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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끌고 재미 더한 ‘스마트한 치매 예방·치료’ 인기

등록 : 2022-01-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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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치매안심센터는 2019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프로그램 운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태블릿, 가상현실(VR), 로봇 등 디지털기기로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활용해 치매 예방과 관리 효과를 높여간다. 사진은 1월13일 오전 센터 프로그램실에서 어르신들이 ICT 활용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습. 가상현실 게임형 콘텐츠 ‘리얼큐브’.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 ICT 기반 인지 프로그램 선보여

태블릿·VR·로봇 등 디지털기기 활용, 관리효과 향상

“여기서 컴퓨터로 집중력이나 기억력 훈련을 해서 그런지 깜박깜박하는 것이 많이 좋아졌어요.”(이정휘 할머니)

“(수업 시간에 가상현실(VR) 프로그램으로 해봐서) 이제 음식점 같은 곳에서 키오스크로 주문도 할 수 있게 됐어요.”(오수 할아버지)

동대문구치매안심센터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스마트 인지 프로그램 참여자들 소감이다. 프로그램에선 인지 기능 향상을 위해 가상현실·태블릿·로봇 등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훈련이 이뤄진다. 이정휘(77) 할머니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걱정하는 딸이 이곳을 소개해줘서 다닌다”며 “이제는 날짜도 잘 기억하고 전체적으로 좋아진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했다.

지난 13일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치매안심센터 1층 프로그램실 3곳에서는 오전반 수업이 한창이었다. 공간이 가장 넓은 채움반에서는 어르신 2명이 대형 스크린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스티로폼 방망이로 톡톡치고 있었다. 5명은 뒤쪽 자리에 나란히 앉아 지켜봤다.

“어르신, 때려요. 잘하시네요. 이러다 1천점 넘겠는데요. 호호.” 장경순 작업치료사가 어르신들을 독려하며 진행했다. 급한 마음에 방망이로 스크린을 비질하듯 쓰는 어르신 모습에 웃음이 교실 안을 채웠다. 한 게임을 마친 뒤 난도를 높여 물방울 색깔별로 터뜨리는 활동을 이어갔다.


이날 수업 시간에 활용한 게임형 콘텐츠 ‘리얼큐브’는 케이티(KT)의 혼합현실(MR)서비스다. 인지력과 체력을 동시에 길러준다. 리얼큐브는 기기나 안경 모양의 모니터 등 특별한 장비를 쓰지 않고도 가상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현실 공간에 반응형 기술과 위치·동작 인식 센서를 연결해 메타버스 환경에서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태블릿으로 그림 맞추기 등을 하는 ‘코트라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두더지 게임 등을 하는 멀티터치 기반 ‘해피테이블’.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동대문구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리얼큐브를 비롯한 8가지 프로그램으로 ‘ICT기반 스마트 존’ 계획을 세워 단계별로 시행하고 있다. 일상생활 동작 훈련, 인지 치료, 운동 치료, 정서 지지 등 4가지 영역으로 구성했다. 가상현실, 닌텐도 위(Wii) 모션으로 일상 동작 훈련, 태블릿 활용 ‘코트라스’, 멀티터치 기반으로 두더지 게임 등을 여럿이 같이하는 ‘해피테이블’로 인지훈련이 이뤄진다. 대화·노래·춤 등을 하는 알파미니 로봇은 정서 돌봄에 활용한다. 현재는 프로그램실 세 곳에 나눠 진행하지만 향후 한곳으로 모아 체험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센터가 ICT 기반 프로그램 운영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2019년 리모델링을 하면서부터였다. 노인이라고 오래된 것만 적용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 치매 예방과 관리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치매국가책임제와 한국형 뉴딜 정책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서비스가 다양해져 선택지도 넓어졌다. 이미애 총괄팀장은 “참여 어르신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며 “정상군, 고위험군, 치매군으로 나눠 맞춤형 관리를 하며 확대해가고 있다”고 했다.

뇌파 변화 측정으로 인지건강 관리에 도움을 주는 가상현실 인지 훈련 ‘루시’.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리모델링 이전에는 주로 낱말이나 퀴즈맞히기 등 회상요법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요즘은 디지털기기 활용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이 팀장은 “흥미를 끌고 재미가 더해지니 어르신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전했다. 치매 증상이 생기거나 진단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표정이 밝아진다고 한다. “‘나도 유튜브, 큐아르(QR)코드 사용할 줄 안다’며 자신감이 생기면 어르신들의 자존감도 높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이 팀장은 말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걸리는 치매 ‘초로기’에 ICT 기반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사례도 있었다. 센터에서 치매로 진단받은 50대 김경한씨는 리얼큐브를 활용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눈에 띄게 변했다. 1년 만에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기억력이 나아져, 다른 어르신들 은행 업무를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김씨는 “처음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장경순 작업치료사는 “눈에 띄게 인지력이 향상돼 지금은 일상생활도 회복하고 센터에서 보조교사 역할도 잘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도 할 줄 안다’ 자신감 생기고 자존감 높아져요”

‘정상·고위험·치매’ 나눠서 맞춤형 관리

집에선 QR로 교육동영상 보며 활동

AI스피커, 인지강화·정서돌봄 도움

동대문구치매안심센터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인지 통합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가정에서 하는 치매 예방! 가치해요, 함께해요’ 참여자는 정보무늬를 활용해 손쉽게 스마트폰으로 교육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치매 예방과 관리에서 디지털기기 활용이도움된다는 인식이 생기면 치매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든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디지털기기에 처음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다. 대개는 처음에 많이들 꺼린다. ‘못해’ ‘안 해’ 또는 ‘기기를 망가뜨릴까봐 무섭다’ 등이다. 장경순 치료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격려하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해볼 수 있게 하면서 습관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센터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인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해 참여형 통합 프로그램 ‘가정에서 하는 치매 예방! 가치해요, 함께해요’(가치해요)를 개발해 운영에 나섰다. 무엇보다 쉽고 꾸준히 재밌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음악·원예·미술·운동·작업 등 5개 영역 전문치료사들이 만들었다. 영상마다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키트에 담았다. 교재에 실린 큐아르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관련 교육 동영상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가치해요’ 이용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 13일 오전 센터 2층 프로그램실에서 열렸다. “동그란 것 눌러보세요. 음악치료 나왔죠.” 최재완 작업치료사가 스마트폰으로 교육 동영상을 띄우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키트에 든 소고, 컴퍼스, 색종이 등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활용하는 건지 알려줬다. 기억키움 달력, 운동 시간표 등의 사용방법도 안내했다. “기분 따라 음악, 미술, 원예, 작업 등 하고 싶은 것을 골라 꾸준히 하면 돼요”라는 치료사의 말에 어르신들은 “꼼꼼하게 잘해놓았네”라고 칭찬해줬다.

김향임(76) 할머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치해요’에 참여하고 있다. 할머니는 “스마트폰으로 큐아르코드 눌러 동영상 보는 걸 배워 재밌다”며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홍영자(78)할머니는 “집에만 있어 답답한데 그나마 요거로 그림 만들기도 하며 머리를 써 기억력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집에서 치매를 예방·관리하도록 하는 센터 사업에 인공지능(AI) 스피커 사업(‘내 곁에 친구 아리아’)도 있다. 센터 등록자 가운데 휴대전화 사용이 어려운 혼자 사는 어르신 등이 대상이다. 인지 강화 프로그램과 정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억력검사와 투약 알림 등 맞춤형 치매 돌봄 서비스도 곁들인다. 현재 151가구에 서비스하고 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이한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의 2021년 치매관리 사업성과 평가대회에서 아리아를 활용한 치매돌봄 내실화가 좋은 평가를 받아 자치구 특화사업 경진대회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 추진 5년을 앞두고 새해 치매안심센터를 확대 개편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치매안심센터의 기능이 계속될 수 있게 비대면 관리 서비스를 마련하고, 디지털 취약계층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센터도 동별로 담당자를 정해 이용 환경 조성부터 사용 독려 등 그간 해온 치매 관리 서비스를 올해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애 팀장은 “센터 직원 20명이 동별로 맡아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줘 이용자 만족도가 높다”며 “촘촘한 관리 서비스로 치매 관리 효과를 더 높이려 한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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