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5년간 임대료 인상 없는 '어쩌다 가게'

사회투자기금 도움으로 건물 짓고 16개 업체 함께 마음 편하게 장사

등록 : 2016-11-10 11:48 수정 : 2016-11-14 11:32

크게 작게

망원동에 가면 ‘어쩌다 가게’가 있고, 그 가게에 가면 책방도 있고, 맥주도 있고, 밥집도 있고, 토스트도 있고, 태피스트리도 있고, 꽃집도 있고, 향수도 있다. ‘어쩌다 가게’ 2호점 기획과 운영을 맡은 안군서(맨 왼쪽) 공무점 대표와 건물을 설계한 박인영(맨 오른쪽) 건축사가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 인근 한적한 주택가에 건물 모양도 이름도 독특한 ‘어쩌다 가게’가 있다. 온통 하얀 지하 2층, 지상 4층(대지 면적 212㎡, 연면적 590㎡)의 건물은 계단과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열린 구조다. 계단과 복도는 골목길 구실도 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가게 앞을 자연스레 지나가게 된다.

올해 5월 문을 연 ‘어쩌다 가게’에는 작은 가게와 공방 11곳, 회사 5곳이 모여 있다. 책방, 밥집, 카페, 꽃집, 공방, 칵테일바 등 개성 있는 가게와 공방들이 있고 인테리어 업체, 건축사무소도 들어와 있다. 입주자들은 창고, 회의실, 라운지, 마당 등 공간을 공유한다. 정수기, 프린터, 빔프로젝터, 냉장고 등 비품도 함께 이용한다.

30대가 대부분인 사장님들은 이력이 다양하다. 직장을 다니다 힘들더라도 자기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동네 밥집을 연 최연우 씨,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일을 찾기 위해 향초공방을 하는 이은혜 씨, 느리고 천천히 사는 삶을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어 꽃집과 플랜트(식물) 디자인숍을 결합한 안숲 씨, 그리고 서촌에 있던 가게가 너무 잘돼 밀려드는 손님을 피해 여유를 찾아 옮겨온 프렌치토스트 카페 류길준 씨 등.

‘어쩌다 가게’의 사장님들은 한목소리로 5년 동안 임대료 인상이 없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밥집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최연우 씨는 “돈 들여 인테리어를 했는데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올리면 멘붕”이라며, 임대료가 5년간 확정되어 있어 안심이라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시각적 표현으로 실용 정보 전달)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든 안숲 씨가 최소 10년은 내다보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임대료 인상 걱정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이 있다는 것도 ‘어쩌다 가게’ 사장님들이 꼽는 장점이다. 홀로 가게나 공방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같은 공간을 쓰는 이웃들이 큰 힘이 된다. 향초공방 ‘유어브리즈’ 이은혜 씨는 “가게마다 영업 시간이 다르지만, 오픈형 건물이다 보니 오가며 자주 마주친다. 반갑게 인사하다 보면 한 식구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가게’의 입주 가게들은 손님들에게 이웃 가게 홍보도 열심히 한다. 손님 나누기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2층 수입맥주 가게 ‘위트위트’(wit wheat)에서 맥주를 산 손님은 지하 ‘피(P, Pub)라운지'에서 비용을 조금 내고 마실 수 있다. 1층 서점 ‘비(B, Book)라운지’에서는 이웃 공방이나 숍에서 만든 향초나 테라리움(유리병 안에 작은 식물을 심어 정원처럼 꾸민 것), 화분 등을 전시해놓고 팔아주기도 한다.

‘어쩌다 가게’는 홍대 근처에서 ‘건축사무소 사이(S.S.A.I)’를 운영해온 두 건축가(박인영, 이진오)의 합동 작품이다. 작은 가게들이 쫓겨날 걱정 없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들은 우선 함께 만드는 작은 건설사라는 뜻의 ‘공무점’을 만들었다. 여기에 안군서 대표가 합류했다. 대학생의 졸업전시 작품 제목 ‘어쩌다 가족’에서 프로젝트의 이름을 따왔다.

‘어쩌다 가게’ 1호점은 2014년 연남동 낡은 2층 단독주택을 빌려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했다. 2억 원을 넘게 들여 수리했는데, 그새 연남동 임대료가 너무 올라서 벌써 만기 뒤가 걱정이다.


어쩌다 가게’ 망원점의 공사 전 모습. 어쩌다 가게 입주자들이 9월에 연 ‘어쩌다 야시장’. 공무점 제공

그래서 2호점은 무리해서라도 땅을 사 건물을 짓기로 하고 진행했다. 대부분의 건축 프로젝트가 그렇듯이 돈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안 대표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을 알게 됐다.

사회투자기금은 서울시가 2012년부터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적가치 투자 재원이다. 공적 기금 가운데 가장 많은 자금을 사회목적 사업에 지원하고, 대출 금리(2%)도 가장 낮다.

‘어쩌다 가게’ 프로젝트는 작은 가게들이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대안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인정받아 10억 원을 융자 받았다. 안 대표는 “사회투자기금 덕분에 1년반 정도 앞당겨 2호점을 낼 수 있었다”며 선한 대출의 힘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규모는 현재 557억원이다. 서울시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설치 및 운용 조례’에 근거해 526억 원을 출연했고, 민간기관이 기부로 나머지 31억 원을 보탰다. 기금 운용기관인 한국사회투자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사회투자기금이 융자를 승인한 479억 원 규모의 사회목적 사업이 진행 중이다.

사회목적 사업에는 ‘어쩌다 가게’ 같은 사회적 프로젝트에 대한 융자, 주거복지를 위한 건설과 임대를 아우르는 소셜하우징에 대한 융자 등이 있다.

사회투자기금 대출의 경우 아쉬운 점이 있다면, 거치기간과 상환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사회투자기금 융자는 1년 거치 4년 분할상환 방식이다. 안 대표는 “상환 조건이 개선 되면 임대료를 좀 낮출 수 있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앞으로 사회투자기금의 규모가 더 커지고 상환 조건도 개선되면 ‘어쩌다 가게’와 같은 프로젝트가 더 많이 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이어진 기사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