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쥐가 떨어져” 반지하 10년, 온갖 질병 앓는 미영이

등록 : 2019-08-16 10:30 수정 : 2019-08-16 23:16
전유안 객원기자 르포  방에서 병드는 아이들

5평에 4인 가족 자고 나면 “다들 머리가 아프대요”

지난 7일 폭염주의보가 내린 오후 4시께 은평구 응암동에서 김미영(10)양을 만났다. 유튜버가 꿈인 김양은 “방학이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 가는 날이 더 재밌다”고 했다. 김양은 묵은 곰팡이가 벽을 타고 내려온 5평 남짓한 이 방에서 여동생, 부모님과 같이 잔다.

“킁킁, 저는 유튜버가 되고 싶은데…, 킁킁.”

김미영(10·가명)양이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3초에 한 번씩 콧소리를 내며 콧물을 삼켰다.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 최경희(40)씨가 설명했다. “기관지가 안 좋아요. 곰팡이 때문 같아요. 언젠간 애가 코피를 흘리며 자다가 일어났어요. 병원에 갔죠. 방법이 없대요. 이사 가야 한다는데, 당장 그럴 수가 없어요.”

폭염, 지옥 같은 방에서 병드는 아이들


지난 7일 오후 4시께 김양의 4인 가족이 사는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 방에 들어갔다. 60㎡(약 18평) 크기 다세대가구,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딸린 노후 빌라다. 5평 남짓한 큰 방에만 작은 창문이 달렸다. 정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 주거 면적 14㎡(약 4.2평)보다 조금 큰 이 방에서 김양과 8살 여동생, 부모 4명이 잔다. 최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다들 머리가 아프다고 해요”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눈이 맵다. “애들은 머리 아프다고 화장실 잘 안 가요. 나라 지원으로 한 번, 사비로 두 번 도배를 했는데 똑같아요.” 10년 동안 살아온 집은 해마다 쥐가 대여섯 마리씩 나왔다. “밥상에 새끼 쥐가 뚝 떨어진 일”도 있었다. 김양은 집에서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조현병을 앓아 일을 못하는 최씨는 “빈집을 늘 알아보는데, 전세가 2억4천만원이에요. 전세자금대출 등을 받는다고 해도 5천만원이 모자랐어요. 얼마전 전세임대주택 대상자 선정이 됐는데 애들 아빠가 우리집 사정상 영구임대주택으로 가자고 해서 기다리고 있고, 애들은 조금 더 나은 곳에서 키우려고 청약도 부었는데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해 해약했어요. 이런 집이 관리비가 더 나가요.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요. 공과금 30만원과 4인 병원비, 생활비를 내면 빠듯해요” 하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외곽 공사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김양의 아버지가 수입이 있을 때는 한 달에 200만원도 버는데, 지난봄엔 일이 없어 쉬었다. 이에 대해 은평구 생활복지과 주거복지팀은 “미영이 가족 경우 영구임대주택 자격요건에도 해당된다. 하반기 영구임대주택 예비 공고되어 있는 바 적극 지원 예정”이라며 “주거취약가구와 밀착해 지원 범위를 확대해 가는 중”이라 말했다.

9일 오후 3시께 동대문구 제기동 서정희(13·가명)양이 사는 지하 방에 들어가니 사우나실이나 다름없다. 서양도 아동 주거빈곤 가구 대상자다. 지면에서 3m 정도 내려간 지하 공간은 입구부터 곰팡이와 동물 사체 냄새 등이 뒤섞여 올라왔다. 19.83㎡(약 6평) 남짓한 방에서 서양 자매와 어머니 김아무개(45)씨가 3년 동안 살았다. 깜빡이는 전등은 낡은 전기 배선 때문이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어머니 김씨가 말했다. “화장실이 없어 아이들이 깊은 밤에도 바깥으로 나가야 해요. 매일 불안하죠.”

실내 공기는 ‘유해가스’와 맞먹었다. 천장 가까이 구멍 같은 창문이 있지만 막았다. “술 취한 사람들이 방에 오줌을 누고 훔쳐봤어요. 큰딸이 성질을 내며 신문지를 창에 붙였어요. 애가 올해 중학생이 됐는데, 사춘기가 와서 이제 말을 안 들어요. 화장실 있는 집에 방 하나 마련해주는 게 소원이에요.” 서양은 집이 창피하다며 기자가 올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

김씨는 주민센터에서 자활근로로 청소를 하며 한 달에 120만원을 번다. “보증금 없는 집에 월세 35만원을 내고, 공과금 20만원 내고, 아이들 차비 좀 쥐여주고, 남은 돈으로 병원 빚 3천만원을 갚는 데 다 써요. 여름에 지하방은 아주 끔찍해요.”

‘방’이 흉기, 아동 최소주거기준에 ‘강제력’ 필요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 둘째 주까지 서울 아동 주거빈곤 가구로 분류된 8~12살 성장기 아동들 네 가구 방에 들어가보았다. 폭염이 닥친 방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8월에 만난 김양 자매는 ‘최소 주거 기준’ 이하로 분류된 집에서 10년을 살며 나란히 천식과 비염 같은 호흡기 질환, 감염성 질환인 장염을 앓았다. 더구나 김양은 어머니가 앓는 조현병이 초등학교 입학 무렵 발병했다. 서양은 빈혈을, 서양의 동생은 비염과 피부병을 앓았다.

어린이 열 명 중 한 명 방에서 병들어

서울 아동 주거빈곤율 14%

성장기 아동 주거 환경에 큰 영향

반지하 방 외부보다 온도 높아

습기와 곰팡이 많아 질병 악화돼

서정희양 방에 딸린 한 평짜리 부엌도 심한 악취와 묵은 곰팡이의 온상이었다.

성장기 아이들은 주거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낡은 집 내장재 등에서 유해물질이 나오고, 반지하나 지하 방은 온도가 외부보다 높아 습기와 곰팡이가 질병을 악화시킨다. 겉은 집인데 속은 길거리만 못하다. 김양의 어머니는 “물을 끓여 먹여도 애들이 배앓이를 하고 병이 들더라”며 의아해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폭염 속 지하·반지하 방에선 온열질환 등 질병이 심각할 정도로 발생한다. 천식 등 호흡기 질환과 직결된다는 외국 연구 사례가 이미 많다. 한국은 아직 주거환경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다룬 문헌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초록우산재단 관계자는“활동가들도 현장에서 직접 현실을 보면 ‘아직도 이런 집이 있냐’며 놀란다”며 “가정이 무너지면 최후의 보루로 집을 팔고, 반지하나 지하로 3~4인 가구가 들어 간다. 아이들은 병들고 부모들은 간호하느라 직업을 관두는 악순환”이라고 설명했다.

김양 가구는 영구임대주택을, 서양 가구는 전세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하지만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물량에 한정돼 있는데다가 아동 주거빈곤 가구는 국가 지원으로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임대주택 입주에 성공해도 이른바 ‘이중계약’ 부담을 안는 경우도 많다. 치솟는 서울 집값을 감당 못해 부족한 나머지는 집주인에게 월세로 내는 식이다. 단순히 새집만 구한다고 삶의 질이 나아지진 않는다. 지원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거나 임대주택에 들어가도 월세와 관리비 등을 부담할 수 없으면 다시 주거빈곤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윤영 복지사업본부장은 “비닐하우스, 지하방, 컨테이너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주거권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권인데,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아동 최소 주거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살 수 없게 하는 집행력과 강제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주거빈곤 아동 규모는 94만4천 명으로, 전체 아동 중 9.7%에 이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시·도별 아동 주거빈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 주거빈곤 아동 수는 23만3839명(14.2%)으로 1위다. 아동 주거빈곤 비율은 중랑구(21.1%), 중구(20.8%), 강북구(20.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운영해온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사업을 ‘주거 사다리 지원사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거빈곤 아이들부터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