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마을 17곳 모여 협동조합 결성 지원 없이 자립, 에너지도 자립

서대문구, 자치구 에너지자립마을협의회 첫 협동조합

등록 : 2019-05-09 16:11
에너지자립마을 17곳으로 최다

2년 전 협의회 만들고 매달 회의

최근 ‘빛과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시 지원 3년 끝난 뒤 자립 꾀해

최근 서대문구 에너지자립마을 17곳이 힘을 합쳐 ‘빛과에너지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지난 2일 오후 홍은1동 북한산호박골놀이터의 태양광 지붕 아래에 이진원 호박골마을 대표(왼쪽부터), 김영림 행복한마을 대표, 함윤숙 가재울마을 대표, 강은주 서대문구 주무관, 권해정 행복한마을 활동가가 모였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일 오후 서대문구 홍은1동 홍은중앙로7길로 접어들자 가파른 경사의 좁은 길이 북한산 자락까지 이어졌다. ‘호박골’이라는 마을 이름처럼 호박 모양의 등이 집집마다 달려 있었다.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 공급 없이 작동하는 이 등을 만든 사람은 이진원 호박골마을 대표다. 이 대표와 호박골마을 활동가들은 태양광 발전기로 정해둔 시간에 물을 자동으로 주는 ‘빛·물 발전소’도 만들어 마을 텃밭에 설치했다.

이 빛·물 발전소는 서대문구 남가좌1동 가재울초등학교 텃밭에도 설치돼 학생들이 신재생에너지를 체험하고 있다. 빛·물 발전소가 다른 곳으로 퍼질 수 있었던 건 2016년 4월 만들어진 ‘서대문구 에너지자립마을협의회’ 덕분이다. 서대문구에는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자치구에서 가장 많은 17개 에너지자립마을이 있다. 이들은 2년 전부터 매달 모여 에너지 현안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왔다.

남가좌1동 가재울마을의 함윤숙 대표는 “협의회에서 다른 마을의 활동을 공유하니까 시야가 넓어지고 ‘우리 마을로 끌고 오면 좋겠다’ 싶은 활동이 많았다”며 “혁신학교인 가재울초등학교와 함께 학생 대상 에너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호박골마을의 빛·물 발전소를 소개해 텃밭에 설치했는데, 학생은 물론이고 교육청 등에서도 반응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북가좌2동의 행복한마을은 주민 기부금으로 저소득 홀몸노인과 한부모 가정 등 7곳에 주택용 태양광 발전시설을 놓아드렸고, 불광천 ‘해담는다리’에는 공중전화부스를 재활용한 태양광 무료 휴대전화 충전소를 설치했다. 또 마을공동체 장터와 비전력 에너지 체육대회 등을 열어 마을 주민이 단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성과로 지난해 ‘서울시 도시재생 연계형 희망지’ 사업에 선정됐다. 김영림 행복한마을 대표는 “에너지자립마을은 서울시가 3년 동안 지원하는데, 우리 마을은 4년차로 이미 졸업한 셈이지만, 이대로 활동을 끝낼 게 아니라 후배 마을들이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 없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에너지자립마을협의회에 참가한 17개 마을은 최근 ‘빛과에너지 협동조합’(대표 이진원)을 설립했다. 에너지자립마을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든 건 서울 자치구 가운데 서대문구가 처음이다. 에너지자립마을 5년차인 호박골마을의 이진원 대표는 “3년이 지나 지원이 끝난 마을들은 아직 자립하기엔 좀 부족해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할 형편이다. 어려운 사람끼리 모여 난관을 함께 헤쳐나가는 게 협동조합 아닌가. 17개 마을이 각자 익힌 것을 협동조합으로 함께해서 자립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빛과에너지 협동조합은 먼저 마을에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에너지 효율화 관련 정보를 제공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주민 공감대를 이뤄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대문구 환경과 강은주 주무관은 “마을마다 잘하는 게 다르다. 가재울마을은 교육을 잘하고, 행복한마을은 홍보·캠페인을 잘한다. 호박골마을 이진원 대표님은 손재주가 워낙 좋으시다. 마을 텃밭에 물이 없으면 농작물이 마르는데, 시간 맞춰 물 주는 게 힘드니까 모아놓은 빗물을 활용해 태양광 전력으로 일정한 시간에 자동으로 뿌려주는 빛·물 발전소를 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었다. 이런 제품을 널리 보급하는 것도 협동조합의 목표”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유독 에너지자립마을이 많고 활성화된 이유에 대해 김영림 행복한마을 대표는 “에너지자립마을협의회와 구청 담당자의 꾸준한 지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매달 회의할 때마다 배우는 게 되게 많다. 선배 마을이 후배 마을에 노하우를 알려준다든지 이끌어준다. 또 협의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서대문구 강은주 주무관이 계속 지원해줬다. ‘주민끼리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지 않고 관이 밀어준 덕분에 협의회가 활성화되고 협동조합까지 만들게 된 것 같다.” 강 주무관은 “유지보수(AS) 기간이 보통 5년인 태양광 사업이 5년차에 접어들면서 유지보수가 관건이 될 것이다. 협동조합은 마을마다 있는 기술자들이 이웃 마을을 지속해서 봐줄 수 있다. 이웃 마을의 아는 주민이 설치하고 관리하는 협동조합이 다른 업체보다 더 믿음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홍제천 폭포마당 일대에서 열린 ‘제12회 서대문구 어린이축제’에서 빛과에너지 협동조합의 17개 마을은 신재생에너지 체험 행사 등을 함께 운영했다. 오는 18일 호박골마을에서 열리는 ‘별빛캠프’는 호박골마을의 자체 사업이지만 나머지 16개 마을도 자기 일처럼 참여할 예정이다. 40~50명의 아이와 아빠들은 스마트폰 없이 별을 관측하며 호박골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