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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집수리기사, 집수리 서비스의 품격을 높이다

등록 : 2020-07-02 16:14 수정 : 2021-01-22 17:15
여성 주택수리기사 방문 서비스 ‘라이커스’ 이야기

여성 1인가구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큰 호응

라이커스 신입사원인 수리기사 카일이 몽키스패너와 첼라를 들었다. “욕실 수전 교체와 배관 점검은 자주 받는 수리 요청이거든요. 조명·경첩·손잡이 교체 등도 마찬가지죠.” 6월26일 오후 기자 집을 찾은 라이커스 대표 마치가 옆에서 설명했다. 보통 수리 시간이 20여 분이라면 고장 원인과 관리법 설명까지 두 배의 시간을 쓴다. 이는 ‘집 관리 컨설팅’에 가까웠다.

‘서울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발…창업 7개월 차 스타트업

반년 가까이 집중 교육 받은 뒤에 활동

‘성 고정관념 개선’ 넘어 서비스 질 개선

“여성 건설노동자 저변 확대 기여할 것”

‘여성 수리기사분들이 인터폰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나고 안심이 됐습니다.’


‘혼자 사냐, 남친 있냐, 불필요한 사생활 정보를 묻지 않아 만족했어요.’

‘갓난아이를 키우는 집인데, 수리를 전적으로 맡기고 아이를 볼 수 있어 너무나 편했습니다.’

여성 주택수리기사 방문 서비스 ‘라이커스’(Like-Us)에 전달된 후기다. 살다보면 집은 망가진다. 출장수리가 필요하다. 때마다 1인가구 여성들은 생각이 깊어진다. 괜찮을까?

30대 여성으로 구성된 ‘라이커스’는 이런 불편함에 곧장 해답을 던졌다. 우리가 직접 수리기술자가 돼 여성 고객들을 찾아가자. 지난해 11월, 정식 사업을 시작하기 전 온라인으로 모집한 체험단 신청란에는 이틀 만에 여성 고객 98명이 몰렸다. 생각이 통한 것이다.

6월22일과 26일, 라이커스 대표 마치(안형선), 이사 소피(이소연), 수리기사 카일(남혜림)을 만나 여성 주택수리기사의 세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집을 고치는데, 왜 신변을 걱정해야 하지?”

라이커스는 여성의 직업 선택권을 넓히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젠더프리 브랜드 메이커’ 왕왕(Wang Wang)의 한 브랜드다. 일자리에 대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고, 여성들의 안전한 주거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했다.

‘훈련받은 여성 수리기사들이 여성 가구들을 방문해 집을 고쳐주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발된 뒤 반년 가까이 집중 교육을 받았다. 창업 7개월 차 맞은 스타트업이지만, 창업자인 대표 마치와 이사 소피는 시에서 제공한 멘토의 정신적 지지와 현장 감각으로 빠르게 사업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치의 말이다.

“공대를 나와 중량화물을 취급하는 물류회사에 취업했는데, 면접 때부터 ‘뽑아 놓으면 결혼한 뒤 퇴직할 거야?’ 유의 불필요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일할 때도 종종 배제와 차별을 겪었고요. 어릴 때부터 유독 공구함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던 성격이었어요. 내가 창업하면 이런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다가, 퇴사 뒤 뜻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 거죠.”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부산의 중고가구 매매 중 1인가구 여성 살해사건 등, 여성 주거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때였다. 마침 경력 단절 여성들이 마트 서비스직 등 단순노동으로 빠지는 모습이나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차별당하는 현장을 목격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소피를 만났다.

“전부터 ‘선배’를 찾기 힘든 여성 건설노동자들 근무환경에 의문이 있었어요. 사업 구상 때 대표님과 용접 명장인 한국폴리텍대학 박은혜 교수님을 찾아간 적 있었죠. 여성 명장 1호세요. 이렇게 기술과 관련된 여성분들을 일일이 수색해 찾아뵈며 사업의 가설을 검증해나갔죠.”

왕왕은 주택수리 브랜드 ‘라이커스’뿐만 아니라 ‘비저블로’(Visiblo)라는 여성 물류 서비스도 운영한다.


‘4개 원칙’으로 업종 ‘토질 개선’ 꿈꿔

그렇다고 단순히 ‘남성 기술자 자리를 여성으로 대체하는’ 사업이라 판단한다면 성급하다. 라이커스가 품은 소명은 ‘주택 방문수리 업계 토질 개선’에 보다 가깝다. 마치의 말이다.

“조사하고 고민한 결과, 기존 주택수리기사 방문 서비스가 가진 불편함이 컸습니다. 일단 현장에 나가면 명확한 수리 정찰제가 아니라 ‘현금 박치기’를 선호한다는 것, 사생활을 들추는 불필요한 대화가 만연한다는 것, 내가 사는 집임에도 집수리 과정을 친절히 안내받지 못한다는 것, 수리 전 견적서 제공과 수리 보증기간 기준이 없다는 것 등등….”

이 불편함은 ‘라이커스’가 주창하는 수리 원칙으로 고스란히 연결됐다.

특히 주택수리비용이 기분과 상황 따라 변하면 안 된다는 ‘제1원칙’이 도리어 2030 여성에게 신뢰를 줬다. ‘내가 잘 몰라서 덤터기 쓰는 것 아냐?’ 같은 불안도 없애고, 부품·시공·출장비가 고스란히 남은 영수증과 수리견적서 속 ‘집 정보’는 재계약 협상 등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기초자료로 왕왕 사용됐기 때문이다.

“월세든 전세든 자가든 저희는 ‘내가 사는 집의 히스토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게 건물 자체의 문제인지, 나의 사용상의 문제인지, 노후화 때문인지, 부품 때문인지. 물이 샌다면 원인이 무엇이고 관리법이 무엇인지. 내 집에 대해 두루 꿰는 건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당히 중요하니까요.” 소피가 덧붙였다.

‘무례한 대화’의 범위를 고찰한 것도 여성 고객의 ‘니즈’와 정확히 맞닿았다. “집이 아담하네요. 혼자 사시나요?” 무심코 던지는 말도 ‘간섭’이 될 수 있는 시대다.


마치와 카일이 부엌장 철거 의뢰를 받은 다음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어느 날 20대 여성 네 분이 사는 집에서 말씀하시길, 집수리를 요청했더니 기술자분이 ‘아가씨들이 아가씨다운 맛이 없다고 집주인에게 불평’했답니다. 세입자로서 집주인 타박을 듣고 억울했는데, 저희를 만나고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음을 깨달은 사례도 있고요.(웃음)”

이런 생활밀착적 고충을 집어낸 건 두 대표의 ‘자취 경력’과 ‘1인가구 경력’ 덕이다. 마치는 19살 대학 입시를 앞두고 독립해 13년 자취 경력을, 소피는 17살에 서울에 있는 예고 입학을 위해 상경하며 19년 가까운 1인가구 경력을 가졌다.

“집주인과 신경전은 물론이고, 집수리 때마다 원치 않는 사생활 관련 질문으로 피로했거든요. 요즘은 방문 가정 반려동물에 대한 대화도 어쩌면 실례예요. 대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상관없지만, 대부분은 묵묵히 집수리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십니다.”


“강남 사옥 포부, 건설현장 여성 배제 깰 것”

최근 라이커스가 힘을 쏟는 건 ‘데이터베이스 누적’이다. 몸에 현장감이 남아 있을 때 수리 과정, 부품과 견적, 고객의 요청과 반응 등을 모바일 메신저로 작성해 ‘센터’로 곧장 보낸다.

빼곡하게 쌓은 데이터베이스는 지속가능한 ‘동력’이자 연장만큼 귀한 ‘자산’이다. 보통 도제 방식이나 인맥으로 알음알음 대물림하는 교육이 업계 통상이라면, 라이커스는 ‘정갈한 수치화’로 관습을 깨보기로 한 것이다.

“여성 신입사원들을 ‘빠르게 견인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죠. 수리산업에선 경험이 자산인데, 2030세대 고객들 집수리 과정에서 저희가 직접 얻은 데이터로 신입사원을 교육할 거예요. 그럼 성장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업계 여성이 늘어나는 속도도 빨라지겠죠.” 마치가 말을 이었다.

“건설노동 현장 속 여성인력이 없는 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주는 비전이 ‘실패할 권리’와 ‘경험’인 이유예요. 예로 20~30년 일한 여성 도배공이 말하길, 인력사무소 가면 남성들 먼저 팀을 꾸리는 게 야속했답니다. 남자는 가장이라 수입을 몰아줘야 한다면서요. 여성분들도 가장인 경우가 있는데 계속 밀려나가다 결국 경험을 쌓지 못한 채 손을 놓는 거예요. 근데 20~30년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게 문제죠.”

라이커스는 앞으로 타일·도배·장판 등 리모델링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중기적 목표다. 기능사들을 채용해 협업해나가고자 지금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럼 장기적 목표는? ‘건설’이다. 마치가 말했다. “강남에 사옥을 세우고 싶어요. (웃음) 두 가지 의미예요. 하나는 경영 성과가 정말 좋아서 부지를 마련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성과를 이루고 싶다는 것. 다른 하나는 준공식·착공식 같은 건설현장에서 안전모를 쓴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다수 모여 사진 찍어보자는 것.”

소피가 덧붙였다. “여전히 건설현장에 만연한 여성 대상화 발언, 이력서가 아니라 인맥으로 돌아가는 일자리 등. 여성노동자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어요.”

갈 길이 멀다. 많은 스타트업이 21세기 트렌드에 맞춰 플랫폼 사업을 꾸릴 때, 직접 채용과 노동집약적 산업을 고집한다는 ‘시대역행’의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개척하고 지속해나가는 ‘엔진’이 있을 터다. 뭘까. 마치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동료들이죠. ‘우리 잘하고 있어!’ 하며, 같은 곳을 보는 동료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