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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싸움 6개월” 양천구 신입 공무원 특별한 수습 이야기

등록 : 2021-08-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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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양천보건소에서 역학조사요원으로 근무

“‘코로나 격리 위반 관련 승강이’도 지금 생각하니 뿌듯”

공무원으로 첫 발령을 받자마자 양천보건소에서 코로나19 역학조사반 역학조사요원으로 6개월 동안 수습 생활을 한 손소담(왼쪽부터), 차수연, 홍대현 주무관이 11일 양천보건소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코로나 감염된 아이의 엄마 울먹일 때 마음 너무 아팠어요”

역학조사부터 민원업무까지 도맡아

하루 수십 통씩 격리자 전화 인터뷰

“고생한다는 말 들을 때 가슴 뭉클”

양천구는 2월1일 신입 공무원 12명을 양천보건소 역학조사반에 인사 발령냈다. 이들은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역학조사요원으로서 코로나19와 싸워야 했다. 역학조사요원은 역학조사관을 보조해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를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다. 다른 자치구에서 일반 공무원이 짧은기간 돌아가면서 역학조사 업무를 담당한데 견줘 신입 공무원이 6개월 동안 역학조사요원으로 근무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양천구는 “전문성 확보를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6개월 동안 수습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12명 중 5명은 9일 양천구청 일반 부서로 발령이 났고, 7명은 8월 말 발령을 앞두고 있다. 나머지 1명은 보건소에 남을 예정이다. 한겨레 <서울&>은 이 중 홍대현(33), 손소담(31), 차수연(30) 등 3명의 주무관을 만나 신입 공무원의 코로나19 역학조사요원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발령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19로 계속 집에서 대기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차수연 주무관)

공무원은 첫 임용이 되면 6개월 동안 일반 회사의 수습 기간에 해당하는 ‘시보 기간’을 거친다. 평소에는 대부분 일반 부서에 발령이 난다. 해당 부서에서 6개월 동안 시보기간을 거친 뒤 계속 해당 부서에 근무하는게 보통이다. 평소라면 이들은 올해 7월에 정식 임용이 될 것이었으나 구청의 요청과 당사자들의 동의로 임용 시기를 앞당겨 6개월 먼저 양천보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차수연 주무관은 “사회에 좀 더 일찍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자원하게 됐다”고 했고, 손소담 주무관도 “취준생 생활이 길어서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하고 싶어 보건소 발령에 동의했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때는 갑작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 상황에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홍대현 주무관)

“7월 초부터 확진자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라 정말 힘들었어요. 초과 근무도 많이 했죠.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2주 동안에 인원도 보강돼 할 만해요.”(손소담 주무관)

“요즘 솔직히 조금 힘들어요. 처음 임용됐을 때는 신입이라서 열정으로 일을 했는데, 지금은 그 열정이 많이 사그라든 것 같아요.”(차수연 주무관)

세 명의 양천구 신입 공무원은 6개월 동안 역학조사요원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차 주무관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확진자가 너무 많아지니까 열정을 계속 쏟아붓기에는 제 에너지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이 끝나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역학조사는 기초 역학조사와 심층 역학조사로 나뉜다.

기초 역학조사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증상 발현 정도와 기저질환 유무, 그리고 동거가족에 대한 기본 사항을 조사한다. 심층 역학조사는 어디를 다녔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인 동선을 조사한다. 필요하면 카드 결제 내역과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동선을 파악한 뒤에는 접촉자를 자가격리자, 능동감시자, 단순검사자 등으로 분류해 개인별로 안내하고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는 방역 조치를 한다. 이외에도 시스템 등록과 코로나19와 관련된 다양한 민원업무도 함께 맡는다. 이들은 주로 기초 역학조사를 담당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역학조사관의 도움을 받아 심층 역학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임용 첫날에는 시스템을 익히고 매뉴얼을 숙지했다. 상황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통해업무를 습득한 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모두 역학조사반 업무를 맡은 첫날 “많이 긴장됐다”고 했다.

“처음부터 대뜸 ‘선생님 자가격리 위반하셨습니다’라고 하니, ‘이보시오, 내가 왜 자가격리 위반이냐’고 상대방이 무척 화를 내더라고요.”

차 주무관은 시뮬레이션을 하는 첫날부터 계속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무척 긴장했다고 했다. 이튿날 첫 업무를 맡아 자가격리 중인 50대와 통화를 한 내용을 회상했다. 차 주무관은 “이분이 자가격리하는 곳에 자신의 딸이 다녀가곤 한다는 얘기를 하더라”며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선배들이 자가격리 위반이니 ‘얼른 통보하라’는 말을 듣고 자가격리 위반을 알렸더니 되레 화를 내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손 주무관은 기초 역학조사서 작성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손 주무관은 “처음에는 제대로 한다고 해도 누락된 게 많았던 게 힘들었다”며 “익히기가 좀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일이 제일 많았어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털어놓은 세 사람의 근무 소감이다.

차수연(왼쪽부터), 홍대현, 손소담 주무관이 11일 양천보건소에서 역학조사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7월7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212명이었다. 그동안 1천 명 아래로 나오던 확진자가 이날 이후부터 1천 명대로 늘어났다. 3차 대유행의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12월25일의 1240명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일도 늘어났다. 차 주무관은 “확진자가 많이 나와 밤 10시까지 초과근무하는 날이 많아졌다”며 “주말에는 근무인원이 평일보다 적어 더 힘들었다”고 했다.

“방호복 입으면 더워요. 안경 쓴 사람은 더 힘들었어요. 키가 크면 방호복이 짧아서 무척 불편했고요.”

이들은 때로는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차수연 주무관은 6월께 신생아 확진자가 나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취재진이 많이 모일 것이 예상됐던 터라 추가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업무 지원을 나가면서 방호복을 입은 적이 있다고 했다. 차 주무관은 “방호복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하더라”며 “이날 무척 더워서 힘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말하자 아이 어머니가 전화하는 중에 계속 울더라고요. 통화가 안 될 정도여서 일단 진정시켜 드리고 10분 뒤 다시 전화했죠.”

홍대현 주무관은 확진 판정을 받은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에게 전화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홍 주무관은 “바이러스에 걸리면 모두 힘들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느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다시 검사를 받게 하냐는 민원 전화를 많이 받아서 힘들었어요.”

차 주무관은 처음 코로나 환자가 발견된 뒤 또다시 10일 뒤 확진자가 나온 한 매장의 방문객들에게 다시 한 번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를 했다. 그랬더니 왜 내가 또 검사를 받아야 하냐며 항의하는 등 반발이 심했다고 했다. 차 주무관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검사 안내를 받으면 회사에 보고하는 절차 때문에 검사받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우리보고 자가격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나 아니면 우리 가족 못 먹고사는데 어떻게 하냐’는 하소연을 들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죠.”

손 주무관은 자가격리자 107명이 나온 공사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가격리를 요청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손 주무관은 “그 사람들에게 달리 해줄게 없어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고생 많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어르신한테 ‘늦게까지 고생 많다’는 얘기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했죠.”

차 주무관은 “어르신들에게 검사 안내를 하면 자기는 백신을 맞아 ‘검사 안 해도 된다’며 검사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의외로 협조적인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손 주무관은 “가끔 이런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수고 많다’고 얘기해주면 감동도 받는다”고 했고, 홍 주무관도 “고생 많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뿌듯했다”고 했다.

홍대현 주무관은 자립지원과에서 근무하고 있고, 차수연, 손소담 주무관은 이달 말 부서 배치를 받을 예정이다. 수습 공무원 기간을 잘 마친 3명의 주무관은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역학조사할 때 협조를 잘 해주면 좋겠어요.”(차수연 주무관) “거짓말은 조사과정에서 들통나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죠.”(손소담 주무관) “개인 방역에 힘써주면 좋겠습니다.”(홍대현 주무관)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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