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서 행복한 동행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노숙인 자립 돕는 빅이슈코리아, 기부보다는 노동의 가치 공유에 중점

등록 : 2018-07-19 14:00 수정 : 2018-10-24 17:09

크게 작게

지하철역 입구에서 만나는 <빅이슈>

노숙인 자립 돕기 위해 영국서 시작

11개국에서 15종 발간

2010년 빅이슈코리아 설립

‘빅판’은 자립의 발판일 뿐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빅이슈>. 큰돈을 기부하기보다 5천원 하는 <빅이슈> 한 권을 사주는 게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지름길이라고 빅이슈코리아는 전한다. 빅이슈코리아 제공

<한겨레>의 생년월일은 1988년 5월15일입니다. 이날을 세계 언론사는 국민의 모금으로 창간한 세계 최초의 신문이 발행된 날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어느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와 미래를 위한 언론사가 되어달라는 국민의 바람을 충실하게 이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한겨레신문사를 사회적기업의 본보기로 꼽기도 합니다.

올해는 <한겨레> 발간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인으로 성장한 만큼 그동안의 사랑을 사회에 돌려드리려 합니다.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회적기업협의회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적기업을 소개하는 캠페인 ‘함께해서 행복한 동행’을 매월 연재합니다.


사회적기업이 시민 생활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빅이슈> 판매원이 서울 시내 한 지하철 입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작가 최상헌 제공

60대 남성이 빨간 모자에 빨간 조끼를 입은 말끔한 모습으로 지하철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 섰다. 옷매무시를 다시 가다듬고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양손에는 격주간으로 발행하는 대중문화 잡지 <빅이슈>(BIGISSUE)가 들려 있다.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에서 서울역 인근을 떠돌던 노숙인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이제 그는 ‘여의도 빅판’(<빅이슈> 판매원 약칭)이다.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변화다.

불행의 시간을 희망으로 바꾸는 <빅이슈>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됐다. 노숙인 같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자활의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현재 11개국에서 15종의 빅이슈가 발행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빅이슈코리아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빅이슈>의 가격은 5천원, 절반인 2500원이 판매원의 수입으로 돌아간다.

거리를 떠돌며 포기와 불행의 연속에 빠진 노숙인들이 <빅이슈>의 문을 두드리기란 쉽지 않다. 이런 노숙인들을 설득하는 일도 빅이슈 몫이다. “매일같이 쉼터를 찾아 ‘빅판’이라는 일자리가 있으니 도전하시라며 설명드려요” 빅이슈코리아 이선미 판매국 부국장은 적어도 <빅이슈>라는 기회를 모르는 노숙자가 없기 바란다고 말했다. 삶의 희망을 버린 이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 <빅이슈>를 떠받치는 사회적 가치다.

빅판이 된다고 해서 당장 돈을 벌 수는 없기 때문에, 빅이슈는 노숙자들의 주거 문제를 가장 먼저 돕는다. 먹고 씻고 몸을 누일 작은 공간이나마 주어져야 노동의 의지가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임시 판매원 기간에는 고시원 등 단기 주거비를 지원한다. 6개월 이상 판매 활동을 하며 꾸준히 저축한 빅판에게는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준다. 올해 5월 기준, 45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빅이슈>는 잡지 구매자가 5천원을 기부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빅이슈> 편집국이 환경,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이슈에 따라 할리우드 스타, 국내 아이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 등 흥미로운 주제를 다양하게 싣는다.

빅이슈코리아가 올해로 8주년을 맞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수많은 재능기부자가 <빅이슈> 콘텐츠를 채워주었고 ‘빅돔’(빅판 도우미) 자원봉사자들은 빅판과 함께 거리에서 <빅이슈> 판매를 외쳤다. 유관 기관들의 협조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시는 빅판이 지하철 입구에서 <빅이슈>를 팔 수 있도록 허가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등은 낮은 가격으로 임대주택을 내주었다.

한 해 평균 100여 명의 노숙인이 빅판에 도전하지만 절반 정도만 정식 빅판이 된다. 빅판만 따질 때, 8년 동안 27명이 자립에 성공했다. 실은 빅판을 발판으로 자립에 성공한 노숙인들은 훨씬 더 많지만, 빅이슈는 수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떠난 빅판들이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찾아보진 않아요. 저희의 관심이 혹시나 노숙인이었다는 꼬리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선미 부국장의 설명에는 자신들의 성과보다 노숙인 자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빅이슈>의 철학이 담겨 있다.

‘뭐라도’ 할 용기와 힘을 주는 게 목표

빅이슈가 생각하는 빅판의 자립은 무엇일까. 정해진 기준은 없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어 빅판을 떠나는 것은 물론, 성실한 빅판으로 일하는 것까지 자립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빅판을 시작하면서 일정한 거주지와 규칙적인 생활이 생긴 빅판들은 ‘뭐라도’ 할 용기와 힘을 갖는다. 휴일이나 근로 외 시간을 이용해 운전면허, 제빵기술, 조립기술 등을 배우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빅판도 많다.

“<빅이슈>를 사지 않더라도 빅판을 만나면 수고하신다는 말, 눈인사라도 건네주세요.” 쭈뼛쭈뼛 어렵게 사회로 다시 첫발을 내디딘 빅판에게는 여전히 판매라는 일이 어렵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 그들의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의 따뜻한 눈인사라고 이선미 부국장은 강조했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이라면 한번쯤 빅판을 만났거나, <빅이슈>를 샀을지도 모른다. <빅이슈> 한 권에 담긴 가치를 받아들며 설 그 마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오랜 불행의 고리를 끊도록 도왔다. 혹여 그동안 잊었다면 <빅이슈> 한 권을 사보자. 나날이 달라지는 <빅이슈>를 읽는 것 또한 이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좋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테니 말이다.

<빅이슈>는 서울, 경기, 대전, 부산의 주요 지하철역과 거리에서 빅판에게서 살 수 있다. 빅이슈코리아 누리집( bigissue.kr)을 방문해 우편 구매나 후원도 할 수 있다.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콘텐츠랩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