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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과 지자체 ‘연결 고리’ 주민자치회 꼭 필요해요”

등록 : 2023-03-30 14:54 수정 : 2023-03-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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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가산동 주민자치회 류은무 회장(왼쪽), 진정희 지밸리자원개발분과장(가운데), 김종범 사무국장이 22일 주민자치회 사무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 분과장이 든 것은 지난해 11월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받은 주민자치분야 행정안전부 장관상장이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가산동 주민자치회, 지난해 전국주민자치박람회서 행안부장관상

마을방송국과 온라인마을기록관 운영, 5년마다 중장기 계획 세워

금천구 가산동 주민자치회가 지난해 11월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주민자치분야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았다.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가산동’을 주제로 박람회에 참가했다. 옛 구로공단의 근대화 산업유산과 역사를 알리는 ‘가산마을방송국’, 마을역사기록을 취합하고 보존·관리하는 ‘온라인 마을기록관’, 중장기 자치계획 수립 등이 대표적인 활동 사례다.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 자원 발굴에서 끝나지 않고, 마을방송국을 통해 역사를 알리고 마을의 근대화 산업유산을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해 온라인기록관을 운영한 것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금천구 가산동은 역동적인 곳이다. 1인가구, 젊은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가산동에는 1만7400여 가구에 2만3900여명이 사는데, 전체 가구 중 75%인 1만3100여가구가 1인가구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지밸리 2·3단지)가 있는 가산동에는 기업체 2만4500여 개가 있다. 금천구 전체 기업체 4만7300여 개의 절반이 가산동에 몰려 있다. 금천구 기업체 종사자 26만2천여 명 중 70%인 18만6천여 명의 일터가 가산동에 있는 셈이다. 가산동에 거주하는 20대와 30대는 1만3천여 명으로 가산동 주민의 절반이 넘는다. 노후주택은 줄어드는 반면 원룸과 오피스텔은 나날이 늘어난다.

가산동 주민자치회 관계자들이 가산마을방송국에서 신나게 방송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민이 대표 조직을 만들어 지역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죠.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서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연결 고리 역할이 필요합니다.”

류은무(75) 금천구 가산동 주민자치회장은 22일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직접 마을문제를 발굴하고 제안받아 주민총회에서 결정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라며 “지방자치를 촉진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2017년 서울시가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특히 금천구는 전국에서 최초로 구 내 10개 모든 동이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운영한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의 대표 조직으로 지역주민이 지역 문제를 발굴하고 공론과 총회를 통해 마을 의제(사업)를 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사업을 마을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해 펼쳐간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해 주민이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쓰는 ‘주민 조직’이다.

가산동 주민들이 2021년 6월 마을기록가 양성과정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 제공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여느 주민자치회와 달리 5년마다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운영한다. 2021~2025년에는 자치회관이 있는 마을, 다양한 주제의 축제가 있는 마을, 공원과 녹지가 많고 쓰레기가 없는 마을, 인도가 없는 구간이 많아 위험한 도로에 보행로를 만들어 아이들이 안전한 마을, 아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을 누리는 마을, 중장년·청년 고립가구나 빈곤가구와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을, 지(G)밸리 기업과 상생하는 마을 등이 목표다. 류 회장은 “5년 계획을 미리 수립해 운영하는 곳은 가산동뿐”이라며 “지속적으로 체계적인 주민자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동 단위 조직에서 흔치 않게 2020년부터 ‘방송국’을 운영해오고 있다. “가산동을 알리는 다양한 홍보활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죠.” 가산동 주민자치회가 운영하는 가산마을방송국은 유튜브, 팟빵 등 채널을 통해 방송한다. “마을미디어활동가를 양성해 방송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편집해요.” 가산동 소식을 알리는 ‘가산동수다방’, 수수께끼나 동시 제목을 맞히는 키즈 탐험 동심 세계,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용가산의 이야기 마을’ 등 마을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양한 방송을 한다. 이와 함께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2021년 3월부터 마을기록관 구축을 목표로 온라인마을기록관을 운영하며 마을기록가를 양성하고 있다. 역사적인 가산동의 산업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해갈 계획이다. 가산마을방송을 운영하는 진정희(61) 가산동 주민자치회 지밸리자원개발분과장은 “가산동과 주민자치회를 널리 알리고 사람과 마을을 이어 마을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2021년 ‘금천형 주민자치회’ 전환…올해부터 예산 직접 짜고 집행

가산동 주민들이 지난해 10월 마을축제를 열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 제공

주민 중 1인가구 75%, 20·30대가 절반

G밸리기업·젊은층 상생 협력 강화

“다양한 모임, 마을배움터 만들 것”

“지난 한 해 동안 금천구에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죠.”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가산동’ 활동 외에도 지난해 다양한 일을 했다. 2021년부터 주제를 달리한 축제와 마을장터를 연다. 이때는 지밸리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주민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한다. 지난해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이 컸으나, 지밸리에 입주한 기업의 도움으로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진 분과장은 “주민들의 사정을 들은 엘지(LG)전자연구소가 선뜻 앞마당을 내어줘 축제와 마을장터를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지밸리자원개발분과는 다른 동 주민자치회에는 없는 가산동 주민자치회만의 독특한 조직이다. 지밸리와 젊은 직장인이 많은 가산동의 특징을 반영한 조직이다.

“지밸리와 상생하는 다양한 사업을 하며 서로 윈윈하는 활동을 합니다.” 진 분과장은 “주민과 직장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지역문제도 함께 고민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김장 나눔 행사 모습. 가산동 주민자치회 제공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인도 설치’를 꼽았다. “인도가 없어 아이들과 주민이 통행하는 데 위험했죠. 안전을 위해 인도가 꼭 필요했습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주민참여예산 1억2천만원을 확보해 2020년 가산로5길 입구에서 금천구립가산도서관까지 약 200m 도로에 인도를 설치했다. 김종범(60) 가산동 주민자치회 사무국장은 “처음 제안했을 때는 홍보 부족으로 선정되지 못했는데 이듬해 다시 도전해 선정됐다”며 “지금은 가산동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주민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통행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금천구와 함께 마을환경 강사단 ‘에코미’ 양성 사업도 진행했다. 에코미는 탄소중립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쓰레기 재활용과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준다.

가산동 주민들이 지난해 7월15일 주민총회를 열었다. 가산동 주민자치회 제공

금천구는 주민자치회를 2021년 7월부터 ‘금천형 주민자치회’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 금천구 내 주민자치회는 직접 예산을 짜고 집행한다. 금천구가 각 동과 ‘자치회관(주민자치회) 운영사무 위수탁 업무 협약’을 맺은 결과다. 주민자치회는 지난해까지 시비와 구비로 운영됐지만, 올해부터 시의 지원이 끊겨 전액 구비로 운영한다.

금천구는 이를 주민자치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김 사무국장은 “주민자치회 사무국에서 필요한 인력을 직접 채용할 수 있고, 주민자치기금은 이알피(ERP)시스템을 도입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주민자치회에 대한 주민 참여가 많지 않죠.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교류하며 주민자치회를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가산동 주민 가운데 지난해 주민총회에 참가한 이는 900여 명이다.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는 800여 명씩 참여한다. 주민자치회 사업이나 프로그램에는 연 4200여 명이 참여한다. 김 사무국장은 “가산동 주민 절반이 넘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라며 “학부모와 함께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모임도 만들어 마을배움터로 발전하는 주민자치회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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