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22. Together, mixed media on paper, 50×65㎝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아이가 생긴 걸 아는 순간 우리도 ‘가족’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장면이 왕왕 나온다. 그럴 때면 아이가 있든 없든 부부 둘도 엄연한 가족인데…, 싶다.
우리는 어떻게 가족이 되었는가? 마법에 걸렸는지 거리는 줄어도 남은 시간은 줄지 않는 차 안에서 자다 깬 내게 아직도 서울을 못 벗어났다며 더 자라는 남편의 말에 이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흘려보내는 대신 곱씹어봤는데, 대학원 수업 후 혜화동에서 소개팅으로 만나 어찌저찌 결혼했으니 ‘어떻게’는 분명하다. 모르는 건 우리가 ‘어쩌자고’ 가족이 되었는지다.
제 입맛대로 기억하는 나와는 달리 모든 걸 기억하는 남편은 나에 대한 첫인상이 자료를 한 아름 끌어안고 핸드폰을 든 채 이 골목인가 저기인가 두리번거리던 지친 모습이란다. 내 기억에는 없는 그 꼴에 반했다니 세상에 별일인데, 어쩌자고 가족이 되었는지로 치면 우리보다 더한 사람이 많다.
튀르키예에서 한국에 와 삶의 터전을 준비하는 아리프 아쉬츠, 이혜승 예술가 부부를 얼마 전 ‘힙지로’에서 만났다. 트로이 여행 중의 일화를 들었는데, 아가멤논이냐 아킬레우스냐를 놓고 바람 부는 트로이 언덕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노발대발 다퉜단다. 여행 직전 일리아드를 읽은 아내와, 실크로드의 고대 낙타 카라반 여행을 대규모 프로젝트로 재현했던 남편의 한판이었다고. 누가 이겼는지는 비밀이다.
각자의 세상을 지닌 남녀는 가족이 되면서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을 얻는다. 철부지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이름이 꿈의 본체가 될 수도 있음을 안다. 그렇게 가족 안으로 들어가면 각자 품었던 꿈에는 생활의 맥락이 입혀지기 마련이다. ‘Fairytale of New York’이라는 노래가 있다. 번역하자면 ‘뉴욕의 동화’인데, 여자가 ‘당신이 내 꿈을 앗아갔다’ 원망하니 남자는 그건 자기 꿈과 함께 간직했다며, 나는 당신을 중심으로 꿈을 만들었노라고 눙치듯 대답한다. 애초에 가졌던 꿈은 간데없고 새로운 꿈이 쥐어질 수도 있다는 건데, 잃어버린 것과는 다른 게 아닌가 한다. 아등바등 살다 어느 날은 서로를 깎아내리고, 그러다가도 화합하는 그들의 모습에 처음엔 피식 웃었지만, 요즘은 그 모습이 어째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가끔은 짠하기까지 하고.
이번 추석에 다녀오는 길은 아마 두 번째로 오래 걸린 귀성길, 귀경길이었던 듯하다. 어떻게 가고 오는 길 모두에 돌아올 ‘귀’(歸)가 붙는 걸까. 서울 토박이인 내겐 알다가도 모를 일인데, 혼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자다 깬 눈으로 볼 때마다 미안했다. 운전을 나누자고 아무리 말해도 매번 사양하는 건 내가 미덥지 않아서일 테다. 운전은 씽씽, 주차는 착착 잘만 하는 엄마와 누나를 둔 사람이 어쩌다가 나를 만나….
그런데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이번에 깨달은 게 있다. 남편을 짠한 눈으로 바라볼라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나도 보인다는 것.
그게 영 이상해 ‘돌아갔다 돌아온’ 시간을 계속 들여다보니 알 듯도 하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일주일에 서너 번 함께 준비해서 차리는 밥상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속으로만 투덜대는 날도, 상대의 방식을 드러내어 꼬투리 잡는 날도 있는 건 여전하지만, 말없이도 완제품 반찬을 사오고, 재료를 다듬어 조리며 상차림을 자연스레 나눠 맡아 알아서 움직인다.
애쓴 끝이니 잘된 음식만 식탁에 오르면 좋으련만 실패도 없지 않은데, 그럴 때면 서로 탓은 하면서도 어쨌든지 맛있게 먹으려 또 용을 쓴다. 생각대로 손발 척척은 아니었나보다, 하고 삐죽거리며 말이다. 어쩌자고 가족인가, 하는 우리의 이런 풍경 또한 ‘서울의 동화’쯤 되지 않을까?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