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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분실’ 다각적 보기

‘미궁의 설계자’ 김민정 작가

등록 : 2023-02-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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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건축가는 왜 이 건물을 설계했을까?”

17일부터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미궁의 설계자>의 김민정 작가는 이 질문에서 작품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국 근대사에서 수많은 민주화 열사가 고문당하며 죽어갔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는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로 불리는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누구라고 남겨진 것은 없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김수근이 언급되기 시작했단다.

경동교회와 공간사옥 등 한국사를 통틀어 위대한 건축물을 남긴 그가 “왜 인간을 해하는 미궁을 설계하게 됐는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어떻게 설계됐는지를 보여주는 신호(1975년), 갑자기 대공분실에 끌려와 고문당하고 죽음을 맞는 경수(1986년), 이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다큐멘터리감독 나은(2020년) 등이 각자의 시간대에서 바라보는 대공분실을 이야기한다.

“연극 속의 인물 나은처럼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건물의 비극을 탐색했죠. 2012년 도면이 공개됐지만 어디에도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흔적은 없대요. 거장의 오점이라 불리는 그곳을 걸으며 설계 당시와 고문당했던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김 작가는 마당에서 시작해 뒷문을 통해 나선형 계단을 올라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희생된 509호, 김근태 의원이 전기고문을 당했던 515호를 둘러봤다. 부모와 누이에게 보낸 수감자의 빛바랜 편지를 보면서 그는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떠올리며 “건축가는 이 비극을 알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을 갖게 됐다.

2021년 창작산실의 대본공모에서 최우수작을 받으며 지난해 쇼케이스부터 호평받아온 김 작가는 이번 작품 공연을 앞두고 이렇게 소감을 남겼다.

“김수근 건축가의 대표 건물인 이 극장에서 공연하게 된 것은 참으로 공교롭네요.”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실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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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은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 전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뮤지컬, 오페라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대표작으로는 <해무> <이혈> <하나코> <시간을 칠하는 사람> 외 다수가 있으며,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한국극작가협회 ‘오늘의 극작가상’(2020), 제15회 2인극 페스티벌 희곡상, 서울연극인 대상 극작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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