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초라한 인간’에 대한 위로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의 김연미 작가

등록 : 2023-04-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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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이에게 버림받은 기분으로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 연극 <혼마라비해?> 등을 통해 탄탄한 서사를 보여준 김연미 작가는 오는 5월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계속되는 창작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을 위해 펜을 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희곡 <보르티게른>(Vortigern)이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작품이냐는 논란으로 18세기 영국 런던을 뒤흔들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공연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가 죽은 뒤 두 세기가 지난 1796년 4월, 런던의 어느 극장이 배경이다. 여기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윌리엄 사무엘 아일랜드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서류를 위조한 아들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가 벌이는 희대의 사기극이 펼쳐진다. 이들 부자가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낮은 완성도 때문에 관객의 비난이 빗발쳐 공연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 내용을 둘러싸고 김 작가는 부자의 사기에 당대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초라한 인간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부조리를 서슴지 않는 욕망에 관한 질문이다.

“처음에는 인정받고 싶어서 셰익스피어의 서류를 위조하는 터무니없는 모습을, 어느 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초라하게 늙어가는 게 두려운 사무엘의 모습을 보았어요. 나중에는 ‘그저 자신이라는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는데, 그것이 제 안에도 내재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이 작품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남길 바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들, 또는 나에게, 혹시나 이 이야기가 닿을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한 줌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끝>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실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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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미는 경원대에서 작곡과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음악극창작과를 졸업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2015), 연극 <혼마라비해?>(2020), 연극 <인계점>(2021) 등이 있으며, 본 작품으로 창의인재 HJ컬쳐로 우수콘텐츠상(2020), 콘텐츠진흥원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스토리 부문 <디어마이 라이카> 우수상(2021)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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