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서 진행된 ‘예술가의 런치박스' 행사. 관람객들이 최경주 판화작가의 작품 설명이 끝난 뒤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지난달 24일, 낮 12시가 가까워지자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로비가 분주해졌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더니 프로젝터(영상을 확대해 스크린에 비추는 기기)에 마이크, 도시락까지 등장했다. 시립미술관 로비가 어느새 레스토랑으로 변했는데, 매달 둘째, 넷째 화요일 점심시간에 열리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를 위해서다.
시립미술관은 2013년부터 예술가와 관람객이 함께 점심을 즐기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람객이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보고, 퍼포먼스에 참여하면서 현대미술에 가까워지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달마다 장소와 작가가 바뀌는데, 선착순 예약에 성공한 40명만 1만원을 내고 참여할 수 있다.
1월 넷째 주 런치박스 예술가는 판화작가 최경주씨와 트럼펫 연주자 이동열씨가 함께하는 디자인 팀 ‘아티스트 프루프’다. 최 작가는 스크린프린팅, 소묘, 페인팅 등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이 빨간 동그라미가 무엇으로 보이나요?” 최 작가가 던진 질문에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하게 모인 관람객들이 저마다 답을 내놓는다. “사과!” “석류 같은데?”
30분 남짓 작품 설명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됐다. 도시락은 실크스크린 판화로 만든 보자기에 싸여 나왔는데, 관람객에게 주는 작가의 작은 선물이기도 했다. “작품이 도형의 ‘중첩’을 콘셉트로 잡은 만큼, 요리도 훈제오리, 훈제연어, 크림치즈 맛이 섞이면서 드러난 조화를 표현했습니다.” 최 작가와 함께 도시락을 준비한 권민택 요리사가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트럼펫 연주자 이동열씨가 등장해 ‘룩 투 더 스카이’(Look to the sky)를 시작으로 잔잔한 보사노바풍 연주를 이어갔다. 탁 트인 천장, 작품으로 가득한 벽면, 이국적인 재즈 연주까지 더해지니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순간이었다.
“작품에 숨은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네요. 음악도 좋고 요리도 맛있고. 1만원으로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리겠어요!” 김하림(32)씨는 ‘대기명단’에 올랐는데 빈자리가 생겨 운 좋게 왔다고 했다.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프로그램 한 달 전,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데, 별다른 홍보 없이도 금세 마감이 된다는 게 미술관의 설명이다.
오늘 참여가 처음이 아닌 관람객도 있다. “2013년부터 왔으니까 10번도 넘어요. 그냥 감상하는 것과 작가와 만나는 건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어렵게 느껴지는 현대미술과의 간극을 줄일 수도 있고.” 박정하(45)씨는 이날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 왔는데, 평소에는 친구들과 자주 참석한다고 했다. 옆에서 도시락을 맛있게 먹던 박씨의 아들 채상현(12)군은 도시락을 싼 보자기가 마음에 든다며 내보였다.
6월까지 ‘예술가의 런치박스’에 참여할 예술가는 정해져 있다. “작품 앞에서 인증샷만 찍는 겉핥기식 관람이 아니라, 작품을 이해하고 관람객이 참여자가 되는 감상 트렌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추여명 큐레이터가 프로그램을 기획한 취지를 설명했다.
한편 시립미술관은 매월 둘째·마지막 주 수요일 미술관 야간 개장 시간(19~22시)에 맞춰 이달의 전시, 문화행사 이벤트 등을 선보이는 ‘뮤지엄나이트’도 12월까지 무료로 연다. ‘예술가의 런치박스’와 ‘뮤지엄나이트’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서울시립미술관 누리집(sema.seoul.go.kr) 또는 교육홍보과(02-2124-8994)로 하면 된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