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면 요리가 더 쉬워진다

음식 만들기 고양시 주부들의 모임 ‘공동부엌’ 현장

등록 : 2016-05-26 15:21 수정 : 2016-05-27 11:26
‘동네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저마다 집에서 챙겨 온 그릇에 옮겨 담고 있다.
오이 씻기, 양념 섞기도 함께 하니 즐겁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 바람도 적당하니 음식 만들기 딱 좋은 지난 16일 오후 2시였다. 양손에 소쿠리와 도마, 식칼을 챙겨 들고 고양시 덕양구 3층집에 주부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동네부엌’이 있는 날. 한달에 한번 음식을 함께 만들어 나눠 가져가는 고양시 주부들의 음식 만들기 모임, ‘동네부엌’을 찾았다. “오이는 밖에서 씻어서 가지고 올게요.” 오늘은 8명이 모였다. 무엇을 먼저 할까 물을 필요가 없다는 듯 부추 다듬기, 양파 다지기, 오이 씻기까지 모든 일이 척척 시작됐다.

첫 모임은 2년 전이었다. 아이쿱 생협을 이용하던 주부 손님들이 생협 누리집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해 이어지고 있다. 함께 만들고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뭉친 것이다. 한달에 한번씩 음식을 만드는데, 만든 음식은 그 자리에서 맛만 보고 나눠서 집으로 가져간다.

오늘 만들 음식은 오이김치, 동그랑땡, 미역오이초무침. 언뜻 보면 평범한 ‘반찬’이지만 평범할수록 맛을 내기 어려운 게 요리인 법. “시장에 가니 제철 재료로 오이가 많이 나왔더라고요. 동그랑땡은 평소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고. 맛있게 만들고 싶어서 제가 추천했어요.” 모임에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권 윤(43)씨가 말했다. 모임에서 ‘선생님’으로 불리는 윤혜정(42)씨는 음식을 가장 잘하는 멤버로 전체 요리 과정을 진두지휘한다. 요리는 자주 하다 보면 손맛이 붙는다고 한다. “부추 길이를 얼마로 써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져요.”

메뉴가 정해지면 필요한 주요 재료는 한 사람이 맡아 사고 나중에 비용을 나눈다. 조리에 필요한 도마나 칼, 고춧가루, 후추, 소금 같은 양념은 각자 1/n로 준비해 온다. 8명이 요리를 나눠 가져가야 하니, 재료만 해도 한 짐이다. 오이 100개, 돼지고기 2.4㎏, 양파 1망.

동그랑땡은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4인용 식탁에 빙 둘러 서서 각자 도마에 칼질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당근을, 다른 사람은 양파, 한쪽에서는 부추를 다듬느라 소리가 요란하다. 양파 손질에 눈이 맵지만 신이 난다. “당근 씻고 양파 껍질 벗겨 다지는 거, 쉽게 보여도 혼자 하면 엄두가 안 나요. 얼마나 지루한데. 난 지금도 한달에 한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요리하면 좋겠어.” 이혜미(46)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멤버들도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모여서 만들면 자주 해 먹던 요리는 더 맛있어지고, 엄두도 못 내던 요리가 쉬워진다. “음식 만드는 데 서툴다 보니 재료를 조금 사서 먹을 만큼만 만들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팔아요. 같이 만들고 나눠 가져가면 남는 음식도 줄어서 좋죠.” 박현진(35)씨는 모임에 나온 지 2년이 다 돼 가는 원년 멤버인데, 동네부엌 덕에 요리가 즐거워졌다고 했다. 지루한 일거리도 함께 하니 금세 끝난다. 양파를 채 썰어, 데친 미역, 오이에 식초·설탕을 넣으니 미역오이초무침 완성이다.

이제 잘게 다진 동그랑땡 양념을 한데 섞고, 오이김치는 양념에 버무릴 차례. 동그랑땡은 차진 느낌이 들 때까지 섞어야 맛있다는 말에 손끝으로 그 느낌을 짚어 보겠다며 박씨가 나섰다. 양념을 섞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운다. 오늘은 한혜란씨가 가져온 ‘신상’ 위생장갑으로 떠들썩하다. 흙에 분해되는 위생장갑이라고 소개하자, 너도나도 만져 본다. 요리 비법도 오간다. “고등어조림을 할 때, 무를 살짝 끓는 물에 삶아서 넣어 봐. 그럼 훨씬 부드러워.” 천지혜(37)씨가 식당에서 들었다며 노하우를 전했다.


동그랑땡이 완성됐다. 10개 정도는 밀가루와 달걀을 묻혀 부쳐서 그 자리에서 먹는다. “맛있어! 부드럽다!” 엄마 따라온 아이들이 시식 요원으로 나섰다. 나머지 부치지 않은 동그랑땡 반죽은 나눠 가져간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밀폐용기에 완성한 음식을 챙겼다. 두 시간도 안 돼서 주부 여덟 명이 양손 가득 가져갈 만한 분량의 요리가 완성됐다. 설거지도 벌써 끝냈다. 서로 거들고 웃다 보니 지루할 틈도 힘들 일도 없다.

오늘 요리에 쓴 재료 구입비는 총 7만4000원. 이 중 다진 돼지고기는 아이쿱 생협에서 주는 모임 지원비 3만원으로 샀다. 그러면 나머지 4만4000원을 8명이 나누니 3가지 요리 두끼 분량 반찬값에 든 비용이 5500원밖에 안 된다.

“요리에 정말 자신 없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그래도 잘하고 싶어서 함께하다 보니 점점 손맛이 생기는 걸 느껴요.” 박씨가 밝게 웃었다. 여기 모인 모두가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한달에 한번 만든다고 금세 요리사가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까닭은 ‘요리하는 맛’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웃 간 쌓이는 정은 덤이요, 나날이 느는 요리 노하우와 손맛은 기본이다.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가족들의 칭찬은 언제나 주부를 춤추게 한단다.

 다음 모임에는 부추김치와 샐러드소스, 꽈리고추를 넣은 감자조림을 만들자고 했다. 할 줄 아는 요리 가짓수가 늘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멤버들 얼굴에 벌써 설렘 가득한 웃음이 번졌다.

글·사진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