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19. Sweet Caroline, mixed media on paper, 54.5×75㎝
‘마이너 감성’은 타고나는지, 조카 2호의 공룡 사랑은 장난감 구하기도 쉽지 않던 비인기 공룡 안킬로사우루스를 향했다. 네댓 살 무렵 시작돼 이삼 년간 지속되더니 공룡 도감을 줄줄 외우던 아이가 맞는가 싶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도 시큰둥하게 된 지난해였다. 차 안에서 지루해하는 조카를 태우고 달리는데, 한강 변을 따라 한창 올라가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 공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포였다.
조카랑 있어서 그랬을까? 공사장 가림막 위로 드러난 아파트에 기다랗게 목을 뺀 크레인, 꼭대기에 얹힌 구조물의 형태가 마치 어린 시절 나의 ‘최애’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닮은 게 아닌가. 집단생활을 했다는 그 초식공룡처럼 무리까지 지은 모습에 순간 공룡시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장난 삼아 크레인이 몇 개인지 세어보라고 하니, 아이는 아이인지라 열심을 부려 센 끝에 46개란다. 그렇게나 많은 줄은 몰랐는데, 미안.
미국과 홍콩에 사는 중학교 동창 둘이 한국을 찾는다기에, 반포에서 함께 학교 다녔던 친구들이 모였다. 모임명이 ‘집에 가는 길’인 건 신반포 방향 하굣길에 친해져서다. 길게 늘어선 주공아파트 단지를 따라 걸으며 하차하듯 한 명씩 집으로 들여보내고 나머지는 전진했다. ‘정차’할 때마다 아쉬워 20여 분간 재잘대다가 “내일 봐~!” 중간에서 버스를 타던 나를 제외하고 친구들은 모두 그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나를 ‘내려준’ 후에도 놀이터나 떡볶이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길에서 두 시간도 넘게 보낸 마지막 승객 두 명은 ‘켈리 트윈스’라고 자기들끼리 명명한 웅장한 전나무 한 쌍 앞에서 가장 긴 수다를 떨었다고.
오랜만에 모일 생각에 날짜를 정한 후, 어디서 만날지 장소와 예약 시간 이야기가 오갔다. 재건축 전엔 그런 건 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일 년에 두어 번 날짜만 정하면, 여섯 시쯤부터 먼저 간 사람이 자리를 잡고 차례로 ‘승차’할 때마다 치킨 반 마리를 추가 주문하는 게 우리 시스템이었다.
이제는 서울 사는 멤버가 두 명뿐이라 모임 장소를 정할 때 교통에 대한 고려가 제일 큰 듯하다. 그중 재건축이 진행되며 경기도로 이사 간 친구 하나는 서울, 옛 동네로 돌아오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날 만큼 올라버린 집값에 속상해했다. 이제는 신반포를 가도 남의 동네만 같아서 두리번거린단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우린 실향민이야”라나. 어마어마한 차익을 본 이가 실향민이라니, 어디 가서 잘못 말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지청구에 뒷말까지 듣겠다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말이 되는 게 아닌가. 값이 잔뜩 오른 아파트 덕을 본 건 사실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두 번 다시 고향의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고, 돌아가 살 수도 없다는 점에서 실향과 무엇이 다르겠나 말이다.
어쩐지 누구는 일본에, 누구는 북한에 엄마의 외가 친지를 모두 두고 왔다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문득, 고향이 없어진다는 건 어디 팔이라도 하나 놓고 온 듯, 가끔 마음이 헛헛해지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각자에게 고향은 어디인가…. 설마 그게 산부인과 병원이나 아파트는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집단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바람이 지나가고 그 있던 자리조차 아득해져 화석으로 남았다. 앞다퉈 고개를 높여 단장하는 서울의 모습을 누리면서도, 머잖아 우리 세대도 ‘예전에는 이랬지’ 하겠구나 싶다. 그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삶을 건축해낸 장면과는 다른 잔상이 아닐까 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간다는 친구는 오랜만에 옛 동네를 걷고 싶다며 쏟아지는 비에도, 우리의 만류에도 기어이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걸음마저 바삐, 총총총….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