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유명한 길이 있다. 산티아고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에는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가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으며 그 배경이 된 산티아고 순례길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 올레길도 이 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성지로 선포하며 중세 많은 유럽인이 순례길에 올라 현재의 순례길이 형성되었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제 서울에도 교황청의 공식 인정을 받은 순례길이 생겼다. 바로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다. 명동대성당, 삼성산 성지 등 순례지 24개소를 3개 코스로 이은 44.1㎞의 도보 길로, 한국 천주교회의 특별한 역사와 그 중심이 된 서울의 역사 문화를 이어놓은 길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 방한을 계기로 2015년부터 서울시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4년여 동안 함께 순례길을 만들고자 노력한 결과다.
서울시는 인접 자치구들과 순례길 보행 환경을 정비하고, 순례지에 대한 학술 연구를 했으며, 한국 천주교의 특수성과 그 중심이 된 서울의 역사 문화를 알리기 위해 국내외 전시를 개최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9월14일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에서 국제 순례지로 승인받는 선포식이 열렸는데, 로마 교황청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67)가 참석해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교황청으로부터 국제 순례지로 승인되었음을 선포하며 증서를 전달했다.
가톨릭 탄생지와 거리가 먼 한국에 교황청이 인정한 순례지라니 의아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는 17세기 말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시작해, 서양 선교사들의 선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이는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 유일하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1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며 신앙을 지켜냈다. 이러한 한국 천주교 역사의 특수성은 국내외 신자들의 지속적인 순례가 있게 했고, 이것이 교황청으로부터 아시아 최초 공식 국제순례지로 인정받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단지 종교적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의 발생과 박해의 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서학이라는 학문이 천주교라는 종교로 발전하며 조선 사회에 평등사상을 전파했고, 1800년대 신유박해, 병인박해 등 중요 사건의 계기가 됐다. 이런 한국 근대사상의 변화와 역사적 사건을 돌아볼 수 있는 ‘천주교 서울 순례길’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서울의 소중한 역사 문화 유산인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사무소에 따르면, 2000년 5만여 명이었던 순례자가 지난해에는 30만여 명으로 6배가 늘었을 정도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인들이 찾는 도보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순례지를 걷는 이유는 종교적 목적이 43%이며, 나머지 57%는 자기 성찰, 문화 체험, 트레킹 등 비종교 목적으로 찾는다.
서울시도 이점에 주목해 ‘천주교 서울 순례길’에 포함된 순례지 일부와 인근 관광명소를 연계해 ‘해설이 있는 서울 순례길’ 도보 관광 코스 3개를 개발했다. ‘북촌 순례길’은 광화문 시복 터에서 시작해 조계사, 가회동성당으로 이어지고, ‘서소문 순례길’은 명동대성당을 시작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서울시립미술관을 지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지와 중림동 약현성당으로 이어지며, ‘한강 순례길’은 마포역 인근 마포음식문화거리에서 절두산 순교 성지로 이어진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서울의 근현대 역사 문화를 돌아보고 성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천주교 서울 순례길’을 가족, 친구, 연인 등과 꼭 한번 돌아보길 권한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 가운데 한 곳인 마포구 절두산 순교성지.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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