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상가 누수에 성났던 임대·임차인, 전문가 조정에 고개 ‘끄덕끄덕’

누수 분쟁 현장 ‘출동’해 갈등 해결하는 서울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등록 : 2019-10-17 15:16
변호사·건축사·공무원 등 전문가 구성

현장조사 등 거친 뒤 원만한 조정 권고

‘임대인 책임부담 범위’ 여부 정확 진단

“전문적 판단, 분쟁 예방·해결에 도움”

지난달 마포구의 한 건물에서 누수 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와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사팀이 현장에 나가 누수 발생 지점을 살펴본 뒤 분쟁 당사자들을 면담하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윤예림(변호사) 분쟁조정위원, 황규현·서혜진 서울시청 공정경제과 주무관, 나권희(건축사) 분쟁조정위원.
건물 1층 천장의 누수 지점.

한 상가건물에 변호사와 건축사, 서울시 공무원이 모였다. 이들은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과 서울시청 주무 부서인 공정경제과 소속 직원들이다. 이들이 이 건물에 ‘출동’한 이유는 “세든 가게 천장에 비가 새는 통에 5년째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임차인과 누수 책임 소재를 가려달라는 임대인의 ‘분쟁 조정 신청’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1 지난 9월26일 오후 마포구 창전동

전문가와 담당 공무원으로 구성된 이들 조사팀은 현장에서 조정을 신청한 당사자로부터 신청 이유를 직접 듣고, 누수 발생 지점으로 추측되는 현장을 세밀히 점검했다. 이어 건물에 세든 임차인의 피해 상황도 청취했다. 조사팀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점검 결과와 관련 법규, 계약 내용 등을 종합해 공정하게 중재할 것을 공지하는 것으로 1시간여의 조사활동을 마쳤고, 임대인과 임차인들은 “분쟁조정위원회의 중립적인 판단과 객관적인 결과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누수 분쟁 사건에 대해 분쟁조정위원회는 일주일 뒤인 10월2일 조사 결과를 담은 권고문을 분쟁 당사자에게 보내 중재안에 따른 원만한 합의를 권고했다.

최근 들어 상가건물에서 물이 새는 통에 발생하는 누수 피해를 두고 임대인과 임차인, 또는 임차인 간의 갈등이 빈발해 서울시가 적극적인 중재활동을 벌이고 있다. 누수 피해를 둘러싼 분쟁 조정 신청 사건에 출동해 조사활동을 벌이고 중재를 권고하고 있는 기구는 서울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주로 임대차 계약 관련 분쟁 조정 활동을 하고 있지만, 누수 분쟁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조정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서울시 공정경제과 황규현 주무관은 “장마철과 태풍이 잦은 가을철에 누수 책임을 가려달라는 상담과 민원이 쇄도한다”며 “누수 피해는 당사자들끼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공정한 판단이 분쟁 예방과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앞에서 거론한 사례 1의 경우, 건물 1층에 세든 인테리어점 천장에 5년째 비가 새고 있는데 임대인은 2층 세입자가 입주하면서 벌인 부실공사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1, 2층 세입자들은 옥상에 설치된 하수관이 원인이라고 주장한 경우이다. 조사팀이 현장에 나가 확인한 결과, 2층 우수선 홈통 일부가 심하게 노후화되어 있고, 건물구조상 빗물이 2층 바닥으로 유입될 우려가 있었다. 조사팀은 건축물의 현재 상황과 노후 정도 등으로 판단할 때, 누수의 원인 규명 의무와 손해배상 등은 임차인보다 임대인의 책임 부담 범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사례는 임대인이 일부 피해 보상을 하는 대신 임차인은 사태 해결 즉시 퇴거하는 권고안을 양쪽이 모두 받아들인 경우다.

#2 지난 6월 영등포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지난 10년간 임대료를 증액하지 않았으므로 향후 재계약 때 임대료를 인상하겠다”고 하자 임차인이 “지난 10년간의 누수 시설공사비 225만원, 각종 피해 보상비 500만원 등 총 수천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조사 결과 임차인은 “그동안 건물의 노후화로 누수가 자주 발생해 이를 수리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임대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책임을 임대인에게 돌렸고, 임대인은 “누수에 따른 보수공사와 하수구 배관과 천장 공사 등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사팀은 관련 민법 법규에 따라 임차인이 지출한 시설공사비와 부실한 수선공사에 의한 재산 피해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피해보상금 750만원을 지급하고,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종료와 함께 퇴거하도록 권고해 조정이 이뤄졌다.

#3 지난 8월 용산구

임차인이 세든 2층 주방 천장에서 발생한 누수 책임을 가리는 경우. 현장 조사 결과, 누수 지점 부분의 마감 공사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건물구조도 비가 오면 2층 베란다에서 빗물이 안으로 새어드는 형태였다. 계약서상에도 누수 책임 부담에 대한 별도의 언급이 없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누수에 대한 책임 부담이 건물주인 임대인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사팀이 현장에 나가 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4 10월 중구

건물 4층에서 6층에 이르는 비상계단에 비가 새면서 누수 피해가 발생하자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조정을 신청했다. 조사 결과 비상계단이 설치된 옥상의 일부 시설 공사를 한 곳에 누수 발생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고, 현재의 비상계단은 전 임차인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는 이에 따라 해당 상가 4, 5, 6층의 누수 원인 규명 의무 등은 임대인의 책임 부담 범위에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누수 분쟁 조정은 전담공무원과 건축사, 변호사, 감정평가사 등으로 구성된 조사팀이 현장을 직접 방문해 누수 원인과 책임 소재를 판단해 원만한 해결을 권고하고 있다. 상가 누수 분쟁 중재는 임대인과 임차인 어느 쪽이든 신청할 수 있다. 서성만 서울시 노동민생정책관은 “조정위원회는 현장 점검과 관련자 직접 면담 등의 기술적 분석과 세밀한 법규 검토를 거쳐 누수 책임 소재와 책임 부담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자체 해결이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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