나누어 먹고 있었다. 반팔 블라우스에 맨발에 까만 구두를 신은 그 어린 소녀는 한순간도 엄마 손에 들린 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왜 나는 괜히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다시 고쳐 둘렀는지 모르겠다. 봄이 왔다. 2016년 봄은 손님을 데리고 왔다. 부디 저 손님들에게 베를린의 첫봄이 너무 쌀쌀맞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글 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