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뽕밭의 즐거움

상중지희(桑中之喜) 뽕나무 상, 가운데 중, 갈 지, 즐거울 희

등록 : 2017-06-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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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하면 ‘뽕나무밭 가운데의 즐거움’이란 말로, 남녀가 은밀히 만나는 기쁨을 뜻한다. 출전은 <좌전>, 기원전 6세기경에 있었던 ‘러브스토리’에 등장한다.

초장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굴무는 포로로 끌려온 하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임금이 하희를 후비로 삼으려 하자, “나랏일로 얻은 여자를 취하는 것은 군주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말로 왕을 단념시킨다. 이번엔 한 왕족이 탐하자 “남편과 자식을 죽게 한 불길한 여자”라고 겁을 줘 포기시켰다.

숱한 고비 끝에 굴무는 하희의 친정인 정나라 왕실을 움직여 초나라로 하여금 그녀를 송환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기다리고 있으면 곧 찾아가겠노라”는 언약과 함께. 몇년 뒤, 초나라가 국제전쟁을 벌이게 되자 굴무는 제나라로 가는 특사를 자청해 초나라를 떠난다. 이때 굴무의 행렬을 보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전쟁이란 두려운 사명을 안고 가는데, 어째 굴무의 표정이 상중지희(桑中之喜) 같다.”

과연 굴무는 소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정나라에 이르자, 부사를 시켜 임금에게 복명토록 하고는 자신은 하희를 데리고 제3국으로 망명했다. 이에 초나라 신료들이 굴무를 처벌할 것을 주청하자, 초나라 왕은 “굴무가 나라를 위해 쌓은 공이 과오를 덮을 만하다”며 이 희대의 도피극을 눈감아주었다.

상중, 즉 뽕밭이 언제부터 남녀가 은밀히 사랑하는 장소를 뜻하게 되었을까?

고대 중국에선 비단이 발달했다.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제때 따려면 일손을 가릴 여유가 없다. 상(桑)자의 상형도 여러 개의 손이 나무 위에 올라 잎을 따는 모습이다. 외간 남녀끼리 같이 있을 수 없던 시대에 처녀 총각이 함께 어울려 뽕잎을 따는 이 시간이야말로 허락된 ‘연애 타임’이었던 것이다.

기원전 10세기 전후에 형성된 <시경>에 이미 뽕밭 노래가 나온다. “새삼덩굴 캔다며 매마을에 가네/ 누굴 보러 가겠는가 아리따운 강씨네 맏딸이라네/ 뽕밭에서 나를 기다리네/ 으슥한 곳집으로 나를 이끄네/ 강가까지 따라와 나를 배웅한다네(하략)”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우리 속담도 역시 이런 풍속에 그 연원이 있을 것이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앞산 뒷산에 뽕 따러 가세.” 이것은 우리나라 개화기에 만들어져 크게 유행한 신민요의 한 구절이다. 유교 관념에 억눌려온 사랑의 욕구가 자유인권사상이 스며들던 개화기를 만나 뽕밭의 은유로 분출한 것이리라.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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