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골목계단 영화제, 한여름밤 이웃 간 정을 선사했다

동작구 상도4동 해 저문 골목길에서 열린 '배리어프리 영화제'

등록 : 2016-08-11 14:33 수정 : 2016-08-12 11:27
도시재생은 상도4동 골목 계단에서도 이뤄진다. 지난 5일 저녁 동네 주민들이 골목 계단에 앉아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일 저녁, 동작구 상도4동에서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골목길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동네 주민들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다세대주택과 어린이집이 마주하고 있는 좁은 골목 계단. 계단에 임시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해 저문 골목 계단은 어느새 그럴듯한 영화관으로 변신했다. 푹신한 의자도 에어컨도 팝콘도 없었다. 대신 관람객들은 휴대용 방석을 깔고 부채를 손에 쥐었다. 추억의 마카로니 강냉이가 팝콘의 빈자리를 채웠다.

“아, 그러고 보니 화장실은 어떻게 간댜?”

“저희 집이라도….”

“하하하.”

전국적으로 불쾌지수가 80을 넘긴 날이었지만 이 골목만은 예외인 듯했다. 좁은 계단에 80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화를 즐겼다.

골목계단 영화제는 주민들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마련한 상도4동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다. 영화 관람이 불편했던 어르신과 장애인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과 자막을 더한 ‘배리어 프리(장벽 없는)’ 영화로 상영했다.


이번 영화제는 동작구 평생학습동아리 ‘비컴 스트롱’이 상도4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에 제안해 실현되었다. 비컴 스트롱의 대표 정형빈(33) 씨는 “상도동에 3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지만, 주위에 어떤 이웃들이 사는지 모른다. 적어도 내가 사는 골목만이라도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해서 골목계단 영화제를 기획했다”며 영화제의 취지를 설명했다. 영화제는 앞으로 9월 초까지 두 번 더 진행될 예정으로, 영상 장비를 빌리고 휴대용 방석 등 필요한 물품을 사는 데 구 예산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인근 농아원에 있는 청각장애 아이들과 함께 보기 위해 배리어 프리 영화를 선택했지만, 장애뿐 아니라 이웃 간 소통의 벽도 허물어지길 바라는 뜻이 있었다. “인근 주민들의 양해가 필요한 행사라서 한분 한분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했다. 그런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동네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너무 좋다”며 흐뭇해했다.

이웃 간의 정을 느끼기는 영화를 즐기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계단에 앉아 영화를 보던 윤명석(38) 씨는 “결혼해서 2년 정도 이 동네에 살았는데 오늘 같은 기회가 아니었으면 이웃들 얼굴도 모르고 살 뻔했다”며 웃었다.

올해 주민공모를 통해 상도4동 도시재생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은 모두 세 개다. 골목계단 영화제에 이어 9월 상상플리마켓, 10월 성대골 다누리마을축제가 예정되어 있다.

상도4동은 2014년 말 서울 서남권의 유일한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되어 ‘함께 사는 골목 동네’를 목표로 도시재생을 추진해왔다. 동작구 도시재생과 조은정 씨는 “처음 도시재생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민들이 주로 ‘쓰레기를 치워 달라’는 요구를 많이 해왔는데, 지금은 ‘우리가 쓰레기를 치우자’는 식으로 주민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고 있다”며 상도4동의 변화를 설명했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