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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일쑤지만 “자식보다 낫다”는 응답에 뿌듯

라이나생명 텔레마케터와 홀몸어르신의 ‘사랑 잇는 전화’

등록 : 2017-11-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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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1500명 봉사…내년 전 직원 확대

전화 세번 안 받으면 집으로 긴급출동

“마지못해 시작, 이젠 마음으로 걸어”

부모보다 잦아 “효도해야지” 반성도

지난 9일 종로구 청진동 라이나생명 사무실에서 권종순(왼쪽부터)·박희선·조양선 텔레마케터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홀몸어르신에게 보낼 목도리를 뜨고 있다.

지난여름 라이나생명 텔레마케터 권종순(59)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3년 전부터 통화해온 여든살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전화기의 통화 목록을 보니 권씨의 전화번호가 날마다 찍혀 있어 전화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로 그렇게 전화를 걸었는지 캐묻는데, 꼭 보이스피싱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권씨는 2011년부터 라이나생명이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사랑 잇는 전화’ 협약을 맺고 텔레마케터가 일대일로 맺어진 홀몸어르신에게 매주 두 차례 이상 안부전화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쌍욕이었다. 자식이 멀쩡히 살아 있는 할아버지를 “네가 뭔데 챙기냐”며 화를 냈다. 권씨는 마지막으로 통화하겠다며 어르신을 바꿔달라고 했다. “앞으로 전화를 못 드릴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할아버지는 옆에 있는 자식의 눈치를 보는지 다른 말은 못 하고 그저 아쉬워만 했다.

전화를 끊은 권씨는 지난 일이 생각나 눈물이 쏟아졌다. 감기에 걸려 코와 입이 마른다는 할아버지 말씀에 집에 사놓고 안 쓰는 가습기가 생각나 ‘전기 코드 꽂은 뒤에 물을 얼마큼 붓고, 세게 틀고 싶으면 다이얼을 크게 돌리시라’는 자세한 설명서까지 적어보냈다.


“가습기를 받은 어르신이 전화로 ‘좋다’고 하시는데 주위에서 ‘그게 뭐야?’ ‘누가 줬어?’ 묻는 말소리가 들려 제 마음마저 뿌듯해졌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회사에서 배정해주니까 의무로 시작했죠. 콜(전화 영업)이 직업인데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바쁜 시간 쪼개 한번 두번 하다가 ‘자식보다 낫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때부터는 마음으로 하게 됐어요.”

충남 공주에서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가 수확한 콩을 팔 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회사 동료들에게 권유해 100㎏어치를 팔아드리기도 했다. 택배와 문자에 서툰 할아버지를 위해 전화로 동료들의 집 주소를 일일이 부르고 몇번이나 확인했던 고생도 추억처럼 남았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 어르신의 의사를 확인해서 연결해주지만, 막상 통화가 되면 싫어하는 분도 계세요. 새로 맺어진 어르신께는 당신뿐 아니라 자녀들의 의사까지 확인한 뒤에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 잇는 전화’를 6~7년 하다 보니 요령 아닌 요령이 생기네요.”

동료 텔레마케터 박희선(58)씨는 2011년부터 통화하는 87살 대구 할머니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오늘따라 목소리가 힘이 없다 느끼는 날은 영락없이 ‘내가 어디 안 좋다’고 하세요. 다음 날 목소리가 살짝 고음으로 달라지셔서 여쭤보면 또 좋아지셨대요. 정말 신기하죠.” 이제는 친모녀처럼 가족과 속상했던 일까지 다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몇년 전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는 “딸내미, 내 얘기 좀 들어봐”라며 받아쓰기에서 90점을 받아 선생님께 칭찬받았다고 자랑했다. “얼마 전에 제가 손편지를 보내드렸을 때는 어르신이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편지를 읽는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어요.”

박씨가 어느 날 전화를 걸었는데 할머니는 온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음 날도 연락이 안 돼 슬슬 걱정됐다. 보건복지부 전산시스템에 부재 전화를 세번 등록하면 자동으로 돌봄 담당자가 긴급출동하게 된다. 다행히 수화기를 잘못 놓은 걸 몰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조양선(60) 텔레마케터는 “우리가 전화드리는 건 어르신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있지만, 별일 없으신가 확인하는 목적도 있다”며 “매주 두번 이상만 전화를 드리면 되지만 지금은 거의 날마다 전화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사전 교육에서 ‘개인적으로 물품을 보내거나 직접 만나는 일은 자제하고,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고 배워 따로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전화하는 것만으로도 어르신께서 “고마바요, 고마바요” 하시는데 제가 죄송하죠. 설날, 추석, 어버이날에는 회사에서 어르신들께 선물을 보내지만, 저도 따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사랑 잇는 전화’를 오래 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효과도 나타났다. “우리가 부모님보다 어르신과 통화를 더 많이 하잖아. 찔려서 ‘부모님께도 전화드려야지’ 생각이 들어.”(박희선씨) “맞아 맞아! 부모님께 내가 이렇게 전화 드리면 효녀 소리 들을 거야.”(권종순씨) “어르신께 날마다 전화하는데, 우리 부모님께 더 잘해야지 반성도 한다니까.”(조양선씨)

현재 라이나생명 전체 텔레마케터 3984명 가운데 37%인 1456명이 ‘사랑 잇는 전화’에 참여하고 있다. 요즘에는 점심시간이면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울 소재 실을 사 점심시간마다 모여 어르신에게 보낼 목도리를 뜨는 것이다. 라이나생명이 출연해서 만든 사회공헌 비영리재단인 라이나전성기재단은 최근 3개월 동안 어르신과 통화 횟수가 많았던 텔레마케터 200명을 뽑아 담당 어르신께 이달 말 목도리와 쌀을 전달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모든 텔레마케터가 홀몸어르신과 일대일로 짝을 맺고, 본사 임원과 직원 100명도 별도 봉사단을 만들어 ‘사랑 잇는 전화’를 모든 직원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한문철 라이나전성기재단 상임이사는 “봉사단이 홀몸어르신과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체계화해 본사 전체 임직원이 함께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효과적인 시니어 케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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