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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 골목길엔 개성 있는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해방촌 고개를 추어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이범선의 1952년 작 ‘오발탄’이 묘사한 해방촌 모습이다. 작가가 고개를 그냥 ‘오르는’ 게 아니라 굳이 ‘치오르다’의 방언인 ‘추어오르다’라는 단어를 선택해 쓸 만큼 해방촌 고갯길은 유난히 가파르다.
남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의 중심은 예나 지금이나 해방촌 오거리다. 골목길 다섯 중 하나는 남산 둘레 소월길과 만나고, 또 하나는 가파른 비탈을 따라 녹사평역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길은 용산고등학교와 맞닿으며, 골목과 골목 사이에 신흥시장이 끼어 있다. 굵은 골목길 사이로 조금 더 가는 골목길들이 나무에 새 가지 돋아나듯 뻗은 동네. 그곳이 해방촌이다.
조부모 세대의 문화를 새로운 취향으로 소비하는 현상을 ‘할매’와 ‘밀레니얼’을 합쳐 ‘할매니얼’이라 부른다는데, 이 단어는 대개 ‘힙’(hip)하다는 단어를 동반한다. 낡음과 새로움이라는 상반된 개념이 힙하다는 하나의 단어에서 꼭짓점을 맞댄 셈이다.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동네가 바로 해방촌이다. 옹기종기 골목에 면한 집들이며 높다란 계단길이 50대 이상에겐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지만,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요즘 20대들까지도 이런 골목길의 감성을 좋아한다는 건 무척 흥미롭다.
1947년 피란민들이 직접 세운 해방교회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신사가 있던 자리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가 들어선 것 역시 해방촌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원래 소나무 숲이었던 이 동네에 일제는 경성호국신사를 건립했다. 호국신사란 전사자를 전쟁의 신으로 높여 추모하는 신사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야스쿠니신사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가 늘자 야스쿠니신사의 지부 격으로 일본과 한반도 주요 지역에 호국신사를 건립했다. 경성호국신사가 그렇게 생겨났다.
해방 뒤 신사는 해체됐고, 신사에 참배하러 올라가는 데 쓰였던 108계단만 남은 썰렁한 동네에 국외로 흩어졌다 귀국한 동포들이 모여들었다. 전후엔 종교와 정치체제 등의 이유로 월남한 실향민이 밀려들었다. 특히 평안도 사람들이 해방촌에 많이 정착했다. ‘오발탄’에 나오는 주인공 철호와 그의 가족들도 평안남도에서 내려온 실향민 가족이었고, 작가 이범선 역시 평안남도 출신이다. 바로 이즈음 평양에 있던 숭실학교도 해방촌으로 들어왔다.
해방 이후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해방촌.
숭실학교는 1897년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기독교 학교다. 을사늑약 반대운동을 비롯해 3·1운동,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쳐 일찌감치 일제의 표적이 됐던 곳. 윤동주, 황순원, 조만식 등을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평양에 있던 숭실학교는 1938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폐교됐지만, 1954년 해방촌에 다시 세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성호국신사가 있던 자리에 말이다. 밟아도 스러지지 않고 더 강한 생명력으로 일어서는 역사의 진리를 이곳 해방촌이 증명했다.
20대들 사이에서 해방촌이 명소로 소문난 배경에는 신흥시장이 있다. 햇살이 천장 덮개를 통과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방사형으로 구석구석 골목이 뻗은 모양새가 흡사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를 보는 듯 이국적이다. 시장 안 74개 점포가 대부분 다양한 국적의 레스토랑이나 와인바, 카페로 구성됐다는 점도 다른 재래시장과의 차이점이다.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신흥시장.
1960~1970년대 이곳은 일본말로 ‘요코’라 불리던 편직물 산업이 활발했던 곳이다. 한때는 이 일대에 공장이 300여 개나 있을 정도로 시장에 돈과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니트산업의 쇠락과 함께 신흥시장도 쇠락했다. 70년 전통의 재래시장이 그렇게 없어지는가 했지만 신흥시장은 살아남았다. 아니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한순간 바뀌었다기보다는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꽃이 진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해방 뒤 국외에서 동포들이 모여들던 마을, 전쟁 후 월남한 실향민이 모여 살던 동네, 산업화 시대 서울살이를 하며 서민들이 둥지를 틀었던 해방촌이 또다시 새로워지고 있다. 낡은 것을 다 갈아엎어버리는 변화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면서 문화가 바뀌고 골목이 새로워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을의 생명력, 땅의 생명력을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다가올 미래의 해방촌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