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만 명 서울 감정노동자의 자존감

기고ㅣ강병호 서울시 일자리노동정책관

등록 : 2018-10-25 15:53

어느 작은 맥줏집에서 본 일이다. 점원들은 글자가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있었다. 앞면은 ‘손님은 왕이다’, 뒷면은 ‘나도 왕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점원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준 맥줏집 사장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노동자는 손님을 응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이유는 ‘손님은 왕’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에게 인내는 곧 미덕이며 성과다. 모욕, 폭행, 성희롱 앞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감정노동자는 ‘소란스러운 자’ ‘참을성 없는 자’로 낙인찍힌다. 성과 평가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에만 약 260만 명의 감정노동자가 강요된 인내 속에서 울음을 삼키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가 노동자를 존중하는 방식을 고민해왔다.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시행한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일련의 조처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다. 서울시는 2016년 ‘서울특별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감정노동자에 대한 서울시와 산하기관의 의무와 감정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해 감정노동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를 구체화하기 위해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 종합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각 부서와 기관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감정노동 보호 가이드라인’과 함께 세부 매뉴얼(안)을 제공하고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감정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다.

지난 16일에는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를 열었다. 기존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속 감정노동팀을 확대해 별개의 센터로 독립시킨 것이다. 센터는 근로환경 개선 사업, 심리상담과 치유 프로그램 운영 사업, 감정노동 인식 개선 사업을 한다.

근로환경 개선 사업은 서울시가 올해 배포·시행한 ‘감정노동 보호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잘 이행되고 있는지 진단한다. 심리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 운영 사업은 감정노동자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해, 감정노동에 지친 노동자의 피로를 풀어주고 자존감을 높일 예정이다. 감정노동 인식 개선 사업은 감정노동 관련 여러 단체와 네트워크를 짜 포럼 개최, 감정노동 종사자 자조 모임 지원, 감정노동보호 업무협약 체결 등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시민에게 감정노동자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할 사회의 구성원임을 일깨우는 활동을 할 것이다.

서비스업은 그동안 서비스뿐 아니라 감정까지 함께 파는 것으로 인식됐다. 어느 정도는 부당함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공 부문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자리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처는 때로 시민에 대한 대응성과 충돌한다는 비판에 부닥쳤다. 예컨대 콜센터 감정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다. 폭언이 있으면 전화를 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폭언의 정도에 정량적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행정에 도입된다면 시민의 요구에 적시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지난 10월16일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 조처도 이러한 논의 속에서 신중하게 시작되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너무 미흡한 권리 보호로, 또 어떤 이에게는 너무 급진적 정책 결정으로 느껴질 것이다.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개소는 이처럼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렴하고 신중한 정책 실행을 위한 구심점을 마련했다는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고용주와 행정서비스 공급자로서 이중적 지위를 갖는 서울시가 시민과 감정노동자를 모두 왕으로 대접하는 일에 성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