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주역들의 집터가 옹기종기

유영호의 우리 동네 어슬렁 산책 북촌 일대 中 가회동

등록 : 2019-06-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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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고 자리는 서광범의 집

앞의 안동별궁 불 질러 거사 알려

박규수 옆집인 홍영식 집은

근대식 의료기관인 광혜원으로

정독도서관은 막내인 서재필 집

영화 <암살>에 나온 백인제 가옥은

백병원과 인제대학 설립자 집

가회동 일대, 정세권의 건양사가 건축


김승연 회장 등 한화그룹 일가 밀집

오늘은 소위 북촌 한옥마을로 널리 알려진 종로구 가회동 일대를 걷는다. 주로 갑신정변의 현장을 걷게 될 것이다. 따라서 ‘3일 천하’로 끝나버린 이 부르주아혁명(자본가 계급이 주도권을 쥐고 봉건제도를 타파해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체제를 확립한 사회혁명)의 발화지였던 종로구 견지동 ‘우정총국’에서 출발하자.

그런데 이곳의 지명은 왜 견지동일까? 옆 동네인 공평동과 관련된다. 종각역 2번 출구 쪽 SC제일은행 일대가 의금부가 있던 곳으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 일대를 ‘공평동’이라 지었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뜻을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곳을 ‘견지동’이라 지었다. 사법 적폐가 이슈로 떠오른 요즘 다시 한번 새겨볼 멋진 지명이다.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1884)의 무대, 우정총국.

그다음 2년 전 강남구로 이전한 옛 풍문여고로 가자. 이곳은 고종과 명성황후가 혼례를 치른 안동별궁이 있던 자리며, 그 뒤편 덕성여고 자리가 서광범의 집이다. 갑신정변은 본래 서광범이 이곳 안동별궁에 불을 질러 그 불길이 거사의 시작이 되도록 계획했던 것이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는 민영휘 소유가 되었고, 훗날 민영휘의 ‘휘문고’와 조합을 이루도록 그의 아내 안유풍의 ‘풍문여고’가 들어선 것이다.

한편 서쪽으로는 넓은 빈터가 있는데, 본래 소나무가 울창한 고개라 해서 ‘송현동’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아버지였던 친일파 윤택영의 집터였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의 관사가 있었고, 그것이 해방 후에는 주한미대사관의 관사로 쓰였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이 사들여 한옥 호텔을 지으려다 소위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포기하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베어버린 채 빈터로 남아 있다.

발길을 옮겨 헌법재판소로 가면 천연기념물 제8호인 재동 백송이 있다. 이곳은 연암 박지원의 집터이기도 하며, 그의 손자 박규수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김옥균 등 개화파가 박규수에게 개화사상을 배웠다고 한다. 또 박규수의 집과 붙은 곳이 개화파 홍영식의 집이었는데,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그의 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이 광혜원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우정총국에서 다친 민영익을 살려낸 선교사 알렌이 그곳에서 서양 의료를 펼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현재의 세브란스병원이 이렇게 탄생됐다. 광혜원은 2년 뒤 구리개(현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화단 뒤편)로 옮겼다.

참고로 종로구 재동은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이 살던 곳이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이 그를 죽이면서 벌어진 유혈극으로 이곳에 피가 내를 이루고 비린내가 났다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집 안에 있던 재를 가지고 나와 길을 덮었다고 하여 잿골(한자로 회동)이 되었다가 재동으로 바뀐 것이다.

헌법재판소 건너편 골목에는 우리나라 최초, 최대 한류스타였던 월북 무용수 최승희의 집이 있다. 현재까지 고스란히 남아 지금은 한정식집으로 쓰인다. 그런데 나는 최승희를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아 있는 ‘역사 청산’이란 말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그가 남쪽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친일파’이며, 북쪽에서는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는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남쪽은 과거 청산이 안 되었기에 그대로 친일파로 남아 있는 것이며, 북쪽에서는 과거 청산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을 기준으로 ‘애국자’로 평가한 것이다.

어쨌든 18살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열고, 25살에 <나의 자서전>을 썼고, 그의 책 <조선민족무용기본>과 <조선아동무용기본>은 조선 춤의 기본 교과서가 될 만큼 무용 천재였던 그다. 그런 그가 살던 곳이 그대로 남아 있음에도 월북했다는 이유로 이에 대한 보존 등 아무런 조처가 없는 현실이 아쉽기 그지없다.

다음 현 정독도서관은 1970년대 강남 개발 때 인구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처음으로 강남으로 보낸 경기고가 있던 곳이다. 당시 경기고 동문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건물을 헐지 않고 도서관으로 이용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명칭에 있어서 ‘정독’은 흔히 우리가 ‘책을 정독한다’는 의미의 ‘정독’(精讀)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에 있는 ‘정’자를 따와 ‘정독’(正讀)이 됐다. 한편 이곳은 갑신정변 주모자의 막내였던 서재필의 집터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영화 <암살>의 촬영지로 뜬 ‘백인제 가옥’을 들렸다. 백인제는 그 이름 그대로 백병원과 인제대학교의 설립자이다. 이 집은 본래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살던 집이다. 한상룡은 일제강점기 ‘경제계의 이완용’으로 알려진 친일파였으니, 영화 <암살>에서도 친일파의 집으로 설정된 것이라 상상해본다. 본래 이 집은 바로 아래 롯데그룹 영빈관도 포함하는 대저택이었다.

이제 북촌 최고의 관광지인 가회동 31번지 일대의 한옥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이곳은 일제강점기 정세권의 ‘건양사’가 개발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한옥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현장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정세권은 단순히 부동산 개발로 돈만 번 것이 아니라, 그렇게 번 돈으로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물론 그 때문에 일경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뚝섬 일대의 대규모 토지를 빼앗기기도 했다.

가회동은 김승연 회장 저택(가회동 1-11)을 필두로 한화그룹 일가의 집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가회동 1-94 일대는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외국인 전용 타운하우스로, 지붕만 기와인 기형적인 한옥이 여러 채 들어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사진 유영호 <서촌을 걷는다>·<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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