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걸으며 생각하며

신천지 이주민들의 평화공존, 교토 ‘문명의 빛’

② 교토 창생의 신화를 간직한 가모가와강 삼각주의 두 가모신사

등록 : 2022-10-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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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동쪽 가모가와강은 두 강이 합쳐져 하나의 강을 이룬다. 삼각주 숲속에 시모(하)가모신사가, 왼쪽 강 상류에 가미(상)가모신사가 있다. 두 신사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숲속 시모가모와 상류 가미가모신사

태고 이야기 담은 “교토 가장 오랜 신사”

교토가 세계문화유산 지정될 때도 ‘첫손’

가모신사 왕실제례는 교토 3대 축제


백제·신라 도래인 교토 진출·정착 신화

까마귀 토템과 경주 포석정 닮은 정원


신화시대서 역사시대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기도

교토는 서기 794년 수도 ‘헤이안쿄’(平安京)가 건설되면서 천년고도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교토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 문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 여명의 빛을 따라 교토 중심부를 흐르는 가모가와(鴨川)강 상류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모대교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왼쪽에서 가모가와(賀茂川)가 흘러오고 오른쪽엔 다카노가와(高野川)가 흘러와 가모가와강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삼각주엔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그 숲속에 시모가모라 불리는 가모미오야신사가 있고, 가모가와를 따라 3㎞쯤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가미가모라고 불리는 가모와케이카즈치신사가 있다. 두 신사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다. 교토 사람들이 “고대 일본 왕실의례와 무가(武家)신앙을 간직한 가장 오래된 신사”로 여겨 1994년 교토에 17개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될 때도 첫손에 꼽힌 곳이다. 매년 5월15일에는 교토 3대 마쓰리(축제)의 하나인 ‘아오이마쓰리’가 성대하게 열린다.

가모가와 삼각주에 우거진 숲, ‘다다스노모리’는 고대부터 있는 여러 수종의 나무와 숲에 얽힌 고사가 많아 국가사적으로 보호받고 있는데, 숲 이름의 뜻은 ‘진실의 숲’ 정도 된다. 언제부턴가 이곳에서 신판(神判)이 행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오래된 숲은 울창하기도 하거니와 양쪽 강변으로 이어져 있어 교토시 북부지역의 좋은 나들이 겸 산책 코스이다. 매년 여름에는 헌책 시장도 열린다.

가미가모신사의 원추형 모래탑. 신의 강림을 상징하며, 음양설을 따르고 있다.

숲을 지나 시모가모신사에 이르면 붉은색 누문이 눈에 들어오고,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55개의 사전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다. 동서 2개로 이뤄진 본전은 1863년 새로 지은 것이지만, 일본 고유의 신사 양식을 보존하고 있다고 해서 국보로 지정됐다.

필자가 시모가모신사를 찾았을 때는 마침 비공개인 본전과 “고대부터 신찬(神饌) 요리를 만든 ‘신들의 부엌’”이라고 자랑하는 대취전을 특별 공개(유료)하고 있었다. 시모가모신사의 아오이마쓰리는 본래는 농경제례에서 기원했다. ‘신들의 부엌’이 신사에 있다는 것은 제사음식을 만들어 조상신에게 바치고 제사가 끝나면 그것을 나눠 먹는 풍습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시모가모신사 바로 옆에서 고대 제사터가 발굴된 적이 있다. 제단은 조상신이 강림했다는 방향을 향하고 있고, 제단 옆에는 물길을 둥글게 내어 조상신이 타고 왔다는 배 모양의 섬을 만들었다. 섬 안에서는 우물터가 발견됐다. 우물은 조사 결과 제사용 정수를 긷기 위한 용도로 판명됐다.

상류의 가미가모신사는 숲속의 시모가모와는 대조적으로 하늘이 넓게 보일 만큼 탁 트인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가미가모신사에는 특징적인 것이 세 가지 있다. 우선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두 개의 입사(立砂: 원추형 모래탑). 입사는 가모신이 강림한 신산을 상징한다. 좌양우음의 음양설에 따라 신산 정상에 있었다고 상상되는 솔잎을 왼쪽 입사엔 세 개(양), 오른쪽엔 두 개(음)를 꽂아놓는다. 두 번째는 본전에 그려진 해치. 신판의 판관인 상상의 동물 일각수인데 언제 그려진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세 번째는 신라 경주의 포석정과 닮은 곡수연(曲水宴) 정원. 세계문화유산 지정 뒤부터 매년 재현 행사를 한다는데, 포석정과의 연관성과 관련해 한번 참관해보고 싶다.

시모가모신사를 둘러싼 ‘다다스노모리’. 국가사적인 이 숲은 교토 시민이 즐겨찾는 나들이 장소이다.

두 가모신사는 헤이안시대(794~1185) 이전에는 교토 북부지역을 개척하고 다스린 호족인 가모족이 조상신을 모신 씨사(氏社)였다. 이 두 신사에는 야마시로(山城)라고 불렸던 이 땅에 어떻게 문명의 빛이 새어 들어왔는지 보여주는 신화가 있다.

아득한 옛날 일본을 세운 왕이 정복전쟁을 벌일 때 길잡이로 참전한 가모족은 그 공로로 지금의 가모가와강 일대에 영지를 얻는다. 그때 이 지역엔 선주민이 살고 있었다. 교토 북부 해안에 살다가 쌀농사에 유리한 지역을 찾아 남하한 이즈모(出雲)라는 부족이었다. 두 부족은 전쟁 대신 혼인동맹을 선택했다. 가모족은 수장 이름이 ‘야타가라스’(큰 까마귀), 즉 삼족오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가모족이 왕(태양)의 길잡이(삼족오)라는 신화 구조를 생각해보라)이고, 이즈모족은 출운(出雲)이라는 이름 그대로 태양을 섬기는 농경부족이었다. 두 부족의 유사성이 그들을 전쟁 대신 융합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신화의 속편은 부여의 유화설화와 흡사한 데가 있다.

가미가모신사의 붉은 누문. 결혼식도 많이 열린다.

야타가라스와 이즈모 여인 사이에 태어난 딸은 어느 날 강물에 떠내려온 붉은 화살을 침상에 꽂고 잔 뒤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비 없는 손자가 꺼림칙했던 야타가라스는 손자의 관례식에 여러 신(족장)을 초대한 뒤 손자에게 “이 술잔을 너의 아버지에게 바치라”고 명하자, 술잔을 받아든 손자는 “내 아버지는 우레(雷)의 신이다”라고 외치고 승천했다. 야타가라스가 그 뒤를 쫓아가보니 손자가 사라진 곳은 천둥번개의 신을 모시는 신사였다. 그래서 야타가라스는 가모가와 상류에 우레를 모시는 신사를 짓고 손자를 주신으로 모시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가미가모신사의 “신화적” 유래이다. 태양과 번개의 변주인 이 신화는 빛과 비가 절대적인 농업지대의 전형적인 농경신화다.

포석정을 닮은 가미가모신사의 곡수연 유적. 단순한 놀이터가 아닌 제례의식의 일부로 추정하고 있다.

신화는 역사가 아니지만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 진실은 이렇다. 교토에 문명은 두 갈래로 들어왔다. 한 갈래는 남쪽 오사카만에 상륙해 북상한 가모족 같은 사람들이고, 또 한 갈래는 북쪽 해안지방에서 농토를 찾아 남하해 온 이즈모 같은 사람들이다. 쌀농사와 철기문화의 시대였다. 대륙에서 발달한 문명이 한반도로 들어와 적용과 숙성의 시기를 거친 뒤 다시 바다를 건너 일파는 일본 열도 사이 내해를 통해, 일파는 한반도가 마주 보이는 열도의 북부해안을 따라 퍼져나갔음을 말하고 있다.

교토 남쪽에는 나라와 아스카유적이 산재하고, 교토 북쪽 단고지방에는 고대 철기유적과 수천 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다. 가모족이 북상한 길목에는 여전히 삼족오를 모시는 신사가 있고, 북부해안에는 지금도 부산에서 던져진 페트병이 쓰시마난류를 타고 상륙한다.

가모족은 아마도 부여-백제(마한), 이즈모족은 신라(진한) 계통의 족속이었을 것이다. 보다 진보한 지식과 기술, 대담함과 경험을 갖추고 신천지를 찾아온 ‘도래인’들이 속속 역사 활동에 가담하면서 한반도 남쪽의 열도는 ‘일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향해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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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가모(賀茂)와 가모(鴨)는 모두 일본어에서 신을 뜻한다. 고대 한반도에서도 신령을 뜻하는 말에 ‘감’ ‘검’이 있다. 오리 압 자를 쓰는 가모(鴨)가와는 본래는 가모족의 토템 그대로 ‘가막이’(烏)의 강이었을 것이다.

녹색 이파리 두 장을 문장(紋章)으로 쓰는 ‘아오이마쓰리’(葵祭)의 ‘아오이’는 ‘신(이)을 맞이한다, (아오)’는 뜻으로 설명되지만, 사실은 중국인도, 한국인도 즐겨 먹는 ‘아욱’이다. 중세 일본어로는 ‘아후히’, 한국어는 ‘아혹’이다. 이민 간 땅에 미나리를 심는 영화 <미나리>의 모티브는 결코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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