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처럼 우거진 버드나무가 옛 주인을 맞다

밤섬 실향민 고향 방문 ‘밤섬 귀향제’ 동행기

등록 : 2017-09-28 13:45 수정 : 2017-09-28 21:57
여의도 윤중제 방파제 공사 위해

1968년 밤섬 폭파, 고향에서 쫓겨나

실향민 30여명 지난 16일 밤섬 찾아

밤섬 도당굿이 당시 이야기 전해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밤섬에서 ‘밤섬 실향민 고향 방문행사’가 열렸다. 서강대교 아래 밤섬에서 바라본 여의도 모습.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밤섬에 가는 뱃길이 열린다. 밤섬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 행사인 ‘밤섬 귀향제’가 열리는 덕이다. 마포구청과 마포문화원이 2001년부터 마련해 고향 잃은 원주민들과 밤섬을 궁금해하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실향민 30여명을 포함해 약 200여명이 바지선과 보트를 나눠 타고 밤섬으로 향했다.


한강 망원지구 선착장에서 바지선을 타고 출발한 밤섬 실향민과 시민들.

1968년, 밤섬이 조각났다

밤섬은 그 모양이 밤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현재는 서강대교 아래 누워 있지만, 한때 그 높이가 다리보다 높고, 백사장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으나 50년 전까지만 해도 대대로 사람이 살던 터였다.

1968년 2월에 밤섬이 폭파됐다. 당시 서울시는 모래섬과 다름없던 여의도를 개발하며 수해 방지를 위해 여의도 둘레에 7533m 길이로 둑을 쌓으려 했는데, 돌과 자갈이 부족했다. 서울시는 밤섬을 조각내 여의도 윤중제(강에 있는 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둑) 공사에 쓸 돌을 채취했다.

원주민 62가구 443명은 마포구 창전동으로 집단 이주해야 했다. 조선시대 때부터 대를 이어 배를 만들고 얼음을 팔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고향과 일자리를 잃었다. 밤섬이 부서지던 날, 이들은 와우산 기슭에 모여 섬이 날아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꽝하고 부서졌어. 다들 울었어.” 실향민 이일용(82)씨가 말했다. 이씨는 배를 만드는 목수였다.

현재 남은 실향민들은 40여명으로 서울 곳곳에 흩어져 산다. 실향민들이 여기저기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면 그 끝은 상실에 닿는다. 실향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명재(84)씨도 “어릴 때 저기서 얼음을 만들어 팔았는데…”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아버지를 도와 배를 만들던 백사장, 빨랫감 두드리던 빨래터, 귀신을 봤다는 부엌 등이 실향민들 손끝에서 살아났다. 굿은 거기서 시작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밤섬도당굿.

이야기를 전하는 밤섬 도당굿

“이렇게 많이들 오셨나? 올해는 젊은이들도 보이고. 모두 복을 받아가시오.” 조상에게 제례를 올리는 귀향제에 이어 밤섬의 전통 굿인 ‘부군당 도당굿’이 펼쳐졌다. 유덕문(77) 밤섬보존회 회장은 “주민들이 한강을 건너면서 사고가 잦았다. 밤섬 도당굿은 주민들의 안녕과 건강, 무사를 기원하며 지낸 굿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실향민들을 따라서 밤섬 깊숙이 들어서면 사람 흔적은 없고, 원시림처럼 늘어진 버드나무와 쓰러진 고목만 짙은 숲향을 뿜었다. 바닥은 두부처럼 물컹거리고 개미들은 발목을 꽉 물었다. 뾰족한 씨앗은 옷에 달라붙어 밤섬의 유전자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우리들 이야기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기자들이 우르르 다가와 고향 방문 소감을 묻자, 이명재씨의 부인 아무개씨가 도망가며 혼잣말을 했다. 퉁명한 말과 달리 표정이 밝다. 굿판 한구석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실향민 예닐곱명은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니 좋다”며 다들 쑥스러운 듯 웃었다.

무당은 신명 나게 부채를 펴고 펄쩍펄쩍 뛰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반가운 눈치였다. 실향민들은 몇 통 안 되는 수박을 조각내어 찾아온 모두에게 돌렸다.

조각난 땅이 붙자 더 커졌다

밤섬의 늪과 숲을 헤쳐나가면, 섬 끝에서 여의도 마천루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서강대교 아래 서서 바라보면 밤섬의 성숙한 ‘복수’를 보는 양 기분이 묘하다.

폭파 당시 5만8000㎡ 규모였던 밤섬은 2017년 현재 27만9531㎡로 커졌다. 한강 상류의 퇴적물이 빈자리를 메웠다. 조각난 틈으로 흙이 흘러와 붙었다. 오로지 자연의 힘으로 섬이 살아난 것도 기적인데, 대여섯 배 가량이나 불어난 것이다.

식생도 바뀌었다. 오늘날 밤섬에는 버드나무, 갯버들 등의 식물과 흰뺨검둥오리, 해오라기, 민물가마우지, 쇠백로, 고방오리 등의 새들이 산다. 해마다 철새 5000여 마리가 찾아온다. 세대에 걸친 회복이 섬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세계불꽃축제를 앞둔 서울, 실향민들은 또 다른 이유로 초조함을 느낀다. 유덕문 밤섬보존회 회장은 밤섬 원주민이다. 유씨는 “세계불꽃축제의 폭음이 밤섬에 어렵게 발붙인 철새들을 몰아낸다”고 하소연했다.

밤섬이 살아난 선례는 서울에 유행처럼 번져가는 도시개발과 도시재생의 물결에 자연이 주는 열쇠로 여겨진다. 시중에 나온 서울 도시개발사와 관에서 출간한 서울역사서 몇 권을 훑어가며 1960년대 여의도 개발사를 뒤졌다. 그 어디에도 밤섬에 살았던 이들에 대한 얘기는 없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