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천상병 시 읽으며 걷는 수락산 숲길, ‘마음 소풍’의 길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㉜ 서울시 노원구3

등록 : 2021-08-26 14:45 수정 : 2021-08-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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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역 근처 시인 흔적 사라졌지만

천상병공원의 시비, 반갑게 맞이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시를 읊으면

잎마다 반짝이는 햇빛이 더욱 새롭다

수락산 학림사 반송.

수락산 학림사 160년 반송을 보고 용굴암까지 이어지는 1.3㎞ 숲길을 걸었다. 명성황후가 난을 피해 걸었던 고행의 숲길이다. 천상병 시인이 살았던 수락산 자락에 시인을 기리는 공원과 숲길이 있다. 숲길에 놓인 시인의 시를 읽으며 걸었다. 계곡 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이 쉰다. 산으로 들어가는 어귀, 마을이 초승달을 닮은 형국이어서 갈월 마을이라고 했다. 도시화한 그 마을에 지금도 남아 있는 고목 세 그루가 작은 생명과 어우러져 자란다.


상계동 1번지 반송과 용굴암 숲길


지하철이 도착하는 당고개역 승강장은 시간여행의 입구다.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은 낡은 기와집들이 70년대풍 마을을 이룬 풍경이 승강장 창밖으로 보인다. 집과 집 사이 좁은 골목에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가 오히려 편안하다. 마을 뒤에 보이는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이질적이다. 초록 숲 불암산이 그 뒤에서 우두커니 마을을 굽어본다. 물줄기 마른 불암폭포의 움푹 파인 바위 절벽이 눈을 닮았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불암산과 수락산 사이를 오가는 길이 당고개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사도세자가 구해준 여인과 미륵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마을 사람들이 미륵불을 모신 미륵당을 만들었다고 해서 당고개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의 시가 있는 수락산 숲길.

불암산과 그 아래 오래된 마을을 뒤로하고 상계동 1번지, 수락산 학림사를 찾아간 이유는 160여 년 된 반송과 용굴암 때문이었다.

학림사로 올라가는 길은 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절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백일홍이 피었다. 반송은 대웅전 옆에 있었다. 거대한 반송이 굵은 줄기를 비틀며 자란 모습이 수백 년도 더 돼 보인다. 나무 아래 넓적한 돌을 깔아놓았다. 누구든 쉬어가라는 마음이다. 추녀 끝에서 울리는 풍경 소리가 솔가지 사이로 스며든다. 청량하다. 이제 막 절을 찾아온 할머니 두 분이 대웅전 앞마당으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을 앞두고 앉아 쉬신다. 절로 올라올 때 약사전에서 보았던 석불의 얼굴이 생각났다. 인자하고 정 많은 동네 아저씨의 웃는 얼굴을 닮은 석불의 얼굴이 두 분 할머니의 웃는 얼굴에 겹친다.

용굴암은 학림사에서 약 1.3㎞ 정도 산길을 올라가야 나온다. 작은 계곡을 왼쪽에 두고 산길로 접어든다. 여느 산길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따가운 가을 햇살은 숲이 걸러준다. 나무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에 땀이 식는다. 모퉁이를 돌아가는 숲길 끝이 허공이다. 성기게 자란 나무 사이에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였다. 숲 밖 풍경이 잠깐 열리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누군가의 마음을 이곳에서도 보았다. 이곳에서 용굴암은 멀지 않다.

수락산 용굴암 나한전. 천연동굴에 부처님을 모시면서 용굴암의 역사는 시작됐다.

천상병 시인의 숲길을 걷다

용굴암은 산속 바위 절벽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에 불상을 모시고 수도 정진하던 곳이었다.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1882년 난을 피해 은거해야 했던 명성황후가 여주 쪽으로 피신하던 길에 찾은 곳이 용굴암이었다. 명성황후는 이곳에 은거하며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다시 궁으로 돌아간 명성황후는 용굴암에 하사금을 내렸다고 한다.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용굴암은 그만큼 전망도 좋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불암산을 비롯해 청계산, 관악산, 남산, 백악산(북악산), 북한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계4동 일대도 훤히 보인다. 불암산 자락으로 번진 마을과 숲의 경계가 뚜렷하다. 당고개역을 오가는 철길은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당현천 물길이기도 하다.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풍경 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의 경계까지 울려 퍼질 듯하다.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간다. 상계역에서 노원 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수락현대아파트 정류장에 내렸다. 그곳에 시인천상병공원이 있다.

시인천상병공원.

천상병 시인은 지금의 지하철 수락산역에서 동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 지금 그곳은 빌라촌으로 바뀌었다. 시인이 살았던 흔적 하나 남지 않은 골목보다 시비와 조형물, 정자가 있는 공원에 마음이 더 간다.

천상병 시인과 아이들, 그리고 강아지가 함께 어울린 조형물을 오래 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인의 팔을 잡고 떼를 쓰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또 다른 아이, 아이처럼 웃는 천상병 시인의 모습이 정겹다. 천상병 시인의 왼쪽 발이 맨발이다. 강아지가 천상병 시인의 고무신을 끌어안고 깨물고 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안함이 공원을 감싼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로 끝맺는 그의 시 <귀천>이 새겨진 시비가 그 뒤에 말없이 서 있다.

시인천상병공원에서 노원골 물소리 쉼터까지 이어지는 길은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읽으며 걸을 수 있는 ‘천상병 시인의 숲길’이다. 수락산 자락의 계곡을 거슬러 가는 이 길은 주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자 수락산 등산객의 쉼터이기도 하다.


초승달을 닮은 옛 갈월 마을, 그 숲길을 걷고 마을에 남아 있는 세 그루 고목을 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천상병의 시 <나의 가난은> 일부)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무슨 행렬인가 푸른 나무 밑으로/ 하늘의 구름과 질서 있게 호응한다.// 일요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기후는 안성마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하늘에는 송이구름.’(천상병의 시 <수락산 변>)

수락산을 오가는 사람과 풍경을 천상병 시인은 보았다. 그 또한 산기슭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 숲길에 놓인 그의 시를 읽으며 걷는다. 한 잔 커피와 담뱃갑 속에 두둑한 담배, 해장하고도 버스 탈 돈이 남아서 오늘 아침이 행복하다는 천상병 시인의 마음으로 걷는다. 초록의 숲이 있고, 잎마다 반짝이는 햇빛이 있고, 계곡물에서 노는 고기 떼가 있어서 행복하게 걷는다.

노원골 물소리 쉼터에서 발길을 돌린다. 올라올 때 보았던 돌다리를 건너 산으로 들어간다. 널찍한 바위가 배를 닮았다고 해서 이 동네 아이들이 이름 붙인 ‘배바위’를 지나면 고래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인 ‘고래바위’가 나온다. 고래바위를 지나 산으로 더 들어가는 사람들은 등산객이다. 숲속의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영역은 고래바위까지다. 이 휴식의 숲은 평일인데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저씨와 아줌마가 고래바위 옆 의자에 마주 앉아 장기를 둔다. 아저씨가 장기판의 말이 가는 길을 아줌마에게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혼자 앉아서 오랫동안 숲을 바라보는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소한 집안 얘기를 나누는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무르익는다. 숲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좋다. 이제 가을인가 보다.

숲에서 나오면 마을이 시작된다. 이 마을의 옛 이름은 ‘갈월 마을’이다. 수락산의 숲으로 우묵하게 들어선 마을이 초승달 모양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이 ‘갈월’이 됐다. 초승달을 닮은 마을, 그곳에서 천상병 시인은 살았던 것이다.

시인천상병공원 남쪽 바로 아래 한신아파트 단지 안에 24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한신아파트 단지와 서울노원초등학교 사이 좁은 골목에 수락산 느티나무 공원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24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19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아파트 단지 안 은행나무는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모양이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밝아진다. 수락산 느티나무 공원 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고목과 그 주변에 있는 은행나무 고목은 좁은 골목길 같은 공원 양쪽 옆에서 자라는 상록패랭이, 기린초, 꼬리풀, 은사초, 둥굴레, 공작단풍, 꽃잔디, 수호초, 불두화, 산수유, 히어리, 남천 등 작은 생명과 어우러져 자란다. 은행나무 고목 줄기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웠다.

학림사 약사전 석불 좌상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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