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내가 주인공인 ‘인생의 노트’를 써보세요
[내 삶의 주인되기] 40대 직장인 "묵묵히 내 일을 하지만 불안해요"
등록 : 2016-03-31 14:50 수정 : 2016-05-20 12:0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그러자 신기하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울분이라는 이름의, 마음속의 독 기운이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는 절묘한 해독제였습니다. 그곳은 나만의 독립 국가였습니다. 비록 직장에서는 보잘 것없는 존재일지 몰라도 이곳에서만큼은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지요. 어느 날 그 노트에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내 인생의 당당한 주어(主語)다.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백을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직장인들의 현실 아니던가요. 노트는 단순히 치유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점차 나만의 무형자산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노트에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아이디어는 새벽의 이슬처럼 어디론가 흔적 없이 증발되어 버렸을 겁니다. 내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적어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노트 덕분이었습니다. 노트와 수첩들은 제2의 인생을 사는 데도 기적처럼 힘이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강의하는 데도 보물이었습니다. 단지 외국 서적을 요약한 강연에는 어딘가 생소하고 청중들에게 공감을 얻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퇴직 이후 잠시 홍대 부근의 한 출판사 주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할 때의 일입니다. 매주 1회 저녁 시간에 직장인들 대상의 강의였는데, 판교와 잠실, 인천 같은 먼 곳에서 찾아올 정도로 그들은 열성적이었습니다. 계획했던 코스가 끝날 무렵, 우리는 근처의 카페에서 음료를 나누며 가벼운 뒤풀이를 하였지요. 저는 함께했던 수강생들에게 소지한 가방 속에서 ‘나만의 소중한 것’ 하나씩 꺼내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노트를 꺼냈던 것입니다. 그 안에는 제각각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혹은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노트는 단순한 종이묶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꿈’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를 말할 때 그들의 얼굴은 행복에 들떠 있었습니다. 요즘 물론 ‘에버노트’ 같은 디지털 방식의 노트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방식의 재래식 노트도 여전히 소중합니다. 뭔지 모를 불안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손으로 직접 만져지는 촉감은 중요합니다. 수첩과 노트는 좋은 친구이자 멋진 장난감입니다.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작가와 예술가들의 수첩이라는 몰스킨(Moleskine)이 디지털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연간 1000만권이나 팔려나간다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사려고 합니다. ‘이것은 글자가 아직 쓰이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이다’라는 몰스킨의 브랜드는 그것을 노린 콘셉트입니다. 개인의 정체성과 철학이 담긴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시대인 것이죠. 저의 눈에 세상은 노트를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이름 없는 공책과 수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얼마 전, 새롭게 인생 도전을 하게 된 40대 커리어우먼과 함께 자리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저에게 양해를 구한 뒤 가방 속에서 붉은색 노트를 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부족한 게 많습니다. 가르쳐주시면 큰 도움 되겠습니다!” 객관적으로 그녀는 저보다 훨씬 배운 것도 많고 경력도 화려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심리란 것이 묘해서 자기에게 묻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기 마련입니다. 그녀가 가진 남모를 경쟁력, 그녀만의 콘텐츠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붉은색 허름한 노트였습니다. ‘왜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가?’라는 푸념을 종종 직장인들로부터 듣습니다. 일리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기회조차 봉쇄된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기회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불쑥 출근하는 내 문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기회는 허공으로 날아갑니다. 허망한 무지개처럼 말이지요. 직장인들의 운명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인생만큼은 내가 당당히 이끌고 갈 수 있습니다. 노트만 있다면 말이지요. 때로는 노트가 기적처럼 새로운 인생도 가져다준답니다. 답답한가요? 그렇다면 오늘부터 노트를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전 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