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변화의 갈림길에 선 시인과 예술가의 거리

손관승의 공감재생 골목여행 ㉑ 아날로그 향기 흐르는 인사동

등록 : 2020-10-15 15:07 수정 : 2020-10-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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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 고서점인 ‘통문관’ 여전하고

글쟁이 입맛 책임지던 식당 그대론데

‘쌈지길’ 등 대형 단지 중심부 자리잡아

골목에서 예술가의 외로움 헤아린다

에디트 피아프의 원곡이 물론 훌륭하고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도 멋지긴 하지만 ‘장밋빛 인생’을 가을에 듣기에는 베를린필 12 첼리스트의 연주가 제격이다.

장미의 붉고 뜨거운 열정을 첼로의 묵직함과 베를린필 특유의 절제감으로 살짝 감춘 채 전달하는 묘미는 이 계절이 아니면 느끼기 어렵다. 음악을 듣다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흔히 ‘장미의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릴케는 장미 못지않게 포도주를 인생의 익어감에 비유해 종종 노래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가을날’이 대표적인 경우다.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시인의 노래처럼 10월은 햇볕이 겨울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인자함을 선사하는 계절이다. 나는 그 소중한 햇볕을 두 어깨에 받으며 인사동으로 향한다. 이곳은 ‘주말 차 없는 거리’의 효시다. 당연히 차(車) 대신 차(茶)를 찾기로 했다. 지하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안국동 사거리로 향하면 작은 광장이 있는데 북인사마당이다. 매일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곤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붓 조형물과 ‘대한민국 전통예술 중심 인사동’이란 안내문마저 썰렁해 보인다. 그 옆으로 누워 있는 큼직한 돌에는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는 시가 쓰여 있는데,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쉽지 않다.

김영랑 시인의 시가 쓰여사 진있설는명 비

인사동은 시인과 예술가의 거리다. 여의도가 한때 방송인과 동영상, 디지털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었다면, 인사동은 신문사 사람들과 글과 그림의 아날로그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동네다. 서울에서 동양적 의미의 인문학인 문사철(文史哲)을 말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조선 초기 이곳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에 속했고 갑오개혁 당시에는 대사동(大寺洞)도 포함되었기에 관인방과 대사동의 중간 한 글자씩 따서 오늘날의 인사동이 되었다. 그림이나 글씨를 취급하던 ‘도화원’(圖畵院)이라는 관청이 이곳에 있었기에 그림이나 글씨가 자연스레 주변에서 유통되었고, 고서점을 비롯해 종이나 붓, 먹, 벼루 같은 문방사우(文房四友)를 파는 필방 등도 들어섰다. 가난했던 양반들이 생계를 위해 고서를 팔던 곳이며, 조선왕조가 사라진 이후 인근 북촌에서 살던 양반들이 몰락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던 가구가 이곳에 흘러나와 골동품 거래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붓과 전통거리 상징 조형물

북인사마당에서 인사동길을 따라 1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우측으로 ‘통문관’이 있다. 1934년 금항당으로 개업한 이래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1945년 지금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한 뒤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고서적 전문 서점이다. 통문관에서 종로3가 방향으로 조금 내려와 건너편 방향에 있는 곳이 ‘인사동14길’, 인사동에서 가장 유명한 밥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다. 이모집, 사천집, 선천 같은 식당은 서울 글쟁이와 예술가의 입맛을 오랫동안 책임져주던 곳이다.

인사동14길의 밥집 돌담

나는 방송사에 입사하기 전 비록 매우 짧은 기간이긴 하였지만 잡지사와 신문사 근무 경험도 있었기에 전성기 시절 인사동 골목길의 정취를 기억하고 있다. 간장게장, 낙지볶음, 연포탕, 삼합 등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문인과 예술가들을 이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금 그 골목 중간쯤에는 “종교, 정치, 군대 이야기 하지 말고 오직 여자만 이야기하자”는 우스개를 식당 정문에 딱 걸어놓은 ‘여자만’(汝自灣·순천만의 옛이름)이란 남도 음식점이 있고, 그 앞에는 시인 천상병의 흔적이 남아 있는 찻집 ‘귀천’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귀천과 여자만이 마주 보고 있는 인사동14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인생을 잠시 소풍 왔다고 노래하던, 풍부한 상상력의 시인은 오래전에 소풍을 끝내고 저세상으로 갔지만, 그의 찻집과 시들은 서울미래유산 표석과 함께 남아 있다. 인사동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분이 법정 스님이다. 스님은 자신의 책이 출간된 뒤 편집팀 식구들을 모두 인사동의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으로 초대하였다. 군 복무를 마친 직후라 아직 머리가 까칠했던 나는 쟁쟁한 문인들의 말석에 끼어 거인의 면모를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듣는 행운을 누렸다. 언젠가 문자향(文字香)을 맡으며 ‘글로생활자’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게 된 날이기도 하다.

사찰음식점 산촌

통인가게

다시 인사동의 주축도로인 인사동길로 나왔다. ‘안녕인사동’ ‘쌈지길’ 같은 대형 단지는 인사동의 새로운 얼굴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있는 상점들이 모인 현대식 건물이다.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수도약국 앞까지 걷다 보면 양옆으로 갤러리와 표구상, 공예품 가게들과 함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꿀타래 가게도 보이고 터키 요리인 케밥과 인도 음식점도 눈에 뜨인다.

지나친 상업주의로 변질돼가는 인사동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짝퉁이 아닌 품격 있는 향기를 주장한다. 반면에 지속가능한 거리가 되려면 유혹하는 요소가 있어야 하며, 전통과 함께 변화도 과감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시간과 공간을 씨줄 날줄로 엮어서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하는 인사동의 정체성 혼란이다. 골목 어귀 어디선가 외국인 악사가 홀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1780년 중국 북경의 인사동이라 할 수 있는 유리창 거리를 찾았던 연암 박지원이 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토로하던 마음이 떠오른다.

“아!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지기를 얻을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텐데….”

품은 뜻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사람들은 외로워한다. 연암이 그러하듯 인사동에서 만난 예술가들의 마음이 지금 그러하다.

글·사진 손관승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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