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 가지 허기를 채운 금천의 큰언니”
초점& 금천의 척박한 땅에 살구꽃 피워낸 고 김주숙(1941~2026) 추모 전시회
등록 : 2026-06-05 11:21
2014년 효령상 시상식 모습. 금천구 공동체경제통합지원센터 제공
1983년 구로구 독산동에 정착한 김주숙 선생은 사비를 털어 시흥본동에 16평짜리 지하방을 얻고 ‘살구여성회'를 창립했다. 살구는 ‘살기 좋은 구로’란 뜻이었다. 박은실 회장은 상아탑의 지식을 현장에서 실천한 선생의 헌신을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에 비유했다. 여성들의 배움에 대한 허기, 방치된 아이들의 돌봄에 대한 허기, 어르신들의 끼니에 대한 허기 등 이웃의 세 가지 배고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선생님은 대학교수의 권위 대신 스스로를 ‘호호 아줌마’라 부르며 이웃 곁에 소탈하게 머무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배움이 짧아 주눅 들어 있던 가난한 여성들에게 그는 단순한 강사를 넘어 삶의 존엄을 일깨우는 스승이었다. 녹화 영상 인터뷰에서 살구여성회 1기 유인숙 전 회장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저희가 대부분 공부를 하러 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 건 사실이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은 ‘현재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라고 늘 용기를 주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 30년 헌신이 남긴 숭고함의 유산 김주숙 선생의 헌신은 살구여성회에만 머물지 않았다. 선생과 살구여성회는 먹거리 운동인 ‘한우물아이쿱생협’, 어머니들의 독서모임에서 출발한 ‘함박웃음’, 생태환경 모임인 ‘금천생태포럼’, 무료 경로 급식소 ‘따뜻한 밥집' 등 지역 내 다양한 풀뿌리 공동체 설립에 든든한 모태 역할을 하며 마을 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선생의 곁을 지켰던 제자 우영화씨는 영상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10년 된 옷도 수선해서 입으실 만큼 본인에게는 엄격하고 검소하셨지만, 어려운 이웃에게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내어주셨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 숭고한 헌신은 지역사회를 넘어 국가적 울림이 됐다. 2007년 서울특별시여성상 대상을 시작으로 2012년 김만덕상, 2014년 효령상 사회봉사부문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2011년 시작된 대장암 투병 생활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늘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있었다. 박은실 회장은 지난해 병상에 있던 김 선생과의 통화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구여성회를 이끌어야 할까요?' 여쭤보면, ‘괜찮아요. 문 닫아도 돼요. 한 단체를 30년쯤 했으면 문 닫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라고 하실 만큼 초연하셨습니다.” 단체의 권력화나 개인의 치적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집중했던 삶이었다. 박 회장은 “선생님이 보여주신 삶은 ‘숭고함' 그 자체였습니다. 설령 살구여성회가 훗날 문을 닫는다 하더라도, 이런 분이 우리 곁에 살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라며 묵직한 당부를 남겼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