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0층 하늘정원에 고터성당이 있다.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서다보니 주변에 상속받은 재산으로 제법 여유가 생긴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세금을 많이 냈다며 툴툴거리지만 듣는 입장에선 ‘나도 그 세금 좀 내봤으면 좋겠다’는 아이 같은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나의 부모님은 왜 그렇게 한곳에 오래 사셨던 걸까, 이사도 좀 다니시지. 원망까진 아니지만 부질없는 푸념이랄까. 어쩌면 내가 자식들에게 듣게 될 타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볕 양’(陽) 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강의 북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漢陽)은 한강의 북쪽이라는 뜻이다. 서울의 역사에 강남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다. 그리고 이 강남 탄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다.
남산 1호터널이 뚫리고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건설되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린 강남 개발은 경부고속도로와 고속버스터미널 개통으로 날개를 단다. 채소밭과 과수원 일색인 허허벌판 반포 일대에 버스터미널이 생긴다고 했을 때는 강북에 거점을 둔 고속버스 회사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서울의 중심축이 강북에 있던 당시만 해도 이 일대가 지금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숲을 관통해 정상까지 오르는 길.
지하철 3호선 역명이 ‘고속터미널’이어서인지 사람들은 이곳을 흔히 강남고속터미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곳엔 센트럴시티터미널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두 개의 터미널이 존재한다. 신세계백화점을 중심에 두고 전자는 호남선, 후자는 경부선과 영동선 터미널이다. 이곳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생기면서 터미널 건물과 길 건너 8개 동에 이르는 반포쇼핑타운 건물에 청계천과 동대문 일대에서 장사하던 의류 도매상과 화훼도매업자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상인들이 대거 이동해 지금도 고투몰 지하상가에는 유독 옷가게와 꽃가게가 많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옥상 전경.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야장이 인기다.
고속버스를 이용해 지방에 가는 사람, 서울로 오는 사람, 최근엔 외국인 관광객까지 늘어나면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일대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이 북새통과 완전히 상반된, 고요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공간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을 가려면 우선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 하늘정원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곳은 밑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전혀 뜻밖의 공간이다. 탁 트인 앞으로 남산타워를 조망할 수 있는 곳, 시끄럽고 혼잡함으로 대표되는 고속터미널 옥상에 존재하는 반전의 공간. 이곳에 고속터미널성당(이하 고터성당)이 있다.
고터성당 내부 모습.
1981년 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되고 상가가 들어서면서 몇몇 신자를 중심으로 기도 모임이 시작됐고, 이것이 고터성당의 기원이 됐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고터성당에 특히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고 전해지며, 주보성인(수호성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모셨다.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 책자에 쓴 이성훈 요한 보스코 신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50평이 될까 말까 한, 서울교구에서 가장 작은 성당 / 유일하게 월세를 내고 셋방살이하는 성당 / 10층, 서울교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성당’이 바로 고터성당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일부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
“일요일에도 가게를 열어야 하는 상인들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곳,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이 잠시 머물러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이현숙 세레나 사목회 총회장의 말처럼, 이곳이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절박한 순간 누구라도 와서 기댈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여느 성당들처럼 근사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치장하지 않은 공간에 앉아보니 가장 낮고 천한 마구간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만난 듯 내 마음엔 뜨거운 감사가 솟구쳐 올랐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의 범위는 성의 북소리가 닿는 곳까지였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현대의 도시는 도대체 얼마나 넓어졌는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도시의 범위를 점점 더 광역화하고 있다. 인구는 더 과밀해지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더 삭막해졌지만 옥상 위 작은 공간에서 따뜻한 위로와 쉼을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