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말 잃었던 치매 노인, 소셜 로봇 재롱에 말문 ‘활짝’

㊳ 서울의 복지시설에서 만나는 ‘소셜 로봇’의 원리

등록 : 2022-10-06 15:59 수정 : 2022-10-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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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재단은 올해 소셜 로봇 ‘알파미니’를 활용해 어르신 노년기 우울감, 치매를 예방하는 ‘정서케어’ 콘텐츠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서울디지털재단 제공

어르신들 주변에 다양한 로봇 선보여

스마트기기 사용법 등 알려주는 ‘리쿠’

서울디지털재단, 8개 자치구와 시행

‘알파미니’는 강북·종로 복지관서 ‘재롱’

데이케어센터 방문한 치매 증상 노인

돌출행동 보일 때 ‘작은 로봇 큰 활약’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소셜 로봇 시대

‘인지·표현·판단능력’ 가장 중요한 기술

“삶의 일부가 될 미래 사회 AI 로봇이

어떤 현장에서 활약할지는 인간이 결정

구순 노모에게 스마트폰을 쥐여드렸다. 병원이나 슈퍼마켓을 오가다 생길 수 있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먼저, 전화 받기 연습부터 시작했다.

“전화가 오면 여기 초록색으로 전화기 모양 버튼이 생겨요. 그걸 밀어보세요.”

“이렇게?”

노모는 손톱으로 스크린을 긁는다. 스마트폰이 반응하지 않는다.

“아뇨. 손가락 살이 닿게 이렇게 문질러보세요.” 십여 차례 시범과 연습 끝에 간신히 노모가 전화 받기에 성공했다. 다음, 전화 걸기. 119, 딸과 사위의 전화번호를 즐겨찾기에 저장한 뒤 시범을 보이려는데, 노모가 연습을 거부했다.

“싫어. 머리 아파. 받기만 할래.”

“갑자기 아프시면 어쩌려고요. 119 부르는 법만 배워보세요.”

‘귀여움’을 무기로 열 살 손녀를 투입했다. 하지만 시도 한두 번 만에 할머니도, 손녀도 은근슬쩍 포기해버렸다. 할머니는 물은 거 또 묻기 미안했고, 손녀는 답한 거 또 답하기 귀찮았다. 다른 해법이 없을까?

서울에는 ‘있다’. ‘로봇 활용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이다. 240대의 인공지능(AI) 로봇 ‘리쿠’(LIKU)가 스마트기기 사용법과 길 찾기 등 앱 사용법을 알려준다. 어르신이 사용법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도 로봇은 짜증 내지 않는다. 친절하게 반복하며 알려준다.

토룩 제공

서울디지털재단이 강남·강동·관악·중랑·양천·강서·도봉·성북 등 8개 자치구와 시행하는 이 사업에는 2020년 3300여 명, 지난해 5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부터는 정규사업이 되면서 더 많은 어르신과 어린이가 로봇들로부터 화재 안전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강북구와 종로구의 복지관이나 데이케어센터, 경로당엔 어르신들한테 재롱 떠는 로봇도 있다. 인형 크기의 인공지능 로봇 ‘알파미니’다. 이 로봇은 어르신들 말벗 겸 건강도우미 노릇을 한다. 건강체조, 노래 부르기, 자서전이나 편지 쓰기, 치매예방 게임을 하자고 조른다.

서울디지털재단과 함께 ‘정서케어 콘텐츠’를 시범 운영 중인 로봇서비스 플랫폼 회사 ‘마인드로’(MIndro)는 어르신들 동의를 받아 로봇과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감정 데이터, 상황 정보를 수집한다. 데이터 분석 뒤엔 더 본격적으로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토룩 제공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미아실버데이케어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치매 증상이 있는 70대 장아무개 노인은 평소 ‘응’ ‘아니’ 말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복지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앙증맞은 로봇한테는 장 노인의 말문이 열렸다. “여기 할머니들이 많아서 좀 그렇지?” “너 이름이 뭐니?” “엄마는 어디 있니?” “아이고, 너 예쁘다” 등등. 문장 단위로 정확하게 말했다. 어눌하지도 않았다.

로봇은 종사자들의 업무를 덜어줬다. 이영훈 마인드로 연구원은 “데이케어센터에 오시는 어르신 중엔 치매 증상을 겪는 분이 더러 계시다”며 “이분들이 갑자기 외부로 나가려 돌출행동을 하거나 기초적인 집중력 저하를 보일 때 인공지능 로봇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치매가 없는 노인들도 이 작은 로봇과 대화하길 즐겼다. 로봇이 웃으면 따라 웃고, 로봇의 바지가 흘러내렸다며 다시 입혀줬다. “‘고향역’ 노래 불러봐” “나 호랑이띠인데 오늘 운수 좀 봐줘” 하며 서비스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을 ‘소셜 로봇’이라 부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신시아 브리질 교수는 “소셜 로봇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로봇, 사회성을 띤 로봇”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처럼 소통할 수 있는, 인간처럼 사회적으로 지능이 있는 로봇”이라고도 표현했다.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소셜 로봇’은 이미 여러 현장에서 보인다. 공항이나 호텔에선 사물인터넷 기능이 있는 ‘생활지원’ 로봇이, 일부 초등학교에선 외국어 학습을 돕는 ‘교육’ 로봇이, 서울스마트시티센터 등 공공장소에는 ‘안내’ 즉 접객 로봇이 활동 중이다.

..

소셜 로봇은 사용자와 환경을 인식하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합한 행위를 판단하고, 이를 학습해 사회적 행위를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리쿠’를 개발한 토룩(Torooc)의 전동수 대표는 인지능력, 표현능력, 판단능력이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소셜 로봇은 얼굴과 표정, 음성 등 소리뿐 아니라 자세를 인식한다. 눈 모양과 음성, 동작을 통해 자기 감정을 표현한다. 상대방 언행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언행을 기억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판단력’도 있다.

전 대표는 “리쿠 같은 소셜 로봇은 사람 인식, 음성 대화, 자율 행동 기능을 사용해 사람들과 감성적으로 소통한다”며 “아동과 노인에게 생길 수 있는 교육 공백,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 치유, 안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서비스를 하는 소셜 로봇은 특별히 ‘사회적 보조 로봇’(SARS)이라 부른다. 신현미 마인드로 대표는 “SARS는 노인이나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정서적 지원을 한다”며 “다양한 인식단과 함께 동작, 눈맞춤, 눈빛, 음성 등 사람과 유사한 표현단을 가진 소셜 로봇이 이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셜 로봇에 익숙해지는 데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자체 예산으로 400명의 홀몸노인에게 인공지능 반려로봇을 보급한 한 담당자는 “반려로봇을 통해 투약시간을 알리고 긴급상황에 구조요청을 받는 등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로봇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선 종로구, 마포구가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고위험군 홀몸 어르신과 장애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관악구는 서비스를 종료했다.

서울디지털재단 강윤경 선임은 “미래 사회에 인공지능 로봇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며 “어르신과 어린이, 복지 현장의 종사자들이 로봇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 더 널리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리가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리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일으키는 인공지능 로봇을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로 들여보내면 ‘복지기술’이 된다. 그들에게 어떤 자리를 줄 것인가? 결정하는 건 우리 인간의 몫이다. <끝>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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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소셜 로봇의 미래>(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19년),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국내 복지기술 동향 분석>(한국융합학회논문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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