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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운동과 대중의 통역자 되고 싶어요”

최근 문을 연 성평등활동지원센터의 로리주희 초대 센터장

등록 : 2018-04-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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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활동가와 단체 지원 목적

대학 졸업 후 성평등 운동 외길

“페미니즘 책도 꺼내놓지 못해”

미투의 원인 바꾸는 일을 할 것

로리주희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이 지난 3월28일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성평등활동지원센터 강의실에서 밝게 웃고 있다. 노 센터장은 강의실 유리창의 문구처럼 “성평등활동가의 숨통을 틔우는 맑은 공기 같은” 교육과 지원활동을 센터에서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성평등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널리 알리는 통역자가 되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로리주희(50)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의 다짐이다. 인터뷰 하루 전 문을 연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서울시가 성평등 활동가와 단체를 지원하려고 만든 공간이다. 서울혁신파크 15동 6층에 마련된 315㎡(약 95평) 규모의 센터에는 교육장·상담실·인큐베이팅룸·코워킹 존 등이 갖춰져 있다. ‘서울시 성평등기본조례’에 근거해 설립된 센터는 앞으로 성평등 활동에 관심 있는 개인이나 동아리가 성평등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기존 성평등활동 단체를 지원하며, 시민사회에 성주류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을 펼칠 계획이다. 성주류화는 1995년에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진 개념으로, “정부와 모든 주체는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의 결정과 실행 평가의 각 수준에서 양성 차별과 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이해와 경험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는 로리 센터장의 어투 등이 기자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인터뷰 전, 기자는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은 조금은 전투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정도로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는 낮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는 성평등활동지원센터의 장이라면 ‘전투력이 강한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기자의 상상도 ‘페미니즘운동’에 대한 또 다른 편견임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예상이 빗나간 것은 로리 센터장이 스스로를 ‘통역자’를 자처한 탓인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나라 성평등 운동은 ‘통역’이 필요한 지경이다. 로리 센터장은 “아직도 대학생조차 페미니즘 책을 드러내놓고 들고 다니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극성스러운 일부 세력의 공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런 왜곡된 공격이 대중과 운동을 갈라놓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로리 센터장은 기자에게 이런 현실을 쉽게 ‘통역’해주었다.

30년 가까이 다양한 여성운동을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 때 결합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부국장을 맡았고, 2000년부터는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단체인 ‘줌마네’를 만들어 부대표로 활동했다. 또 199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 ‘로리주희’라는 이름으로 한 방송사에서 <게릴라 리포트>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이력 중 줌마네 활동과 방송 활동이 눈에 띈다. 그는 성평등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기존 틀에 갇혀 있지 않음으로써, 여성운동의 폭을 넓혀온 것은 아닐까? 그는 방송 활동 뒤 아버지의 성 ‘노’와 어머니의 성 ‘이’를 함께 사용하는 ‘로리주희’라는 이름을 계속 쓴다. 그런 대중과의 오랜 호흡이 그를 ‘통역자’로 키워온 것이리라.

센터의 활동 계획을 보면, ‘성평등 활동가 양성’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삼는 것 같다.

“2016년 5월 ‘강남역 묻지마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성평등 활동에 관심을 가진 개인과 단체가 많아졌다. 이전에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이들도 오프라인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 이들에게 컨설팅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렇게 소통하면서 이들이 ‘맨땅에 박치기’하는 상황이 아니라, 기존의 여성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더 성장하도록 도울 것이다. 물론, 기존 활동가 중에서도 지친 이가 있다면 그에게도 힘을 주고 싶다.”

센터가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시민사회의 성주류화’ 개념을 일베 등 일부 세력은 ‘지나친 여성우대 정책’이라고 깎아내린다.

“그렇지 않다. 성주류화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질수록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진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는 여성이 좀더 깨어나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된다. 가령 집에서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늘 희생하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 여성할당제 등 한시적으로 여성을 우대하는 경우가 있다. 남성을 우대하는 남성할당제도 있다. 교대는 남학생에게 쿼터를 주기도 한다. 결국 성주류화는 양성이 평등해짐으로써, 더 행복한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성평등활동지원센터장으로서 미투 운동과 관련해 지원 계획은 있는가.

“센터는 중간지원 조직으로서 성평등활동 단체들을 육성하고 지원함으로써 미투의 원인이 되는 기존 문화를 바꾸는 일을 할 것이다. 현재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1차 가해이지만, 조직이나 단체 등에서는 2차 가해 때문에 긴장감이 더 높아진다. 이는 ‘1차 가해가 아니면 된다’는 잘못된 ‘문화’ 때문이다. 센터에서는 활동가 육성과 교육으로 이런 잘못된 문화를 바꾸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사실 인터뷰 전에 기자가 빗나간 예상을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아직 성평등 문제와 관련해 소통과 이해가 부족하다. 성평등활동지원센터가 지금까지 ‘운동의 언어’로 인식돼온 ‘성평등 문제’를 좀더 ‘대중의 언어’로 통역해 널리 전파하는 기관이 되길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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