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낙엽은 600년 사랑의 송가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⑪ 송파구의 가을 단풍 숲과 나무들

등록 : 2020-11-19 14:21 수정 : 2020-11-1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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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동의 할아버지·할머니 느티나무

조선 남녀의 구슬픈 사랑 얘기 담겨

노역에 끌려간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생의 마지막 겨우 만나 단 하루 사랑


애달픈 그 사랑, 두 그루 나무로 변해

“아픔 없는 세상 되라” 마을 지켜주네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


땅 위로 뿌리를 드러낸 느티나무 고목에 기대앉은 할아버지, 할아버지 품에 등을 기대고 선 어린 손주, 흑백사진 속 그 풍경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진 속 느티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설 어린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700년 다 된 향나무 한 그루, 한성백제의 옛 돌무덤을 지키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고독하다. 몽촌토성 언덕 너른 풀밭 세 그루 나무는 사람들 사랑에 보답하듯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을 쉬게 한다.


흑백사진 속 할아버지와 손주가 앉아 있던 느티나무 아래

낡은 생활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할아버지가 단단하게 다져진 땅 위로 뿌리의 일부가 드러난 느티나무 고목 아래 앉아 있다. 할아버지 가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작은 아이는 서너 살 정도 돼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할아버지와 손주 같다. 둘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무엇을 보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느티나무 뒤에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더 있다. 이런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 속 느티나무 고목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이 나무들은 580년 넘게 송파구 문정동을 지키는 마을 터줏대감이다. 문정1동 주민센터 앞 비석에 1950년대 말 문정골 옛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거기에도 이 느티나무 두 그루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 때에도 마을을 지켜주는 이 나무들 덕에 큰 피해가 없었다고 여겼다 한다.

두 그루 느티나무는 암수 한 쌍이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 나무, 할머니 나무라고 불렀다. 그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하자고 맹세한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는데, 남자가 노역에 끌려가 오랜 세월 돌아오지 못했고, 여자는 그 세월을 기다렸다. 남자가 돌아온 날 여자는 생을 마감했다. 긴 생이별 끝에 주어진 단 하루의 시간, 살아서 못다 한 사랑 죽어서 함께 나누고 싶은 기원 때문이었을까? 사랑하는 남녀는 느티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서서 하늘을 올려본다. 두 느티나무 가지가 공중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은 것처럼 얽혀 있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이 햇볕에 반짝이고, 건듯 불어가는 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낙엽은 600년이 다 돼가는 사랑의 송가 같았다.

나무 앞 보호수를 알리는 안내판에 ‘고유번호 서24-4’라고 적힌 나무가 할아버지나무, ‘서24-3’이라고 적힌 나무가 할머니나무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 모여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고 한다.


백제의 돌무덤을 지키는 괴목

송파구 거여동 향나무어린이공원에는 700년이 다 돼가는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공원 한쪽 구덩이같이 움푹 파인 곳에 뿌리를 두고 줄기를 뻗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작은 놀이터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스크 없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날을 생각해본다. 재잘대며 뛰어노는 아이들 곁에 7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나무가 있는 풍경이 소소한 행복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석촌동 고분군으로 가는 길, 길가 나무 중 어느 것 하나 단풍 물들지 않은 게 없다. 가로수 단풍 사이 버스정류장마다 멈추고 다시 떠나는 버스의 종점이 깊은 가을이었으면 했다. 그렇게 도착한 석촌동 고분군에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사적 제243호인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돌무덤들이 있는 곳이다. 1916년에는 90여 기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4기만 남아 있는데, 그중 3호 돌무덤은 4세기 후반의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련 학계 일부에서는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석촌동이란 마을 이름도 돌무덤이 많은 것에서 유래했다. 석촌동의 옛 이름은 ‘돌마리’였다. 돌이 산처럼 쌓인 돌더미가 여기저기에 있었다고 한다.

여러 기의 돌무덤을 소나무 숲과 단풍 물든 숲이 에워싸고 있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제2호 움무덤(널이 들어갈 수 있게 땅을 파서 만든 무덤)을 보고 나온다. 단풍 숲 그늘에서 숲 밖 돌무덤을 보며 한강유역에 터를 잡은 초기 백제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해본다. 백제 사람들이 살았던 어느 하루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듯 몇몇 사람이 녹색 철책 안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쌓인 일감 사이에 고사한 것처럼 보이는 괴목 한 그루를 보았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보다 더 고독해 보이는 그 나무가 260년 넘은 회화나무다. 나무에 달린 잎이 하나도 없다. 짧은 가지 앙상한 나무는 쇠파이프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서 있다. 고구려에 밀려 남쪽으로 수도를 옮겨야 했던 한성백제의 운명이 떠올랐다.

올림픽공원 곰말다리에서 본 풍경

사랑을 먹고 자라는 옛 토성 언덕 나무 세 그루

석촌동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몽촌토성으로 발길을 옮긴다. 몽촌토성이 있는 올림픽공원은 그 주변 도로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 가로수가 유명하다. 샛노랗게 물들어 거리를 밝히는 은행나무 아래 길을 걸어서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간다.

몽촌토성 언덕 단풍의 향연이 몽촌호 물 위에 비친다. 물에서 아른거리는 단풍색은 또 다른 가을 분위기다. 야외 조형 전시장을 왼쪽에 두고 걷는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나무 옆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는 460년이 넘었다. 바로 옆 붉게 타오르는 단풍 숲 때문인지 앙상한 가지가 을씨년스러웠다. 입동이 지난 지 오래니, 지금은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어디쯤이겠다. 그 길에서 만난 늘 푸른 나무 한 그루, 정이품송 장자목(長子木)이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목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 조선시대 임금의 가마가 가지에 걸리자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올려 임금의 행차를 도왔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정이품송이다.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받은 그 나무는 옛이야기와 꼿꼿한 모습 덕에 사람들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다. 그 나무의 장자목을 이곳에서 보았다.

2001년 봄 이른바 정이품송 혈통 보전을 위한 혼례식이 열렸다. 강원도 삼척에서 어머니 나무를 선정해서 인공교배를 했다. 그렇게 자란 나무를 2009년 올림픽공원 88마당에 심었다. 그 나무를 뒤로하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 울긋불긋 물든 단풍 숲을 굽어보며 향한 곳은 오래전부터 ‘나 홀로 나무’라고 잘 알려진 측백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몽촌토성 언덕 너른 풀밭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 나무를 ‘나 홀로 나무’라고 불렀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혹은 혼자서도, 사람들은 그 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 사랑을 받고 자라는 그 나무는 사실, 마을 골목을 푸근하게 해주었던 나무다. 지금 그 나무 주변 너른 풀밭에 사람이 살던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과 집 사이 어디쯤에서 푸르른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달래주었다.

‘나 홀로 나무’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바라본다. 6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나무다. 아직은 푸른 잎을 달고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도 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 아래에도 수양버들 아래에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깊어가는 가을, 그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굴 때까지 사람들을 그렇게 쉬게 할 것이다.

몽촌토성 ‘나 홀로 나무’가 있는 언덕에서 본 단풍 숲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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