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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빌라, 아파트처럼 관리하니 동네가 달라졌어요”

구, 직영 권역별 ‘빌라관리사무소 사업’ 전국에서 최초로 추진
3월부터 번1동서 시범 운영…청소와 생활안전 순찰 등 맡아

등록 : 2023-05-25 15:50 수정 : 2023-05-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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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받으면 바로 조치한 뒤 구청에 연계해 처리”

빌라 68개 동 694가구 참여한 시범사업

매니저 3명, 명절 빼고 연중무휴 관리

2025년 미아·수유 등 권역별 운영 목표

“‘빌라 관리 표준 모델’로 확대해나갈 것”

강북구가 소규모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빌라관리사무소 사업을 추진 중이다. 6~10개 통을 묶어 관리소와 매니저를 두고 아파트처럼 청소, 순찰, 공용시설 보수 등의 관리가 이뤄진다. 시범구역 번1동의 소규모 공동주택 68개 동이 참여해 3월부터 매니저 3명이 근무하고 있다. 5월17일 이순희 강북구청장이 번1동 샛강어린이공원에 들어선 빌라관리소 번동점 앞에서 참여주택 현판을 보여주고 있다.

‘빌라관리소 매니저.’

심상수(64)씨와 한상목(59)씨가 입은 노란 조끼 위 회색 명찰에 적힌 직함이다. 이들은 강북구가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빌라관리사무소 사업의 1호 관리인이다. 빌라관리사무소는 소규모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이순희 강북구청장의 공약 사업이다. 구 직영으로 6~10개 통을 묶어 관리소와 매니저를 두고 ‘아파트처럼’ 청소, 생활안전 순찰, 공용시설보수, 주차 등의 관리가 이뤄진다.


빌라관리사무소 사업은 지난 3월6일부터 번1동에서 시범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동네 공원(샛강어린이공원) 한편에 소형 컨테이너를 설치해 공간을 마련했다. 매니저 3명은 1월 기간제 근로자 공개채용에서 서류 면접과 인터뷰를 거쳐 27명의 신청자 가운데 뽑혔다. 이들은 명절을 뺀 연중무휴로 평일 2명 2교대, 주말 1명 전담으로 근무한다.

심씨와 한씨는 평일에 각각 오전과 오후 5시간씩 나눠 일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청소와 순찰, 공동주택 지원사업 연계 등을 해오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과 만난 두 사람은 70여 일 동안 겪은 기분 좋은 변화를 알렸다.

매니저들은 사업 참여주택 주변과 이면도로, 골목길을 두 번씩 돌며 청소한다. 특히 쓰레기 무단투기가 잦은 곳을 자주 청소하고 신속하게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네를 청소하면 종량제봉투 50ℓ짜리 2장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쓰레기양이 많았다. 심씨는 “동네가 깨끗해지자 함부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줄었다”며 “이제는 종량제봉투 50ℓ짜리 한 장도 다 차지 않는다”고 했다.

평일 오전 담당 심상수 매니저가 세발자전거에 청소용구를 싣고 동네를 돌고 있다.

공용시설물의 상태를 점검해 처리하고 민원을 구청 담당자들과 연계해 해결하기도 한다. 빌라 주변 배수구가 파손돼 있다는 민원을 받고 바로 안전조치를 한 뒤 구청 도로과로 민원을 연계했다. 주민들에게 공동주택 지원사업을 안내하고 컨설팅도 해, 외벽이나 주차장 등 시설 보수(비용) 지원이 이뤄졌다.

매니저들을 알아보고 눈인사, 고개인사를 하는 주민도 늘었다. 한씨는 “처음에는 어디서 나왔냐고 따지듯 묻던 주민도 있었는데, 이제는 만나는 주민마다 ‘덕분에 동네가 달라졌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해줘 기분이 좋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역에 도움되는 일을 해 뿌듯하다”며 “내년, 후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달여 시범운영을 한 뒤 빌라관리소 번동점은 지난 19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개소식에 참석한 주민들은 빌라관리소 운영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성우임마누엘빌라입주자 대표인 이봉길(65)씨는 “전엔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음식물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어 시시티브이(CCTV)를 달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며 “매니저들이 활동하면서 거리와 골목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고 상습적인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씨가 사는 빌라는 얼마 전 공동주택 지원사업을 받아 누수 문제가 있었던 외벽의 방수공사를 마쳤다. 이씨는 “구청과 바로 연결해 불편한 점을 해결해줘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한 주민은 “쓰레기와 담배꽁초 문제로 이웃과 싸움이 잦아 이사 갈 생각을 했다가 빌라관리소가 생기면서 동네가 달라져 이제는 (이사할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심상수 매니저가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종량제봉투에 넣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 하는 사업이다 보니 강북구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자세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 추진 근거 마련과 사업 구체화 과정을 거쳤다. ‘강북구 공동주택 관리 조례’를 개정해 의무관리대상(300가구 이상, 150가구 이상으로 승강기 설치 또는 중앙집중식 난방 공동주택, 주상복합 건물 등)에 속하지 않는 공동주택을 임의관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별도의 관리소 설치뿐만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에 대해 예산 범위 안에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문구도 넣었다.

개정된 조례 내용은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해 12월30일부터 적용했다. 임의관리 대상 공동주택도 안전 점검과 관리 등에 구청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공동주택 관리팀이 앞서 세운 4개년 기본계획의 실행에 나섰다. 올해 시범사업 예산 7800만원은 100% 구비로 마련했다.

주민 의견은 설문조사, 설명회 등을 진행해 들었다.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사업 대상 공동주택 주민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가장 불편한 사항으로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을 꼽았고, 86%가 시범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청소에 이어 빌라관리소에 기대하는 역할은 공용시설 보수 지원, 공동주택 시책 사업 홍보, 주차 등 안전관리 순으로 답했다.

빌라관리소 홍보물.

지난 1월에는 시범구역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권태형 주택과장은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니 요구가 다양해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설문조사와 주민설명회에서 파악한 관리실태와 주민 불편과 요구 사항 등을 토대로 사업 추진 방향을 정했다”고 했다.

시범구역은 번동 458~463, 472번지 일대 6개 통으로 빌라 68개 동 694가구가 참여한다. 97%가 20가구 미만이고 사용 연수가 20년 넘어 노후화된 소규모 공동주택들이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걸어 10여분 거리라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거주지고, 젊은층 1인가구가 많이 사는 오피스텔도 있다. 정소연 공동주택관리팀장은 “번1동은 구청에서 가깝게 있어 관리현황을 자주 파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빌라관리소는 2천여 건의 서비스를 했다. 80% 이상이 폐기물 배출소 관리이고 이면도로와 골목길 청소를 주로 했다. 안전 저해 요인 사전 발굴과 구청 담당과 연계(공원 바닥 파손, 빌라 주변 배수구 파손 등), 공동주택 지원사업(외벽·옥상 방수, 주차장 보수) 등도 진행했다. 권태형 과장은 “매니저들이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주민 인식 개선과 우범지대 관리 등의 부수적인 성과도 있었다”며 “저예산으로 주민 만족도가 높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참여 주택 모집 부분은 아쉬운 점이다. 현재 참여율은 70% 정도다. 사전 파악했던 86% 참여 의향보다 낮다. 재개발·재건축을 고려해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적인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공동주택별로 사업 참여에 필요한 주민 동의 50%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점이다. 입주자 대표가 구성돼 있지 않은 공동주택에서는 애로가 더 많았다. 정소연 팀장은 “핸드폰 문자 등 신청방식을 다양화하고 대표자가 먼저 신청한 뒤 주민 동의를 보완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빌라관리소 번동점의 정식 개소식이 열렸다. 강북구의 이순희 구청장과 구의원, 주민 등 70여 명이 행사에 함께했다. 행사는 추진 과정과 두 달 동안의 운영 성과, 관리소 오픈(사진), 매니저 소개 등의 순서로 진행했다. 강북구 제공

개소식에 앞서 17일 빌라관리소 번동점을 잠시 찾은 이순희 구청장은 지역 변화에 매우 뿌듯해했다. 시범구역을 평소 자주 지나다닌다는 이 구청장은 “이전에는 여기저기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동네 분위기가 어둡고 침침했었다”며 “빌라관리소가 생기면서 눈에 띄게 깨끗하고 밝아져 참 보기 좋다”고 했다.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하는 주민도 있다고 한다. “주거지 공용부분 하자 보수와 관리는 자치구의 의무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라며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좀 더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게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이 구청장은 덧붙였다.

4개년 계획에 따르면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강북구 전역으로 빌라관리사무소를 설치한다. 우선 내년에는 사업지역을 현재 번동의 6개 통에서 10개 통으로 늘린다.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2025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미아동, 수유동 등 권역별로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이 구청장은 “이번 시범사업은 소규모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표준 모델을 만들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며 “관리지역을 점차 확대하며 구민 의견을 모아 내실 있게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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