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공사 중에 천 보자기가 나왔어요.”
2009년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의 해체·복원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에게 공사 중에 나온 한 뭉치의 물건을 건넸다. 하나씩 뭉치에 싸인 종이와 천 보자기를 풀어보니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는 태극 문양 태극기(사진)였다. 같이 나온 종이에는 1919년 11월27일치 <독립신문>의 제호가 선명했다. 이 태극기는 독립운동하며 1920~30년대 진관사에 머물렀던 백초월 스님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몰래 숨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백초월 스님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혐의로 수차례 옥고를 치른 항일지사다. 진관사를 방문할 때마다 늘 백초월 스님의 항일 정신을 떠올린다.
독립운동은 어떤 국가 또는 세력의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는 지역에서 자치권 등의 권한을 얻거나, 자신의 국가 또는 세력을 세우기 위해 벌이는 모든 행위이다. 한국의 경우 1919년 1월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 기초조건으로 발표한 14개 조 가운데 ‘민족자결’ 조항이 한국인에게 독립의 가능성을 믿게 했다. 이것은 3·1 운동이라는 민족항쟁을 폭발시킨 정신적 동기가 되었다.
올해 민족적인 정기를 바로잡았던 3·1 운동은 101주년을 맞는다. 3·1 운동에서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의 의사를 표했던 그 정신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올곧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은평구 숭실고 학생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숭실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2.5㎞ 떨어진 은평평화공원까지 행진을 벌였다.
지난해 8월26일 은평구 숭실고 학생들이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숭실 평화 대행진’에 참가해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처 철회를 외쳤다. 은평구 제공
숭실고 학생들의 평화행진은 일본 정부에 경제보복 조처 철회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 강제징용 인정 등을 촉구하는 발걸음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삼창으로 시작한 행진은 무더운 날씨가 무색하리만큼 열정이 넘쳤다. 학생들의 발걸음을 도운 음악은 숭실고 선배인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가사로 삼은 힙합이었다. 학생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와 평화 공존을 요구하고 인권 유린과 전쟁범죄를 규탄했다. 또한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를 항의했다. 학생들은 과거 만행과 이웃 국가를 겨냥해 부당한 경제조처를 취하는 일본의 현재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00여 년 전 일본에 강제 합방을 당한 뒤, 수많은 민초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가운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나라 안과 밖에서 힘을 다해 독립을 찾기 위해 싸웠던 행동이 모여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정신이 국민 저변에 이어져 지난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제외 조처에 잘 대처해 오히려 반도체 중심의 우리 경제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처가 됐다.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 일본에 강점당한 조국의 현실에서 우리 민족에게 향하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 의미는 현재에도 계속된다. 숭실고 학생들의 일본을 반대하는 평화 대행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진관사에서 나온 항일 정신을 담은 태극기에서도 새길 수 있다. 3·1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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