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 고시촌 청년들, 서로를 연결하는 공간 만들다

행복둥지 공모전 SH 공동체 부문 대상 후보 관악구 신림동 ‘호암로 스튜디오’

등록 : 2022-12-08 16:31 수정 : 2022-12-09 14:57
신림동 고시촌에 사는 대부분 청년 1인가구의 집이 해줄 수 없는 역할을 공유주택 ‘쉐어어스’(1~4호점)의 커뮤니티 공간이 대신해준다. 쉐어어스는 공유텃밭, 창작공방, 공유주방 등 호점마다 특색 있는 공간들을 운영해왔다. 코로나19 시기에 멈췄던 커뮤니티 활동이 최근 입주자 재능 나눔 원데이 클래스 모임 ‘호암로 스튜디오’로 발전했다. 입주자 5명이 주축이 되어 내년 3월 개강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1 2018년 11월 3호점 커뮤니티 공간에서 목공 클래스가 열렸다.

1인가구 청년 비율 가장 높은 지역

일상 이외 시간과 공간 찾기 어려워

공유주택 ‘쉐어어스’ 3호점 입주자가

자발적 재능기부 ‘민화 클래스’ 열어


뒤풀이하며 커뮤니티 모임으로 발전

지역의 더 많은 청년이 함께하도록


공간 마련, 재능 나눔 강좌 기획 중

‘마을 전체를 내 집처럼’ 변화 꿈꿔

나는 2015년부터 고시원 밀집 지역의 독특한 생활방식에 주목해 도시주거의 거주환경을 연구해왔다. 특히 1인가구 청년 비율이 가장 높은 신림 고시촌에 주목했다.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시촌인 관악구 신림동 일대는 소위 고시로 일컬어지는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과 인근 지역 대학생, 외국인 유학생, 그리고 지방에서 취업을 위해 상경한 취업준비생과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 등 갖가지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 고시촌으로 모인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은 다양한 배경만큼이나 다양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렇지만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잠시 머무는 이곳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만큼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고시촌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일상을 위한 것 이외의 시간과 공간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지난 11월 3호점에서 열린 민화 클래스 수강생들이 완성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생활하는 쉐어어스 3호점 청광에는 저마다의 재능을 가진 청년들이 입주해 있다. 지난 9월에 참여했던 민화 클래스는 화가인 입주자가 자발적으로 주최한 모임으로 이미 몇 차례 열렸다.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은 입주자가 또 있음을 알게 됐다. 악기를 연주하는 입주자는 연주회를, 약사인 입주자는 복약에 대한 지식 상담을, 프라모델 만들기가 취미인 입주자는 프라모델 제작과 전시를 하는 것이었다.

호기심으로 참석했던 모임이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졌다. 각자의 재능을 살린 원데이 클래스를 개최해보면 어떨까 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고 카톡방을 이용한 소통과 오프라인에서의 정기 모임을 통해 각자의 역할과 목표를 구체화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사업으로 확장하려는 꿈을 갖고 공식적인 모임 명칭을 원데이 클래스로 지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실행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더 많은 참여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간 확보가 우선돼야 했다. 마침 쉐어어스의 매니저로부터 쉐어어스 3호점 청광의 지하 스튜디오가 정리되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로 내부를 자체적으로 정리한다면 모임에 사용하도록 제공해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곧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스튜디오 정리 작업에 나섰다.

각자 짬을 내 함께하는 작업이라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공간을 꾸미는 데 드는 비용 부담도 있었다. 가능한 한 주변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고 작업 시간을 집중한 덕분에 그래도 구색을 갖춘 클래스룸 하나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원데이 클래스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자를 모집하는 홍보를 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을 운영할 체계를 갖춰야 했다. 우리는 각자 역할을 나누기로 하고 우선 실행 가능한 원데이 클래스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불과 3개월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3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디디고 있다.

2018년 9월 2호점 루프탑에서 진행한 가드닝 클래스.

사실 고시촌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청년 1인가구 집은 마당은커녕 베란다, 거실, 주방 등의 공간을 갖기 어렵다. ‘내 방’의 역할을 하기에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집이 해줄 수 없는 역할을 쉐어어스의 커뮤니티 공간이 대신하며 더불어 자연스러운 관계 맺음의 매개체가 돼준다고 생각한다.

쉐어어스에 입주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곳에는 다양한 개인의 삶들이 바쁜 생활 속에 스쳐 지나버려서 공동체로서의 의식이 좀처럼 자리 잡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존재하고, 이러한 의지를 서포트해주는 쉐어어스 같은 공유 공간을 통해 지역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쉐어어스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호점마다 특색 있는 커뮤니티 공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호점에는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공유텃밭이, 어떤 호점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공방이, 또 다른 호점에는 함께 요리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유주방이 있다. 비좁은 원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취미 생활이 가능한 공간들이 신림동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시설은 쉐어어스 입주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중 쉐어어스 청광점에는 지하에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다. 본래 이곳의 테마는 마을 공방이다. 폐목재를 활용해 새 가구로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고장 난 물건을 가져와 수리할 수 있는 곳으로, 1인가구가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각종 공구를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4호점 커뮤니티 공간 ‘신림다락’ 전경.

서림길 라운지(1호점)는 쉐어어스 최초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서림길 라운지는 다양한 가구가 모여 소통할 수 있게 조성한 공간이다. 입주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열려 있다. 손맛이 좋은 이웃 아주머님을 강사로 초빙해 입주자들과 함께 밑반찬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지역 주민을 초대해 자투리 극장도 열었다고 한다. 주민과 입주 청년들의 소통을 위한 장을 지속해서 마련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첫 프로그램으로 민화 클래스가 열렸다고 한다.

신림로 루프탑(2호점)은 볕이 잘 들어 바비큐장, 식물 재배를 할 수 있는 공유텃밭이 있다. 2019년에 오픈한 신림다락(4호점)은 주변에서는 찾기 어려운 복합문화공간으로, 1층과 지하층 두 개 층을 연결해 만들어진 근사한 공간이다. 이곳 1층에 있는 카페 한편에는 요리와 식사가 가능한 공유주방이 있고 지하에는 노래나 연주가 가능한 방음 공간, 회의할 수 있는 미팅 공간, 다양한 행사를 위한 넓은 라운지가 마련돼 있다.

특히 신림다락은 쉐어어스 입주자에게 응접실 같은 구실을 하는데, 멀리서 나를 찾아온 손님과 내 방이 아닌 신림다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 대화하고 나면 마치 이곳이 내 집 거실과 같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여러 커뮤니티 공간들은 각각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있어 마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2호점 신림로 루프탑에서 기른 식물로 4호점에 있는 공유주방에서 함께 요리해 먹고, 남는 음식은 1호점 서림길 라운지에서 다른 이들에게 나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인 3호점 호암로 스튜디오에서는 지역 주민과 입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할 수 있다.

좁은 방에서 한 발자국 내디뎌 동네로 나오면 곳곳에 내 집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고 그곳에는 항상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 살아 숨 쉬는 마을. 공간이 매개체가 되어 주민 사이 자연스러운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면 이주성이 강한 지역의 특성이 상쇄되고 정착하여 살고 싶은 동네로 변모할 것이라 믿고 있다.

누군가는 신림동을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 말한다. 인근 학교에 다니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 년간 머물렀다가 취직하거나 시험에 합격해 형편이 좋아지면 금세 떠난다. 그래서인지 서울 내 다른 지역보다 월세나 물가가 저렴하지만 그만큼 주거와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분위기가 삭막하다. 이런 신림동을 ‘견디는 곳’이 아니라 도시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이 되길 우리는 꿈꾼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쉐어어스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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