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묵은 숙제 셋+금천구청역사 개발, 임기 내 주요 과제”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 유성훈 금천구청장

등록 : 2018-10-04 16:49 수정 : 2018-10-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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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정당 생활 중 지역정치 처음

고향의 구청장으로 금의환향

주거·교육 여건 상대적으로 낮아

해결해야 할 과제 수두룩

신안산선 개통, 종합병원 건립,

군부대 이전 등 과제로 꼽아

코레일과 복합역사 개발 계획

‘시스템과 사람 관리 중요’ 인식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금천구청사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전지판에 올라갔다. 구청 태양광 시설은 친환경에너지를 저비용으로 청사에 공급할 뿐 아니라, 금천구 학생들의 견학시설로도 활용된다. 유 구청장은 “도시개발·재생 등 각종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친환경적으로 펼쳐 ‘에코 스마트 시티 금천’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유성훈(56) 신임구청장은 30년 정당 생활 동안 지역에서 정치를 한 적이 없었으나, 이번 민선7기 지방선거에 나가 고향의 구청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정치 활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옛 평화민주당에서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노무현 정부 때까지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했다.

금천구는 인구가 23만여 명으로 종로구, 중구, 용산구 등 도심을 빼면 서울 자치구에서 가장 적다. 관할 지역 면적도 가장 작아서 인구밀도는 오히려 서울 평균보다 높다. 주거 환경이나 교육·복지 여건이 낮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런 여건을 개선하려면 어떤 구청장이 좋을지 지역 당원들이 실리적으로 판단해 ‘중앙당 출신’의 유 구청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치권과의 소통을 중시한 이런 ‘민심’을 그가 현실에서 얼마나 잘 구현할지가 구청장으로서 그의 업적도 좌우할 것 같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치열한 민주당 후보 경선을 치르고 당선됐다. 축하한다. 정치를 하게 된 계기와 출마하게 된 동기 등을 듣고 싶다.

“학생운동을 하다 198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재야 청년학생 대표 자격으로 참여한 게 정치의 출발점이다. 중앙당과 청와대 등에서 일하며 6번의 대통령 선거, 7번의 총선거, 수차례의 지방선거 등을 경험했다. 총 30년쯤 정당 활동을 하며 언젠가 ‘나만의 정치’를 할 때를 준비해왔다.”

지역정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구청장이 됐다. 그래서인지 민주당 내 후보 경선이 아주 치열했다고 들었다. 최종적인 낙점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재경선까지 치르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나중에 보니 주민 여론조사에서는 제가 뒤졌는데, 권리당원 지지도가 월등히 높았다. 저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정치를 좀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당원들이 금천구의 숙원 사업과 현안들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회, 중앙정부, 서울시 지원을 이끌어낼 적임자로, 오랜 기간 중앙행정과 입법을 두루 경험한 저를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취임한 지 넉 달째 접어든다. 집행부의 수장으로서 민생 현장에서 느낀 점은?

“행정이란 결국 어떤 관점과 철학을 갖고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원칙이 서 있지 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중요하다 싶은 원칙을 구 공무원들에게 말씀드리기도 했다. 현장 중심, 주민 중심 그리고 서민 중심, 이 세 가지였다.”

지난 8월 말 가산동에서 오피스텔 공사 중 흙막이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서 시민들이 놀랐다.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두 가지 측면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시스템의 한계이고 두 번째는 사람의 문제다. 우리 구만 해도 건축과에 19명의 직원이 있지만 하급자를 제외한 9명 정도가 실무를 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다. 이들이 구내 대형 공사장 26군데를 담당하니 아무래도 안전관리에 한계가 있다. 두 번째 측면이 사람이다. 아무리 고도화된 시스템도 결국 사람 하기 나름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니 사람의 실수가 드러났다. 좀더 부지런하고 원칙이란 것을 지켰으면 차단할 수 있는 실수였다. 저의 입장에서는 시스템과 사람을 관리하는 철학과 방향,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의지와 원칙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계기가 되었다.”

취임 후 많은 주민을 만났을 것 같다. 현재 금천구민들이 가장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이 한마디로 생활 인프라다. 구 자체 소방서가 이제서야(올 하반기) 들어서고, 새 경찰청사도 올해 12월에 문을 여는 실정이다. 금천구는 구로구에서 1995년에 갈라져 나왔는데,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는 거의 없이 독자적인 구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주차 공간, 소방시설·구민회관 같은 공유 공간, 시민 체육시설 등이 너무 부족하다. 교육·복지 여건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대부분 눈에 빤히 보이는 문제인데도 예산 등 걸림돌이 많다. 이 문제를 푸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금천구의 당면 현안은 어떤 게 있나?

“3+1로 정리해 말씀드린다. 우선 금천구의 10년 묵은 숙제가 셋 있다. 신안산선 개통, 종합병원 건립, 군부대 이전. 거기에 제가 더한 게 금천구청역사 개발이다. 이렇게 네 가지가 제 임기 중에 다뤄야 할 주요 과제다. 2012년 경기도 안산에서 금천을 거쳐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광역 복선전철로 계획된 신안산선은 민자 유치가 안 돼 사업이 연기되어 주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최근 다행히 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결정됐다. 내년에는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 구도 최선을 다하겠다. 건설회사인 부영그룹이 금하로 594번지 2만여㎡(약 6천 평) 터에 지하 7층, 지상 27층으로 대형 종합병원을 지으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 준공해 2022년 개원한다. 병원이 문을 열면 지역 공공의료 서비스와 밀접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하겠다. 병원 주변에 공공성 있는 공간도 확보해 금천구의 랜드마크로 개발하려 한다.”

군부대가 있는 지역은 어디인가?  

“금천구청 근처 롯데아파트가 들어선 곳 뒤다. 금천구에 마지막 남은 공공부지로 3만여 평쯤 된다. 저희로서는 이 땅에 공공시설과 미래 먹거리 사업, 정보통신(IT) 등 4차 산업 업체들이 들어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금천구청역사 개발은 신임 청장의 공약 사업이다.

“금천구청역은 주민들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금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데 지난 40년 동안 시설 개선 없이 노후됐다. 주변엔 연탄 공장과 폐저유소(폐쇠한 기름 저장소)가 있어 안전과 보건 위생 환경도 나쁘다. 우리 생각은 역 소유자인 코레일과 함께 역사와 주변 일대를 상가·주민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시설로 개발해보자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유휴 철도 부지를 활용해 이 지역에 청년 임대주택을 지으려 구상하는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청년 임대주택 터를 국토부에 내주고 그 돈으로 역사 개발을 하면 타산이 맞지 않을까 한다.”

요즘 서울 어디든 주민들의 개발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금천의 상황은 어떤가?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싸다고 해서 강남 집값과 대비되는 게 금천의 실정이다. 금천구는 옛 구로공단의 배후 지역으로 분리되면서 준공업지역 지정, 군부대의 존재 등으로 개발이 제한된데다, 뉴타운 지정 사업도 무산돼 주민들의 불만이 아주 높은 상태다. 앞으로 준공업지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개발할지, 기타 주거 환경을 어떻게 쾌적하게 만들지가 매우 중요하다. 과거 뉴타운 지정이 해제된 지역에 대한 도시재생이나 개발사업도 당면 과제이다.”

여름에 강북 옥탑방 체험을 했던 박원순 시장이 겨울에는 금천으로 와서 생활 체험을 한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대환영이다. 시장이 오면 말씀드리고 싶은 사안이 있다. 여기는 청년 인구와 1인 가구가 많다. 지(G)밸리 공단 배후도시로서 가산동만 해도 인구의 50~60%가 그들이다. 반대로 서민 주거지역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동 돌봄시설이 부족하다. 박 시장이 이러 현실에 착안해 금천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끝으로 초선으로서 구정에 임하는 각오를 짧게 정리한다면?

“잘하나 못하나 저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 생각을 가진 이곳 출신이다. 나이 70~80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한 게 뭐 있어, 라는 말은 결코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소리를 안 들으려면 열심히, 잘 해야 한다.”

유성훈 구청장은?

치열한 당내 경선 뚫고 막판 후보 결정…평민연 출신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민주통합당 사무부총장 △제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선대위 총무본부 부본부장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정책특보 △문일고, 중앙대 경영학과, 한양대 행정대학원(석사) 졸업 △56살 서울 출생. 부인 이경호(54)씨와 1녀 1남.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63.4%의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금천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2위와 불과 0.56%포인트 차이로 1위를 한 것이 더 화제였다. 이런 차이는 민주당 경선 중 가장 적은 차이였고, 그만큼 치열했던 탓에 서울 25개 자치구의 민주당 후보 가운데 금천구 후보가 맨 마지막으로 결정될 정도였다. 경선도 두 차례나 치렀다. 민주당 당료 출신인 유 구청장은 지역에 뿌리를 둔 구·시의회 출신, 박원순 시장 측근 등과 3자 대결을 벌였다. 1차 경선에서 1·2위를 한 후보 간에 재경선이 벌어졌고, 여기서 유 구청장은 50.28%의 지지를 얻어 49.72%를 얻은 시의회 출신 2위 후보를 0.56%포인트 차이로 어렵게 제쳤다. 근소한 차이긴 해도 유 구청장이 최종 후보로 낙점된 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잇따라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한 경력, 당료로서 중앙당에서 쌓은 정치 경험 등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가 일반 주민 여론조사에서는 시의원 출신의 2위 후보에게 뒤진 반면, 현실 정치에 좀더 밝은 권리당원 지지도 조사에서 크게 앞선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유 구청장이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 출신인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평민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할 때 재야에서 입당한 인사들의 조직으로,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평민연 출신 인사들의 ‘대부’가 바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다. 유 구청장은 중앙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26살 때인 1988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활동하던 선배들을 따라 평민당에 입당했다. 이때 이들이 구성한 정치조직이 평민연이다. 유 구청장은 청년학생 대표로 평민연에 들어간 13명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범 평민연 출신으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우원식·김한정 의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 민주당 사무부총장, 단체장으로는 유 구청장과 김정석 공주시장 등이 있다.

유 구청장은 중·고교를 금천 지역에서 다닌 ‘토박이’급이다. 학생운동에 전념하느라 졸업을 안 하고 있다가 입학 후 12년 만인 1994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부인도 학생운동을 같이한 캠퍼스 커플이다. 눈이 나빠 군대는 가지 않았다. 당에서는 주로 정세 분석 등 기획 업무를 했고,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들어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는 정무 라인에서 일했다. 3년 남짓 국회에서 의원 보좌관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나를 있게 한 이것

가족, “항상 옆에서 힘이 된 사람”

구청장이 되기 위해 한 번 치르기도 힘든 후보 경선을 두 차례나 치렀고, 상도 두 번 치렀다. 그 어려운 시기에 힘을 준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내와 딸과 아들, 내 가족이다.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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