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16. Somebody, Mixed Media on Paper, 53.5×74㎝
높은 천장, 기둥 없이 탁 트인 기차역은 실내 광장 같아 대형 전시 공간으로 제격이다. 이 가능성을 포착해 폐역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킨 첫 사례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란다.
뭐든 남이 한 건 쉬워 보이기 마련, 해놓은 걸 봤으니 당연한 듯 느껴지지만 ‘파격’은 생각해내기도, 실현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옛 서울역 건물을 오늘날의 ‘모던’을 담아내는 현대적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역서울284’도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공간이지 싶다.
이 건물은 붉은 벽돌과 독특한 돔 지붕 같은 르네상스 장식물이 아름다운데, ‘모던뽀이’와 ‘모던걸’이 오가던 근대성의 상징, 경성역에서 해방 이후 서울역으로 개명되었다가, 케이티엑스(KTX) 개통과 함께 신역사에 자리를 내주며 지금의 문화공간이 되었다. 꽤 오래 전 이곳에서 프로젝트를 했던 친구와 점심을 하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역에 노숙인 음식 나눔 봉사가 어찌나 많은지, 간식까지 다 섭취하면 하루에 만 칼로리도 넘겠더라나. 취사선택하는 이도 많다며 점심값 아끼는 직장인이 허다한데 싶었다고.
그 말에 여러 도시에서 봤던 노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난히 강렬했던 몇몇 장면도 있다. 일본 도쿄에서는 커튼으로 현관을 만든 골판지 상자 집에 정장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고 들어가 얼굴조차 보지 못한 노숙인이 그랬고, 약물 문제가 심각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건물 처마 아래 벽에 기댄 채 고개를 떨구거나 신호등 앞에서 허공을 향해 소리치던 이들이 그랬다.
파리에서는 칫솔, 물, 샌드위치 등 나눠주는 품목에 따라 텐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던 난민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역 노숙인은 ‘집단’으로서 악취와 술판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 사는 곳이면 시대를 불문하고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지 고대 부족 사회에서는 추수할 때 이삭은 줍지 말라는 일종의 ‘푸드뱅크’법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구휼을 위해 혜민서와 활인서를 두기도 했다. 친구가 우스갯소리처럼 ‘만 칼로리’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요즘은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 말고도 종교단체를 비롯해 비영리기구에서 운영하는 곳이 여럿이다. 드러나는 활동은 ‘구호’이지만, 노숙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일상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인 듯하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멀찌감치 피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용산역 근처에서 사오십 대 노숙인과 눈이 마주치면서 순간 흠칫했다. 우리에게 나이대라는 교집합이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아서 말이다. 그 후 노숙인을 보면 옷차림이며 행동에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이 문득문득 궁금했다.
제니퍼 코넬리 주연의 ‘쉘터’라는 영화가 있다. 감독이자 남편인 폴 베터니가 뉴욕 아파트 앞의 홈리스 부부를 관찰하며 만든 영화란다. 여자 주인공은 ‘해나’, 유복한 삶을 누리다 남편을 잃은 후 약물 중독자 홈리스로 살아간다. 뼈가 드러난 몸과 멍한 눈 말고도 캐릭터를 보여주는 여러 장치가 있는데, “나도 ‘누군가’인 적이 있었답니다”(I used to be someone)라고 적은 골판지 소품이 마음에 남았다. 그래, 맞다. 물질적 풍요가 제아무리 뒷받침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삶이 아니던가.
얼마 전 명동 거리, 양복 재킷에 등산화를 신은 오십 중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건물 밖 구조물에 걸터앉은 채 내게 말을 걸었다. 집에 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려 버스비가 없다나. 집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가는 길에 김밥도 한 줄 사드세요, 생각하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국내외에서의 비슷한 경험들이 기시감처럼 둥실. 발걸음을 옮기는 내 뒤통수에 아저씨의 고맙다는 말이 꽂혔다. 무엇이 고마운 걸까…. 내가 그의 말을 믿어서 준 게 아님을 그는 알까?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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