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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과 인터뷰 중인 유성호 교수.
지난 5일 서초구청(구청장 전성수)은 ‘법의학자가 바라보는 삶과 죽음’ 특강을 2층 대강당에서 열었다. 이날 강연에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가 강사로 참석해 법의학자로서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얻은 삶의 태도를 차분하게 들려줬다. 서울&은 특강에 이어 유 교수를 만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법의학계의 척박한 현실
평범한 의대생이던 그는 법의학 강의에서 교수가 “지난 10년간 제자가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을 듣고 법의학 길을 택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중요한 학문을 왜 아무도 안 할까?”라는 생각으로 교수를 찾아갔고, “지금 최악이라 더는 나빠질 수가 없으니 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이 길을 결심했다.
유성호 교수가 하는 일은 범죄나 원인 미상의 사망에 대해 시신을 해부하는 부검이다. 유 교수는 “연평균 150건에서 180건에 달하는 부검을 수행하는데, 이는 미국 법의학자들이 100건을 넘는 경우가 없는 것에 비하면 무척 많다”고 했다. 이처럼 과중한 업무는 국내 법의학계의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전국 대학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있는 법의학자는 현재 54명에 불과하다. 유 교수가 서울대에서 10년 만에 법의학을 하겠다고 나선 경우지만 그를 이은 다음 후배는 23년 만에 나온 정도다. 유 교수는 자신이 언론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배경에 대해 “그만큼 법의학자가 적어서”라고 털어놨다.
죽음 너머에서 관찰한 삶의 자세
유 교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공포로 받아들이지 말고 “인생의 마지막 챕터”로 생각해보길 권했다. 그는 “죽음을 잘 생각하고 인생을 잘 경영하자”는 것이 강연의 골자라고 설명했는데, 그가 말하는 경영은 화려한 계획이나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그에게 부검(Autopsy)이란 그리스어로 ‘나 자신을 본다’(Autos+Opsis)는 의미이며, 특히 ‘영혼(숨)이 빠진 나를 보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는 항상 부검실에 들어가기 전 돌아가신 분의 신분증을 먼저 본다. “신분증 속 환하게 웃거나 미소를 띤 얼굴, 또는 근엄한 표정을 짓는 얼굴을 보며 지금 눈앞의 시신 역시 ‘이 땅에서 얼마 전까지 나랑 함께 살았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관찰 덕분에 그는 “이분들이 혹시나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얘기를 잘 듣고 잘 관찰해야겠다는 자세를 갖게 된다”고도 했다. 죽음 쪽에서 관찰한 건강 전략 보통 의사들이 살아 있는 이들의 병을 막기 위해 순방향의 노력을 한다면, 그는 늘 죽음 쪽에서 역방향으로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를 바라본다. 흔히 하는 건강 수칙이지만 그가 얘기하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그는 금연에 대해 “내 인생을 경영할 수 있을 때 오늘 당장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우선 전략”으로 강조했다. 흡연은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폐암의 주요 위험 인자일 뿐만 아니라 췌장암을 비롯해 신장암, 방광암 등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가장 위험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인 자살은 10~15년 뒤 순위가 내려가는 반면, 그 자리를 치매가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조언은 수면이다. 유 교수는 “치매를 유발하는 이상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은 뇌세포에서 분해된 뒤 수면 중에 혈관으로 청소되기 때문에 최소 7시간 이상, 이상적으로는 8시간 잠을 자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한 잠에서 깨는 시간을 정하고 아침에 강렬한 햇빛을 보는 것이 멜라토닌 분비를 자극하여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래 의료 시스템의 불가피한 변화 유 교수는 한국 의료 시스템이 현재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으며 인구통계로 볼 때 앞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는 건강보험료를 내는 주력 세대(1970~1980년대생, 80만~100만 명대 출생)의 인구가 건강보험료를 쓰는 노인 인구(1930~1940년대생, 30만~40만 명대 출생)보다 훨씬 많지만, 15년쯤 뒤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건강보험료 재정을 쓸 사람으로 등장하는 반면 낼 사람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돌봄 서비스’ 전환은 병원 대신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함으로써 의료 비용을 절감하려는 불가피한 대안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대두되면, 존엄사(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의론자이자 현실주의자: 오늘을 사는 자세 유성호 교수는 삶의 태도를 묻는 말에 “인생에는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회의론자로 소개했다. 한편으로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그는 영혼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멀리 두려고 노력한다. 정확한 관찰과 과학적 판단을 위해서다. 그는 “죽음 이후보다 죽음 이전의 삶이 더 중요하기도 하니 항상 바쁘게 사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임종한 이에게 말을 건네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걸어주라고 강력히 권한다. “심장이 멈춘다고 동시에 청각 세포나 언어 이해와 관련된 뇌 부위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기능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런 말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 사람을 위한 위로로 마음에 깊이 남는다”고 말했다. 본인의 이런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은 부친이 돌아가실 때 “엄마랑 여동생은 제가 잘 돌볼게요”라고 속삭였는데 이 말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다짐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날 특강에 이어 인터뷰까지 한 많은 말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나를 들판에 핀 잡초처럼 대하지 말고 예쁜 꽃처럼 소중하게 대하자는 말입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 쪽에서 내놓는 그의 이 한마디는 묵직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그는 항상 부검실에 들어가기 전 돌아가신 분의 신분증을 먼저 본다. “신분증 속 환하게 웃거나 미소를 띤 얼굴, 또는 근엄한 표정을 짓는 얼굴을 보며 지금 눈앞의 시신 역시 ‘이 땅에서 얼마 전까지 나랑 함께 살았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관찰 덕분에 그는 “이분들이 혹시나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얘기를 잘 듣고 잘 관찰해야겠다는 자세를 갖게 된다”고도 했다. 죽음 쪽에서 관찰한 건강 전략 보통 의사들이 살아 있는 이들의 병을 막기 위해 순방향의 노력을 한다면, 그는 늘 죽음 쪽에서 역방향으로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를 바라본다. 흔히 하는 건강 수칙이지만 그가 얘기하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그는 금연에 대해 “내 인생을 경영할 수 있을 때 오늘 당장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우선 전략”으로 강조했다. 흡연은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폐암의 주요 위험 인자일 뿐만 아니라 췌장암을 비롯해 신장암, 방광암 등 주요 사망 원인이 되는 가장 위험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인 자살은 10~15년 뒤 순위가 내려가는 반면, 그 자리를 치매가 대체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를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조언은 수면이다. 유 교수는 “치매를 유발하는 이상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은 뇌세포에서 분해된 뒤 수면 중에 혈관으로 청소되기 때문에 최소 7시간 이상, 이상적으로는 8시간 잠을 자야 한다”고 단언한다. 또한 잠에서 깨는 시간을 정하고 아침에 강렬한 햇빛을 보는 것이 멜라토닌 분비를 자극하여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래 의료 시스템의 불가피한 변화 유 교수는 한국 의료 시스템이 현재 최고 전성기를 맞고 있으며 인구통계로 볼 때 앞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는 건강보험료를 내는 주력 세대(1970~1980년대생, 80만~100만 명대 출생)의 인구가 건강보험료를 쓰는 노인 인구(1930~1940년대생, 30만~40만 명대 출생)보다 훨씬 많지만, 15년쯤 뒤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건강보험료 재정을 쓸 사람으로 등장하는 반면 낼 사람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추진 중인 ‘돌봄 서비스’ 전환은 병원 대신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함으로써 의료 비용을 절감하려는 불가피한 대안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대두되면, 존엄사(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의론자이자 현실주의자: 오늘을 사는 자세 유성호 교수는 삶의 태도를 묻는 말에 “인생에는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회의론자로 소개했다. 한편으로는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그는 영혼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을 멀리 두려고 노력한다. 정확한 관찰과 과학적 판단을 위해서다. 그는 “죽음 이후보다 죽음 이전의 삶이 더 중요하기도 하니 항상 바쁘게 사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임종한 이에게 말을 건네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걸어주라고 강력히 권한다. “심장이 멈춘다고 동시에 청각 세포나 언어 이해와 관련된 뇌 부위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기능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런 말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 사람을 위한 위로로 마음에 깊이 남는다”고 말했다. 본인의 이런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은 부친이 돌아가실 때 “엄마랑 여동생은 제가 잘 돌볼게요”라고 속삭였는데 이 말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다짐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날 특강에 이어 인터뷰까지 한 많은 말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나를 들판에 핀 잡초처럼 대하지 말고 예쁜 꽃처럼 소중하게 대하자는 말입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 쪽에서 내놓는 그의 이 한마디는 묵직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